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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슈 유가와 세계경제

유가 안정 급한 바이든…'밉상'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 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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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석유 공급량을 놓고 중동과 힘겨루기 중인 미국 정부가 26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원유 매장국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출 제재를 일부 완화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세계 에너지 시장을 감안한 조치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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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미국 정부는 26일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 제재를 일부 완화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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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이날 미 석유 기업 셰브런의 베네수엘라 석유 생산·수출 재개를 2년 만에 허가했다. 셰브런은 베네수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미국 정유사로,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PDVSA(Petroleos de Venezuela SA)와 만든 합작회사를 통해 현지에서 석유를 채굴해왔다. 그러다 지난 2020년 미 정부가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을 제재하며 철수했다.

미국 정부가 제재를 완화한 건 반미·독재 행보를 걷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부가 지난 24일 야권과 협상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란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며 인플레이션이 심화하자 베네수엘라 원유를 시장에 풀기 위해 이런 조치를 취했단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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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브런은 베네수엘라에 있는 유일한 미국 정유사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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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부는 세계 주요 산유국 모임인 오펙 플러스(OPEC+)에 러시아를 압박하고 에너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석유 증산 요청을 해왔지만, OPEC+가 이를 묵살해 곤욕을 겪어왔다. 최근 OPEC+가 증산을 논의하고 있단 보도가 나왔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측에선 해당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NYT는 "바이든 정부는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정상화를 위한 일일 뿐이라며 이런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면서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전쟁이 벌어지며 유가가 급등한 상황에서, 막대한 원유를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전략을 바꿀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 역시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세계 에너지 시장에 도움이 되는 조치"라며 미국 정부가 노린 바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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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집권 이후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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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76만 배럴 정도지만, 셰브런의 생산이 본격화하면 하루 20만 배럴 정도를 더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베네수엘라는 1990년대만 해도 하루 300만 배럴을 생산했었지만, 부실한 정유시설 관리, 미국의 제재 등으로 생산량이 확 줄어들었다.

미국 정부가 부패, 인권 유린 등을 이유로 베네수엘라 정부에 제재를 시작한 건 15년 전이다. 2013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집권하며 갈등은 더욱 커졌다. 2018년 대선에서 부정선거 논란 속에 마두로가 승리하자 미국 정부는 '임시 대통령'을 선언한 야권 지도자 후안 과이도를 인정하며 제재 강도를 더욱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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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로 대통령에 맞서고 있는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후안 과이도.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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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베네수엘라에 가장 큰 타격이 된 건 2020년 원유 수출 제재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기업은 물론 다른 외국 기업들도 베네수엘라 석유를 사는 것을 금지한 탓에 베네수엘라는 중국, 인도 등 일부 국가와만 헐값으로 겨우 거래할 수 있었다. 이 나라 경제는 더욱 공황 상태에 빠졌다. 그러다 마두로 정부가 후안 과이도 측과 협상을 시작하며 미국과도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이번 제재 완화를 두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WSJ는 "공화당에선 바이든 정부가 독재자와 타협했다며, 마두로 정부에만 힘을 실어준 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번 제재 완화는 '맛보기'에 가깝다. WP는 "6개월 동안만 유효한 허가이며, 다른 나라가 아닌 미국에만 석유를 수출할 수 있게 하는 등 여러 제약이 있다"고 보도했다. PDVSA는 원유 판매에 따른 수익도 가져갈 수 없다. 미국 회사들에 진 부채를 갚는 데 써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부과한 다른 제재들도 여전히 남아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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