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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유서대필 누명, 대법 "배상 시효 남아"…국가배상 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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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991년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을 당시의 강기훈씨(왼쪽). 오른쪽 사진은 2014년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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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대필 조작사건’으로 옥살이를 하다가 24년만에 무죄가 확정된 강기훈씨에 대한 국가의 배상액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소멸시효를 이유로 국가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에 대해 대법원이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30일 강씨와 가족이 국가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소멸시효 적용안돼”…2심 보다 손해배상액 커질듯



대법원은 “수사 과정의 개별 불법행위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부분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정리법) 위헌 결정에 따라 효력이 없게 된 장기소멸시효 규정을 적용한 잘못이 있으므로 파기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헌법재판소는 국민보도연맹 등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이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과거사 정리법 상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조작의혹사건 등에 국가배상청구권의 장기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통상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5년’이 지나면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지만, 강씨 사건처럼 인권 침해나 조작 의혹 등이 벌어진 채로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버린 과거사 사건의 경우에는 재심 확정 판결 등 ‘손해나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라는 기준이 달리 적용돼야 한다는 취지다.

이 사건이 통상의 경우 지난 1991년 강씨가 구속기소됐으므로 장기소멸시효(5년)가 적용되면 국가배상청구권 시효는 1996년에 끝난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을 “과거사정리법상 에서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입은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에 해당한다”고 봤다. 강씨를 밤샘 조사하는 등 위법하게 조사하고, 변호인 접견권을 침해하고,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등 공무원이 불법을 저지른 사건이니 헌재 결정에 따라 소멸시효를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만큼 2015년 재심 확정 판결 이후 강씨 측이 3년 이내인 그해 소를 제기한 이번 사건의 경우 장기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강씨는 2심보다 더 많은 손해배상액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2심이 책정한 배상금에서 이미 결정된 형사보상금을 제외하고 산정한 강씨의 실제 배상액은 6억8000만원, 아내 1억원, 부모는 각 7000만원 가량이다.

다만 대법원은 공무원 개인들(강신욱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 신상규 당시 주임검사, 김형영 전 국과수 문서감정실장)에 대한 손해배상은 원심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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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대법정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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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가른 ‘글씨체’ 감정…24년 만에 무죄확정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은 정권을 비판하는 대학생·노동자들의 분신이 잇따르던 지난 1991년 노태우 전 대통령 때 벌어졌다. 전국민족민주연합(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씨는 같은 전민련 사회부장이었던 동료 김기설씨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유서를 대신 써주며 분신자살을 부추겼다는 혐의(자살방조)로 구속 기소됐다. 강씨는 일관되게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국과수 필적 감정 결과를 근거로 유죄가 확정돼 징역 3년을 복역했다.

하지만 국과수는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의뢰를 받아 재감정을 실시, 1991년과 다른 결과를 내놨다. 김씨의 유서가 김씨가 쓰던 전대협 노트·낙서장과 글씨체가 같다는 것이었다. 김씨의 친구가 뒤늦게 발견한 이 자료들은 1991년 감정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은 자료였다. 이에 진실화해위는 “유서는 김씨가 쓴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냈고, 강씨는 이를 근거로 2008년 재심을 청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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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씨가 위조 혐의를 받았던 김기설씨 유서.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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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을 맡은 서울고법 역시 ‘ㅆ’ 등 구체적인 글자를 예로 들면서 유서의 필적이 강씨의 글씨체 보다는 김씨가 작성한 노트들과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에서도 이 같은 판단이 받아들여지면서 24년만에 유·무죄가 뒤바뀐 것이다. 이 사건은 필체를 근거로 누명을 썼다가 뒤늦게서야 무고함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강씨 측 대리인단은 “핵심은 조직적으로 불법적 방법을 동원해 젊은이를 유서대필범으로 만든 것”이라며 “수사 전반과 기소에 대한 불법 행위 책임과 개인들에 대한 배상 책임을 부정한 부분은 유지했다는 점에서 유감”이라고 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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