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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지 몰랐는데요"…'부재중 전화' 스토킹 무죄? 판사들도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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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지은 기자] [수습기자 법정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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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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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을 통해 스토킹이 뭔지 알았고..."

지난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 피고인석에 앉은 20대 남성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 남성은 스토킹 혐의로 기소돼 법정에 출석했다. 여자친구가 이별을 고하자 분노한 남성은 '발신자 정보 없음'으로 새벽 4~5시쯤 전화를 걸었다. 도합 12번이었다. 변호사가 옆에서 변론했다.

"피해자에게 공포감을 주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피고인은 그 행위가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스토킹 혐의로 기소된 대다수 피고인들은 "몰랐다"는 말을 자주 한다. 지난 9일 헤어진 연인에게 52번 전화 통화 시도를 하고 문자 메시지 82회, 카카오톡 메시지 152개를 보내 스토킹 혐의로 기소된 40대 여성도 그랬다. 당시 변호인은 "말로만 듣던 스토킹 범죄에 관여했다는 사실에 피고인 스스로도 놀란 상태"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21일 정부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처벌법)을 시행했다. 지속적 또는 반복적인 스토킹 행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흉기 휴대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다.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스토킹 행위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어떤 행위로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 대하여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기 △주거지나 직장, 학교 등 일상생활을 하는 장소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기 △우편이나 전화, 온라인 등을 통해 물건이나 글, 영상 등을 전달하기 △물건 등을 배달하거나 주거지 등에 두는 행위 및 훼손하는 행위 등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스토킹의 정의는 여전히 명확지 않다. 법원에서도 어떤 행위를 스토킹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지난 23일 연인에게 이별통보를 받은 남성은 협박성 문자를 총 17회 전송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반면 지난 7일에는 헤어진 연인에게 하루 4시간 10여차례 전화를 시도한 50대 남성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 여성이 전화를 받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부재중 전화는 현행 스토킹법상 범죄 요건인 '물리적 접근, 직접적 도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법원의 이런 판결에 성명을 내고 "스토킹을 정의한 법 규정을 지나치게 법 기술적으로만 해석해 피해의 맥락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고 유감을 표했다.

23일 스토킹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성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다음달 23일 나온다. 담당 판사는 재판 당시 이 남성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새벽 4~5시 전화를 12번이나 하면 나 같아도 무섭겠어요. 피해자는 당연히 불안하겠죠. 개인적으로는 전화받으면 유죄, 안 받으면 무죄, 이건 아닌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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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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