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이한 작가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로서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남녀가 함께 고민해 볼 지점, 직장과 학교의 성평등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남원 예촌 거리의 이몽룡, 성춘향 동상. 최흥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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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칼럼에서 행주대첩을 예로 들어, 임진왜란 때 여성들이 기여한 역사적 사실이 정식 기록으로는 전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당시 엘리트 남성들은 왜군에게 강간당한 후 목숨을 끊은 여성들의 사연만 전시 여성의 업적으로 기록했던 것이다. 조선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장 중요하게 기대되는 가치는 정조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그렇게나 정절이 소중한 가치라면, 여성들에게 정절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 아닌가? 전쟁 때였기에 어쩔 수 없이 적군에게 전시 성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을 모두 보호하지는 못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조선 사회는 자국민 남성들에게 성폭력당하는 여성이 정절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평화 시에는 만들어 주었을까? 정절을 지키려는 모든 여성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을까?
이번에는 고전소설 '춘향전' 이야기다.
'춘향전'은 한시와 중국 고사,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여러 시조와 민요 작품을 인용하는 등 19세기까지의 우리 국문학과 한국한문학(한국인이 한자로 쓴 한문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마치 요즘의 랩처럼 각운을 이용한 언어유희를 구사하는 등 당시 민중들의 언어습관과 해학도 반영했다. 국문학 산문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별춘향전(완판본).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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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춘향전'이 '여성의 절개'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주제를 담고 있기에 좀 거리감을 갖게 된다는 분들도 있다. '춘향전'이 판소리 '춘향가'에서 유래한 판소리계 소설의 특징을 갖기에 생긴 오해다. '춘향전', '흥부전', '심청전', '토끼전' 등 판소리계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양반 구미에 맞는 주제를 내걸고 있다. 판소리는 양반과 상민이 같이 있는 자리에서 구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상민들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 겉으로는 형제간의 우애를 내세웠지만 한편 빈부차를 고발하는 '흥부가'처럼. '춘향전'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는 양반의 유교도덕을 반영하여 열녀의 정절을 강조했지만, 이면적으로는 탐관오리 비판에 신분차를 극복한 사랑, 인간평등, 신분상승 욕구 등 다양한 주제의식이 보인다고 연구자들은 설명한다.
여기서 잠깐, 나는 '춘향전'을 '퇴기의 딸로 천한 신분인 춘향이가 정절을 지킨 덕분에 양반의 본처가 되어 신분상승을 이룬 이야기'라고 보지 않는다. 어릴 때 동화책으로 읽은 축약본 내용 말고 '완판본'과 '경판본', '이고본' 등 현대어 번역으로 출간된 춘향전의 전문을 읽어보면, 이몽룡과 인연을 맺던 처음에 춘향은 정실부인이 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춘향은 이도령이 한양으로 갈 때 성공한 후에 잊지 말고 첩실로 데려가 달라고 당부한다. 또 이도령에게 장가가기를 권한다. 본처를 얻은 후에야 첩을 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춘향은 현실을, 자기 신분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춘향이 변한다. 새로 남원 부사로 부임한 변학도의 수청 요구를 거절하고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과정을 겪으면서.
여성의 정절을 강조하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미풍양속을 바로잡는다며 열녀를 찬양한 조선이었다. 그러나 국가가 정절을 지키려는 모든 여성에게 협조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할 양반가 여성은 정절을 지키면 칭송받지만 양반 남성의 성 노리개가 되어야 할 낮은 신분의 여성들에게는 정절을 지킬 권리가 없다. 하층민 여성들은 정절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었다. 춘향이처럼 '수청'이란, 공권력을 동원한 상층 남성들의 성착취에 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변학도의 강요를 받은 퇴기의 딸 춘항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이에 춘향은 여성의 정절이나 절개가 신분에 따라 달리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각성해서 외친다. "절개는 신분을 가리지 않으오이다"라고. 그러므로 춘향이가 정절을 지킬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천부인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변사또에게 저항하는 것은 공권력에,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소설 결말에서 춘향이는 이도령의 첩실이 아니라 정실부인이 될 수밖에 없다. 절개를 지켰기에 보상받은 것이 아니다. 각성하여 저항한 존재는 그 이전보다 한 단계 올라갈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기 때문이다. 신분제 사회에 성립한 소설이니 이를 계급상승으로 표현했을 뿐.
1961년 홍성기 감독의 영화 '춘향전' 포스터.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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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만 각성하고 성장했는가? 이도령을 보자. 경판본 춘향전 소설 발단부분에서 춘향이가 퇴기의 딸이라는 방자의 말에 이도령은 "얼사 좋을시고! 제 원래 창녀면 한번 구경 못 할쏘냐? 방자야 네 가서 불러오너라"라고 말한다. 그저 성경험을 한 번 해보고 싶었을 뿐, 이도령은 춘향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미성숙하던 이도령은 춘향이의 저항 덕분에 진실한 사랑에 눈뜬다. 탐관오리의 횡포와 민중의 고난도 알게 되어 암행어사로서도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다. 드디어 춘향과 이몽룡은 신분차에 제약받지 않고 같은 인간으로 동등한 관계를 맺게 된다. 바로 이 점이 '춘향전'이 시대를 초월한 고전 명작인 이유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노트르담 드 파리' 못지않게 혁명적인 사랑과 저항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표면적 주제가 '여성의 정절'인데 '춘향전'의 전문을 읽다보면 주제에 어긋나는 장면이 많이 보인다. 변사또의 성폭력 모의에 포졸 등 거의 모든 남성들이 공모하고 춘향이를 성희롱하고 있는 점. 수청 들기를 거절하는 춘향에게 "너희 같은 천한 기생 무리에게 '충렬' 두 자가 웬 말이냐?"고 회계 나리는 비웃는다. 춘향을 체포하러 가는 사령은 고소해한다. 심지어 춘향의 아버지 친구는 해몽을 하러 감옥에 와서 춘향이의 다리를 만지며 성추행까지 한다. 그렇게나 정절을 강조하던 조선시대 남성들인데, 억울한 춘향이를 지켜주지도 않고 춘향이가 절개를 지키도록 돕지도 않는다.
이유가 뭘까? '고년 도도하게 굴더니 잘 되었다!'며 춘향이를 신나게 체포하러 가는 사령들의 경우처럼 자신들을 한번 상대해 주지 않은 것이 괘씸하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남성인 그들은 '상대가 사또든 이도령이든, 본인이 원하는 상대와 성관계를 하고, 싫은 상대와는 성관계를 안 하겠다'는 춘향이의 의도(현대적 표현으로 이게 바로 성적 자기결정권이다)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하니 존중해줄 리가. 변사또든 포졸이든 이 조선 남성들은 자신에게 순순히 성적으로 이용당해주지 않는 여자는 그저 자신을 무시하는 '나쁜 년'으로 여기는 것이다. 아아, 익숙한 토종 패턴이다.
"실로 너의 몸이 천한 기생으로 처지를 생각하지도 않고 수절을 하는 것은 대관절 무관 까닭인가? 또한 관장에게 첫 대면을 하고서 발악을 하며, 관장을 업신여기니 해괴망측한 일이로다. 그 죄는 죽어 마땅하니 엄히 다스려 매우 치노라." 춘향이를 형틀에 묶은 후 형방이 읽는 판결 사연이다. 여기에 맞서 춘향은 전혀 기죽지 않고 매를 맞으며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를 '십장가(十杖歌)'라고 하는데, 한 대 맞고 "일편단심(一片丹心) 굳은 마음 일부종사(一夫從事) 뜻이오니~" 하는 식으로 그 숫자가 들어가는 노래를 부르는 일종의 '숫자송'이다. 여덟 번째 매를 맞으며 춘향은 외친다. "팔자 좋은 춘향 몸이 팔도 방백 수령 중에 제일 명관 만났구나. 팔도방백 수령님네 치민(治民)하려 내려왔지 악형하려 내려왔소?"
25대나 매를 맞으면서도 춘향은 운율과 대구가 딱딱 맞아서 '이게 바로 조선의 힙이구나' 싶은 노래를 불러 저항한다. 자신의 사랑과 절개를 알리기도 하지만 권력의 횡포를 고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렇다면 춘향은 단순한 열녀가 아니라 '미투 고발 선구자'다. 그리고 '춘향전'은 최고의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는 '미투 고발문학'이다.
전북 남원 광한루원 내 춘향사에 걸린 미인도 형태의 춘향 초상화. 박신영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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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춘향전'은 여성의 정절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자신이 이용하려는 여성의 정절 지키기는 매로 다스리는 조선시대 남성들의 이중적 도덕관을 드러낸다. 엄격한 신분사회지만 성폭력을 공모할 때는 계급차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는 남성 연대를 반영한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남성의 '강간할 권리'는 인정하고, 거절당한 여성에게 폭력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여성이 성폭력에 목숨 걸고 저항해서 만신창이가 된 모습을 드러내야만 비로소 그 여성을 '진정한 피해자'로 인정하는 성차별 사회의 모습을 고발한다.
이쯤되니 '춘향전'의 시대적 배경이 과연 조선 숙종 때였는지 헷갈린다. 아아, 역시 고전 명작이란 시대를 초월하여 현실에 적용되는구나.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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