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업무개시명령 발동 검토" vs 화물연대 "첫날부터 엄포만"
현대제철 5만t 출하 중단…시멘트 업계도 '비상'
국토부 차관-화물연대 위원장 10분대화…"언제든 만나겠다"
멈춰 서있는 화물차 |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24일 0시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파업 출정식이 열렸다.
파업 첫날부터 곳곳에서 물류 운송에 차질이 발생했다.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평상시보다 60% 감소했다.
다만, 정부는 전국적 물류 피해는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정부는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하며, 업무개시명령 발동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 1만명 출정식 참여…"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조합원들은 대형 화물차량을 도열시키고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와 차종·품목 확대 적용을 요구했다.
수도권 물류 거점인 경기도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선 조합원 1천명이, 국내 최대 석유화학·철강업체가 밀집한 전남 광양항에는 2천명이 모였다.
이봉주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은 "한 달 내내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하고 겨우 생활비를 가져가는 화물노동자가 더는 죽음과 고통을 연료 삼아 화물차를 움직일 수 없다"며 "안전운임제만이 화물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제도"라고 강조했다.
화물연대는 1만1천명, 정부는 9천600명이 출정식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했다.
경찰과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화물연대는 "물리력·강제력을 동원한 입구 봉쇄 등을 지침으로 내리지 않는다"며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비조합원과 조합원들이 운송을 중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총파업' |
◇ 컨테이너 반출입량 평시의 40% 수준
정부는 파업 첫날 물류 수송에 큰 차질은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는 전국 12개 항만의 컨테이너 장치율이 오후 5시 현재 64.2%로, 평상시(64.5%)와 큰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장치율은 항만의 컨테이너 보관 능력 대비 실제 보관된 컨테이너의 비율을 뜻한다.
국토부는 "주요 화주·운송업체들이 집단운송 거부에 대비해 물량을 사전에 운송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피해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업들은 초긴장 상태다.
시멘트업계는 지난 6월 파업 때처럼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았다.
전국 시멘트 공장에선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가 운행을 멈추며 시멘트 출하가 중단됐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이날 하루 약 20만톤(t)의 출하가 예정돼 있었으나 파업 여파로 실제 출하량은 1만t에도 미치지 못했다.
협회 관계자는 "시멘트 가격을 t당 10만원으로 볼 때 약 190억원 상당의 물량이 출하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건설현장도 비상이다. 다음 달 초 분양에 들어가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은 레미콘 타설이 중단될 위기를 맞게 됐다.
철강업계도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하루 평균 5만t 물량을 출하하는 현대제철은 당진·포항·인천·순천·울산 공장에서 물량을 전혀 내보내지 못했다.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우리 경제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복합위기를 맞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파업 철회와 안전운임제 폐지를 촉구했다.
브리핑실 향하는 장관들 |
◇ 정부 "무관용 원칙"…업무개시명령 발동 준비
정부는 화물연대의 출정식 이후 바로 대국민 담화문을 내 "정당성과 명분이 모두 없는 매우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하고,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응을 강조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의왕 ICD에서 현장상황회의를 열어 물류 차질 등 피해가 커지면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실무 준비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은 운송사업자나 운수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화물운송을 거부해 국가 경제에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국토부 장관이 업무개시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업무개시명령을 받은 화물기사 등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고 화물운송사업자 면허도 취소된다.
지금까지 운송개시명령이 발동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원 장관은 "이르면 다음 주 화요일 국무회의 또는 임시국무회의를 열어서라도 주어진 의무를 망설이지 않고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안전운임제를 영구화하고, 적용 차종과 품목을 확대하라는 화물연대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에 화물연대는 "모든 행정 기관이 나서서 협박만 늘어놓고 있다"면서, 정부가 엄포를 놓은 업무개시명령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화물연대 파업, 기아 완성차 운송 차질 |
◇국토부-화물연대 평행선…부산신항에 '장관 집무실'
파업 첫날 국토부와 화물연대 양측의 교섭은 이뤄지지 않았다.
어명소 국토부 2차관이 이봉주 위원장과 의왕 ICD에서 10분가량 만났지만, 의미 있는 대화가 오가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화물연대 측에 교섭 제안을 했기에, 제안에 응해오면 언제든지 만나겠다"고 밝혔다.
화물연대도 비슷한 입장이다. 이봉주 위원장은 "대화를 거부한 적이 없으며, 언제든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화물연대 파업 대응을 총괄 지휘하기 위해 이날 저녁 부산항에 임시 사무실을 차렸다. 원 장관은 집단운송거부가 끝날 때까지 물류 현장을 집무실로 삼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중앙수송대책본부를 통해 비상수송대책을 시행하는 한편, 부산항·인천항 등 주요 물류 거점에 군 위탁 차량 등 관용 컨테이너 수송차량을 투입했다. 긴급 물량은 경찰 보호를 통해 반출하고 있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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