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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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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이 쓰던 달력, 일본서 돌아왔다…'이순신 최후 순간'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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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 일상 기록한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 공개…사료적 가치 커

경자년 대통력은 처음…'술 제조법' 등 기존 문헌에 없는 자료 주목

연합뉴스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 모습
6월(왼쪽)과 7월 부분. 일본의 포로였던 강항의 귀국과 관련된 내용이 6월 5일자에 기록돼 있고, 7월 4일 의인왕후의 승하 소식과 관련한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에 오른 문신이자 '징비록'의 저자로 잘 알려진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쓴 것으로 보이는 달력이 국내로 돌아왔다.

관련 유물이 많지 않은 데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어 주목된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류성룡이 생전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庚子. ※문화재 명칭은 한글 맞춤법 기준에 따름)를 확인해 지난 9월 국내에 들여왔다고 24일 밝혔다.

'대통력'은 오늘날의 달력에 해당하는 책력(冊曆·월일과 절기 등을 적은 책)이다.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어 농사를 짓는 데 유용하게 쓰였고 일상에서도 많이 활용했다. 책자 형태로 돼 있어 날짜 옆에 일정이나 개인적인 생각 등을 적기도 했는데 일종의 다이어리와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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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 권수제면 모습
권수제면은 본문의 첫 장으로, 책의 제목이 쓰여있는 면을 뜻한다.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에 돌아온 대통력은 경자년(1600년) 한 해의 기록을 담고 있다.

대통력은 국내에서도 남아있는 유물이 많지 않은데, 경자년 대통력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물의 크기는 가로 20㎝, 세로 38㎝로 흔히 쓰는 A4 종이보다 조금 긴 편이다.

책자에는 먹물로 쓴 글씨를 뜻하는 묵서(墨書), 붉은색의 주서(朱書) 등으로 그날의 날씨, 약속, 병의 증상과 처방 등이 적혀 있다. 글이 적힌 날짜를 세어 보면 총 203일로, 지금으로부터 422년 전의 일상을 기록했다.

문화재청은 "기재된 필적과 주로 언급되는 인물, 사건 정보 등을 토대로 류성룡의 연대기가 기록된 '서애선생연보'(西厓先生年譜) 등을 검토한 결과, 그의 수택본(手澤本)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수택본은 소장자가 가까이 두고 자주 이용해 손때가 묻은 책을 뜻한다.

이번 대통력은 임진왜란 당시 군사 전략가로도 활약한 류성룡이 남긴 기록이라는 점에서 중요한데다 그 안에 담긴 내용상으로도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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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 표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전사 정황에 대한 내용이 쓰여 있다.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별도 표지 없이 종이를 사용해 임시로 책을 매어둔 표지에는 총 83자가 남아있다. 위아래가 일부 잘려져 있는 이 글에는 '여해'(汝諧)라는 이름과 함께 '전쟁하는 날에 직접 시석(矢石·화살과 돌)을 무릅쓰자, 부장들이 진두지휘하는 것을 만류하며 말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여해는 이순신의 자(字), 즉 충무공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이어진 글은 '직접 출전해 전쟁을 독려하다가 이윽고 날아온 탄환을 맞고 전사했다'고 번역할 수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주변의 만류에도 전장에서 지휘하다 전사한 상황을 묘사한 기록이다.

류성룡과 이순신 두 사람이 지금의 서울 중구 인현동에 해당하는 '한양 건천동'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대목이다.

대통력에는 정유재란 때 붙잡혀 일본으로 끌려간 강항(1567∼1618)이 포로 생활을 마치고 1600년 돌아온 일 등 당대 상황과 역사적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도 곳곳에 있다.

이 밖에도 술을 어떻게 담그고 익히는지 제조법을 적은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번 대통력은 새로운 자료를 찾아냈다는 점에서도 뜻깊다.

류성룡의 종손 가에서 소장해 온 문헌과 각종 자료인 '유성룡 종가 문적'(柳成龍 宗家 文籍)은 현재 보물로 지정돼 있다. 여기에는 대통력 6책이 포함돼 있지만, 경자년 기록은 새로운 것이다.

이처럼 귀중한 자료가 국내로 돌아오는 데는 '조력자'들의 도움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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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 일부분
1600년 경자년의 24절기 일시를 표기한 부분(오른쪽)과 연신방위지도 부분(왼쪽). 연신방위지도는 한 해 동안 각 방위의 길흉을 점치는 데 참고하는 그림을 뜻한다.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통력은 일본인 소장자가 2년 전 경매를 통해 사들였는데, 김문경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가 올해 5월 관련 내용을 문화재청과 재단 측에 알리면서 그 존재가 드러났다.

김 교수는 지난 2005년 일본의 한 경매에서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왜군을 무찔렀던 김시민 장군의 공신교서(功臣敎書)가 거래됐다는 사실을 확인해 국내에 알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정보를 입수한 재단 등은 고전학자인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에 자료 확인과 번역을 맡겼다.

약 두 달간 관련 내용을 검토한 끝에 이순신 장군 관련 기록 등이 확인됐고, 재단은 3차례의 평가위원회를 거쳐 유물을 확보할 수 있었다. 유물 구입에는 복권기금을 활용했다.

제자리를 찾은 대통력은 향후 류성룡 연구에 중요하게 쓰일 전망이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향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안전하게 보존 관리하면서 조선의 과학 문화재와 함께 류성룡 관련 원천 자료로서 연구·전시 등에 폭넓게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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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류성룡이 쓰던 달력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
(서울=연합뉴스) 김민지 기자 = minfo@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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