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9월 18일 폴 뉴먼의 모습. 80년대 친구였던 작가 스튜어트 스턴과 함께 준비했던 그의 회고록은 2008년 그가 숨진 지 14년 만에 발간됐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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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완벽한 남자였다. 아름다우면서도 남성적이고, 내면이 깊었다. 50년의 결혼 생활은 이상적이었고,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사후 14년이 지난 지금) 그의 명성은 더욱 빛나게 됐다.”
‘할리우드의 전설’ 폴 뉴먼(1925~2008)에 대해 가디언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이렇게 평가했다. 최근 발간된 뉴먼의 회고록 ‘보통 남자의 특별한 인생’을 두고 “그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고 실수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했다. 더 나은 인간이었다”고 평했다. 뉴먼이 80년대 중반 출간을 준비하다가 포기한 이 회고록은 자택 창고에서 뒤늦게 발견된 녹취록을 기반으로 막내딸 클레아 뉴먼 소덜룬드(57)의 작업으로 완성됐다.
뉴먼은 오드리 헵번과 함께 60년대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배우로,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로도 꼽힌다.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 ‘허슬러’ 등이 대표작이다. 그는 80년대 중반 친한 친구였던 작가 스튜어트 스턴에게 요청해 5년간 어린 시절을 포함해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주변 사람들 인터뷰까지 했지만, 분량이 너무 방대해 출간을 포기했다. 없어진 줄로만 알았던 관련 자료는 2년 전 우연히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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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준비하던 회고록, 딸 손으로 출간
사후 14년 만에 출간된 폴 뉴먼의 회고록.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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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팬들에게는 ‘완벽한 남자’, 자녀들에게는 ‘슈퍼맨’이었지만, 스스로 끊임없이 불편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대면했다. 아내 조앤 우드워드를 평생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그 시작이 불륜이었다는 점에선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드워드와 재혼했을 때 “나는 (전처와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위로하지 않았다. 그냥 안한 게 아니라 나도 진짜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 해군으로 복무한 뒤 뉴욕에서 연기를 배웠다. 제임스 딘은 자신이 출연한 ‘에덴의 동쪽’(1954)이 대성공을 거두고, 뉴먼의 데뷔작 ‘은술잔’(1955)이 흥행에 실패하자 뉴먼을 놀렸다고 할 정도로 그와 절친했다고 한다. 뉴먼은 딘이 출연할 예정이었던 영화 ‘상처뿐인 영광’(1956)에 그가 사망한 후 대신 출연해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내 성공이 딘의 죽음 덕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무명 시절 결혼해 자녀 셋을 뒀지만, 할리우드 스타 우드워드를 만나고 이혼한 뒤 1958년 결혼했다. 우드워드와의 사이에선 딸 셋을 낳았다. 올해 92세인 우드워드는 지금도 뉴먼과 살았던 코네티컷 자택에서 지내고 있지만, 몇 년 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딸 소덜룬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기억을 잃었다. 세상은 엄마를 위해 멈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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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잃고 자선사업…수익 전부 기부
1988년 5월 19일 폴 뉴먼이 설립한 식품업체 '뉴먼스 오운'이 생산한 스파게티 소스로 만든 요리를 먹으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는 1982년 이 회사를 설립해 운영 수익금을 전액 기부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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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먼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78년 아들 스콧이 28살 때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졌을 때였다. 뉴먼은 “나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었다”며 “영화에 출연할 수 없었고, 술을 마실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 약물 남용을 예방하는 스콧 뉴먼 센터를 설립했다. 82년 식품업체를 차려 모든 수익금을 기부하고, 난치병 환아를 위한 네트워크를 운영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가디언은 “그가 평생 해온 자선활동을 나열하려면 신문 한 면을 털어도 부족할 정도”라고 했다.
뉴먼은 자신의 자선 활동에 대해 “솔직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돈을 주는 것이었다”고 말했지만, 유명인의 자선 활동에 대한 고정관념을 크게 바꿨다고 가디언은 밝혔다. 뉴먼이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을 때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고 소덜룬드는 전했다. 소덜룬드는 “정말 놀라운 점은 아버지는 살아가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계속 노력하고 성장했다”며 아버지를 기렸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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