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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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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코리아] 단골 H씨 오는 때가 정말 코로나 끝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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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게 음악 애호가 일본인 H씨, 한국 좋아해 매년 두 차례 방문

값싼 비행편 골라 타던 그가 다시 오면 코로나 종식 실감할듯

우리 커피점을 방문하는 손님은 12년 전 창업한 이후부터 90퍼센트 이상 한국 사람들이지만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물론 일부러 일본에서 날아오는 단골 손님도 몇 분 계신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눈에 띄는 인물이 바로 ‘레게 선인(Reggae仙人)’인 H씨다.

조선일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사태로 한일 바닷길이 끊긴지 2년 8개월 만에 여객선 입항이 재개된 4일 오후 부산시 동구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 일본 후쿠오카에서 출발한 퀸비틀호를 타고 온 관광객과 승무원들이 창밖을 향해 손을 흔들며 입항하고 있다./2022.11.04 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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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는 지금 60대니까 처음 만났을 때는 50대였을 것이다. ‘레게 선인’이란 별칭을 갖고 있긴 해도 레게 음악의 대가 밥 말리 같은 화려한 드레드 헤어(머리카락을 여러 가닥으로 땋아 늘어뜨린 머리)를 한 것도 아니고, ‘거북 선인’(애니메이션 ‘드래곤볼’의 등장인물로 한국판 캐릭터 이름은 무천도사)처럼 긴 수염을 가진 것도 아니다. 겉보기만으로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나의 아버지를 연상케 하는 검소한 옷차림이다. 그렇다면 왜 레게 선인이라고 불리느냐 하면 바로 그가 진정한 레게 음악 애호가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에 홍대 ‘걷고 싶은 거리’의 중간쯤, 현재는 정신 없는 버스킹 존이 이어지는 길 앞 건물 지하에 ‘R’이라는 레게 바가 있었다. 크기는 10평 정도. 일본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그 가게에는 항상 시원한 레게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우리 부부는 아늑한 공간과 맛있는 맥주 한 병(북한에서 온 대동강 맥주도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 사장님과의 소통을 즐기러 자주 찾아가곤 했다.

그러던 중 사장님으로부터 혼자 앉아 있던 일본인 아저씨 H씨를 소개받았다. 이야기를 들었더니 그는 일본에서 주말마다 레게 파티를 돌아다니는 생활을 보내고 있고, 레게의 본고장인 자메이카를 방문한 적도 있다고 하는 진지한 레게 팬이라고 알게 되었다. 또 한국의 사물놀이도 좋아해 연주자와도 친분이 있다고 한다.

R은 많은 홍대 사람들이 아쉬워했지만 2014년 문을 닫았다. 그러자 H씨는 한국에 올 때마다 우리 커피점을 방문해 바 자리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거친 간사이 사투리로 나랑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다니던 회사를 조기 퇴직 했고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는 H씨. 한 해에 두 번 정도 한국을 방문해 단골 고시원에서 2주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며 서울에서 레게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참석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레게 음악이 크게 유행하는 것 같지도 않은 한국에는 왜 자주 오는 걸까? 내가 그렇게 질문했더니 H씨는 또다시 내 상상을 뛰어넘는 답변을 했다. 동대문시장에서 너무나 신기 편한 스니커즈를 한 켤레에 단돈 만원에 팔고 있는데 이것을 대량 구매하러 왔다는 것이다. 값이 싼 만큼 금방 바닥이 닳아 빨리 버리게 되지만 비싼 구두를 오래 신는 것보다 훨씬 효율이 좋고 기분도 좋다고 장담하는 그였다. 보여준 신발은 ‘컨버스’처럼 생겼으나 컨버스라고 써 있어야 할 위치에 다른 영어가 적혀 있었다.

신기한 인물이지만 그는 일본 미디어에 자주 나오는 한국에 대한 정보를 따라가는 일이 없이 자기만의 방법으로 한국을 좋아하고 체류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그의 자유로운 영혼이 부럽게 느껴졌다. 레게 음악이 흐르지 않는 우리 커피점에서는 레게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그는 이번 비행기 값이 “무려 3000엔”이었다고 하면서 최저가 항공편을 구입하는 방법을 신나는 목소리로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 H씨도 역시 2020년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다. 예전처럼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비행기 티켓 값이 엄청 싸지고 H씨가 다시 우리 커피점을 찾게 될 때야말로 코로나가 정말로 끝났다고 실감할 것이다.

[시미즈 히로유키 아메노히커피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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