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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볼링선수 사위가 대장간 장인으로...70년 명맥 향한 충북대장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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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 노포기행]<95>성남 충북대장간
낫 만든 장인어른에게 대장간 받은 사위
단순 대장장이 아닌 전통철물 만드는 장인
한국문화예술대 객원교수로...후진 양성도
한국일보

지난 17일 정형구 대표가 경기 성남 수정구 충북대장간에서 납품 주문받은 공구를 만들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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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의 한 허름한 골목에 들어서자 '성남충북대장간'이라고 쓰인 하얀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대장간에 들어서자, 쇠 두들기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모루(대장간에서 받침으로 쓰는 쇳덩이)에 올려진 벌건 쇠막대가 날카로운 텐트용 못으로 변신 중이었다. 몇 번의 담금질이 필요한 것일까. 대장간 주인 정형구(56)씨가 가마에 달궈진 굵은 쇠막대를 꺼냈다. 파워해머로 40번 정도 때린 뒤 모루에 올려 망치로 60번 정도를 두들기자 몽골텐트용 정이 만들어졌다. 정씨는 "100번 정도 치니까 정이 만들어진다는 걸 저도 처음 알았네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대장간 안쪽 800도가 넘는 가마에는 아직 못으로 변신할 쇠막대 10여 개가 불에 달궈지고 있었다.

충북대장간 간판으로 성남에서 65년 넘어

한국일보

지난 17일 정형구 대표가 경기 성남 수정구 충북대장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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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에서 유일하게 65년 넘게 전통 방식의 공구를 생산하는 곳이 충북대장간이다. 이날 정씨가 만들어내는 텐트용 못은 요즘 캠핑을 즐기는 인구가 늘면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텐트와 함께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캠핑 경험이 좀 된다 치면 직접 대장간을 찾아 구매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정씨의 귀띔이다. 충북대장간의 1대 주인은 정씨 장인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장인 고향이 충북 증평이라 붙인 이름이다. 정씨 장인은 증평에서 낫 만드는 일을 배운 후 성남에서 대장간을 열었다. 정씨는 "장인은 아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대장간 일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성남에서 대장간을 차려 독립한 건 1950년대 초반”이라고 했다.

대장장이가 된 볼링 선수

한국일보

17일 경기 성남 수정구 충북대장간에서 주인 정형구씨가 공구를 만들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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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을 장인으로부터 물려받기 전까지 정씨는 경력 15년 차 볼링 선수였다. 실력이 뛰어나 성남시 대표로 아마추어 선수 생활까지 했다. 평생 볼링을 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을 했던 정씨 인생을 바꾼 건 결혼이었다. 결혼 이후 주말까지 대장간에서 일을 하는 장인과 장모를 돕다가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대장장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일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비교적 제작이 쉬운 농기구들이 많이 팔렸다. 하지만 쉽게 생각하던 일은 2001년 장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달라졌다. 수십 년간 담금질을 해 온 장인의 실력을 따라갈 수 없었다.

충북대장간을 찾은 단골들도 "공구가 예전 같지 않네"라며 장인의 솜씨를 그리워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정씨는 전국의 유명 대장간을 모두 찾아 다니면서 기술을 연마했다. 망치 두들기는 법을 배운 곳도 서울 수색동의 형제대장간이다. 눈으로 익혔다. 일요일마다 대장장이 선배들이 만드는 것을 보면서 그 과정을 머릿속에 담고 똑같이 반복했다. 정씨는 "다른 대장간 장인들이 만드는 것을 보고 다시 몇 번을 따라하다 보면 그제야 비슷한 제품이 탄생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농기구에서 건축공구로 전환

한국일보

정씨가 조그만한 철조각 하나로 만든 일반 호미. 임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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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곡차곡 실력을 쌓은 정씨는 건축공구 제작에 주력했다. 수도권에서 농기구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탓도 있다. 정씨는 "요즘에는 농사 짓는 분들이 많지 않고, 대부분 기계로 의존하기 때문에 농기구보다 건축공구를 주력해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망치와 도끼 등 그의 손을 거치면 어떤 쇠막대도 훌륭한 공구로 변신한다. 주재료인 쇠가 제품의 질을 좌우한다. 이 때문에 정씨는 평소 충분한 신뢰를 쌓은 철재상과 거래한다. 특히 망치의 경우 강도가 좋아야 하기 때문에 철재상에 원하는 종류의 쇠를 주문한다. 쇠를 달구는 온도도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쇠가 녹는 온도는 1,538도다. 하지만 쇠 굵기에 따라 800~1,000도 사이에서 작업을 한다. 도끼는 1,400도 정도 돼야 한다.

정씨는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제품과 질부터 다르다"고 말했다. 경기 광주에서 광산괭이를 구입하러 충북대장간을 찾은 한 손님은 "한동안 서울 천호동의 한 대장간에서 구매해 사용했는데 충북대장간 제품을 사용한 후부터는 이곳만 이용한다"며 "다른 곳보다 규모도 크고 가격도 저렴한데 질도 좋다"고 추켜세웠다. 주말 농장을 운영하는 한 손님도 "여기 도끼가 잘 부러지지 않고 오래 쓴다"며 "이 자리에서 대장간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통철물 만드는 문화재장인 된 대장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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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 충북대장간에서 주인 정형구씨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객원교수로 임명된 위촉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임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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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숭례문 화재는 정씨 대장장이 인생의 또 다른 변곡점이었다. 숭례문 화재 이후 복원 과정에서 ‘전통철물’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하지만 정씨는 당시만 해도 전통철물이나 문화재 철물이란 개념이 낯설었다. 그는 "한옥철물 정도를 귀동냥으로 들어봤지 전통철물은 처음 들어봤다”고 했다.

하지만 전통철물에 호기심이 생긴 정씨는 2013년 한국전통문화대학원 전통철물 과정에 도전해 2년 동안 기초반과 심화과정반을 모두 마쳤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전통철물과 일반철물의 차이를 알았다. 대문의 문고리부터 대접쇠 등 다양했다. 특히 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대로 철물을 제작하는 것은 여간한 기술로는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경복궁 비녀장 문고리나 창덕궁에 쓰인 전통철물 중에서도 정씨의 손길을 거친 게 상당수다.

이런 그의 능력은 이제 후배들에게 전수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국전통문화대학원 객원교수로 위촉돼 강의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정씨는 "자식이 대를 이었으면 좋겠지만 일단 생각이 없는 것 같아 후진 양성에 힘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동종업계 기능인 대부분이 70대 이상 고령이라, 그분들이 손을 놓으면 끝이라는 생각에 강의에도 더 힘을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3년 전부터 서울지하철 8호선 모란시장역 인근에 자리를 잡고 충북대장간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지금 부지가 도로에 편입돼 또다시 이전을 해야 할 처지다. 하지만 대장간의 특성상 새로운 자리를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정씨는 “먼지와 소음이 많아 대장간을 옮기는 게 쉽지 않다”며 “성남을 떠나고 싶지 않은데 마땅한 자리가 없어 막막하다”고 했다. 지자체가 전통철물 체험장 공간이라도 만들어 줬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정씨는 "부지만 제공해 주면 전통철물 체험장을 만들어 지역 명물로 만들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지난 17일 경기 성남 수정구 충북대장간에서 주인 정형구씨가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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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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