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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영국 기독교인, 절반 이하로 떨어져…“확실한 정교분리 할 때” 여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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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영국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 저스틴 웰비가 28일(현지시각) 런던 길드홀의 행사에서 일어서 연설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리시 수낵 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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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기독교인의 비율이 처음으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영국 국가기구·왕실·교회 사이에 더 엄격한 분리·독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 국가통계청(ONS)이 지난해 잉글랜드와 웨일스를 대상으로 ‘인구센서스’ 조사를 한 결과,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응답자가 2750만명으로 전체의 46%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가디언>이 2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는 직전 인구센서스 조사 때(2011년·3330만명·59%)보다 13% 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응답자 수로는 550만명 줄어들었다.

2001년 영국에서 인구센서스 조사에 종교 관련 문항을 도입한 이래 기독교 신자 비율이 절반 밑으로 내려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기독교 인구 감소 추세는 유럽 다른 지역에서도 널리 확인되지만, 이번 조사 결과는 이 추세가 더 가팔라졌음을 보여준다.

기독교인이 줄어드는 사실은 교회 수 감소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영국 <텔레그라프>에 따르면, 1987년부터 2019년까지 영국에서 940곳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 이 가운데 423곳은 최근 10년 사이에 사라졌다. 남아있는 영국의 전체 교회 수는 1만5500곳이다.

대신 믿는 종교가 없다는 응답은 10년 만에 25%(1410만명)에서 37%(2220만명)로 크게 늘어났다. 또 이슬람교인은 4.9%에서 6.5%, 힌두교인은 1.5%에서 1.7%로 각각 증가했다. 인구학적으로 볼 때 영국의 새 총리 리시 수낵이 힌두교도, 런던 시장 사디크 칸이 무슬림인 게 우연만은 아닌 셈이다. 시크교(0.9%), 불교(0.5%), 유대교(0.5%)가 뒤를 이었고, 6%는 응답하지 않았다.

영국은 기독교 교회, 특히 영국 국교회(성공회)와 왕실 전통, 국가기구가 깊이 연루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 국왕은 “기독교 신앙의 수호자”이자 “영국 교회의 최고 관리자”로 불린다. 그밖에 제한적이지만 하원이 통과시킨 법안의 심의권을 갖고 있는 상원 의석의 26석은 교회 주교들의 몫이다. 그러나 영국 인구의 과반이 기독교도가 아니라는 조사결과는 이런 오랜 전통 시스템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조사결과에 대해 요크의 스티븐 코트렐 대주교는 “이제 많은 사람이 자동으로 기독교도였던 시기는 지나갔다”며 “이는 우리에게 도전적 과제이며, 신이 지구에 그의 왕국을 건설할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기독교를 알리기 위해 우리가 할 일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국왕에 즉위한 찰스 3세는 당시 즉위 연설에서 이런 상황 변화를 의식한 듯 관례에 따라 “기독교 신앙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도 “다른 신앙을 따르는 이들은 물론 세속적 이념에 따라 사는 이들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가와 종교의 분리를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인문주의자’(Humanists UK)의 앤드루 콥슨은 “믿는 종교가 없다는 사람이 이렇게 많으면서 우리처럼 법과 제도에 종교적 배경이 드리워 있는 나라는 유럽에 없다”며 “이번 조사는 국가에서 종교의 역할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경고”라고 말했다. 옥스퍼드 대학의 스콧 피터슨 교수도 “20세기에 들어선 이래 국교회를 변호하는 건 어려운 일이 됐으며 이제는 허구의 상상이 됐다”며 “왕이 영국 국교회의 우두머리라는 건 1650년에나 통하는 얘기이지, 2022년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센서스 조사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지난해 3월 진행됐다. 스코틀랜드는 코로나19를 이유로 1년 연기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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