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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World_Now] 천안문 이후 중국서 첫 대규모 시위‥그들이 백지 든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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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밤 베이징 차오양구에서 열린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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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여!" 베이징 한복판에서 울린 송별곡


어젯밤(27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량마허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 지역은 한국 대사관을 비롯해 각국의 대사관들이 모여있어 외국인들이 많은 곳입니다. 중국으로서는 외국인들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통제가 어려운 지역입니다. 군중은 한 손에 하얀 A4용지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헤어진 친구를 그리워하는 내용인 <송별>이라는 곡을 함께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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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지난 24일 발생한 신장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 19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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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신장 우루무치 아파트에서 불이 나 10명이 죽고, 9명이 다쳤습니다. 사망자 중엔 어린 아이도 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화재 직후 봉쇄 구조물 때문에 소방당국의 진입이 어려웠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SNS에 공유된 영상에는 소방차가 화재 현장과 멀찍이 떨어져 물을 쏘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한 여성이 다급하게 구해 달라며 소리치는 장면도 포착됐는데, 이는 많은 중국인들에게 충격을 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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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량마허에 보인 사람들이 '송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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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검열 피하려 애국주의 노래·백지 팻말


량마허에서 울린 <송별>은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노래였습니다. 이 노래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55주년에 중앙선전부에서 '애국주의 교육용 노래 100곡'에 선정한 곡입니다. 친구에 대한 그리움은 중국 고전 문학에서 많이 다뤄지는 소재인데 이 노래는 고전 문학에 나온 표현들을 잘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중국의 시위대는 따로 저항가를 부르지 않고 애국주의 노래를 부릅니다.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이나 사회주의 혁명가인 <인터내셔널가>처럼 말입니다. 그 이유는 귀에 익은 멜로디, 숨은 의미, 혁명적 가사, 여기에 '처벌을 피할 명분'도 추가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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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든 A4용지는 중국 검열에 반대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불이 난 화재 현장 영상은 관영 매체 보도에서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우루무치 시 정부 앞에서 봉쇄에 항의하는 성난 시민들의 시위 영상도 신속히 사라졌습니다. 중국의 집회·시위 소식을 알리는 SNS 계정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시민들이 백지를 들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무 내용도 없지만 모든 내용이 담겨 있는 백지. 당국의 검열과 처벌을 피하기 위해 중국인들이 고육지책으로 짜낸 표현의 방식인 셈입니다. 중국인들은 '#백지혁명'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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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량마차오에 모인 사람들이 '봉쇄 해달라!', 'PCR 검사 해달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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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 해달라!" 엉뚱한 구호, 왜?


시위대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던 건 구호였습니다. 이들은 베이징 쓰퉁차오 현수막에 적혔던 구호 "PCR 검사가 아닌 자유를 달라"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이따금 "봉쇄를 해달라!", "PCR 검사를 해달라!" 등 기존 시위의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을 지지하는 발언도 함께 하면서 시위대가 곤란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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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화대 학생들이 백지에 적은 '프리드먼 방정식'. 칭화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졸업한 대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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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우주 방정식이 왜?…'프리드만=프리 더 맨'


바로 전날 칭화대에서도 백지를 들었습니다. 학생들이 든 백지 중에는 문과 출신인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수학 공식이 담겨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공식은 우주 팽창론의 수학적 모델을 제시한 소련의 수학자 알렉산드르 프리드만(Alexander Friedmann)의 방정식의 일부였습니다. 학자 이름이 프리드만이니 영어로 '자유(freedom)', '자유롭게 해달라(Free the man)'는 단어를 연상하게 합니다. 또 이 공식에 생략된 부분은 열린 우주를 의미하는데 '개방'을 요구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중국 특색 시위는 해석이 필요한 영역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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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상하이 우루무치중로에서 열린 시위 이후, 시위 장소의 상징이 된 표지판을 뽑아가는 듯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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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회는 89년 톈안먼 이후 베이징에서 벌어진 첫 대규모 시위였습니다. 앞서 화재가 발생한 우루무치에서도 시민들의 '반봉쇄' 집회가 있었습니다. 이후엔 도시 전면 봉쇄를 겪었던 상하이에서도 집회가 열렸고, '시진핑 퇴진', '공산당 퇴진'이라는 급진적인 구호까지 등장했습니다. 주말 사이 코로나가 발발했던 우한에서도 군중이 도심에 모인 영상이 공유됐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27일 "집회가 일어난 도시 사이엔 연관성이 있고, 시위는 전국적"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3년간 이어진 제로코로나 정책이 20대 당대회 이후 완화될 거란 기대가 무너진 데 대한 좌절감이 폭발한 것이란 분석을 내놨습니다. 당국의 반응이 주목됩니다.

[사진 출처 : 트위터]

조희형 기자(joyhyeong@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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