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가운데 금제 사리봉영기의 앞면.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백제 시대 공예품의 정수이자 익산 미륵사 창건 시기를 뒤받침하는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가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승격 지정된다. 사리장엄구는 사리를 불탑에 안치할 때 사용하는 용기와 함께 봉안되는 공양물을 통틀어서 가리키는 말이다.
문화재청은 금제 사리봉영기 등 유물 9점을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31일 밝혔다. 이 유물들은 지난 2009년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서탑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탑 중심에 뚫린 사리를 넣기 위한 구멍(사리공)에서 발견됐다. 발견 당시부터 각종 구슬과 공양품을 담았던 청동합 6점이 백제의 최상품 그릇으로 확인돼 세간의 관심이 높았다. 문화재청은 청동합이 녹로(그릇을 만들 때 사용하는 돌림판)로 성형한 동제 그릇으로 한국 유기 제작 역사의 기원을 밝혀줄 중요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발견된 사리를 담는 용기인 금제 사리내호와 그것을 담는 금동사리외호도 희귀한 유물이다. 두 유물은 몸체의 허리 부분을 돌리는 형태로 동아시아 사리 관련 유물에서 유사한 구조를 찾기가 어렵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중 금동사리외호(왼쪽)와 금제 사리내호.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리장엄구'를 발견하고 수습할 당시 모습.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무엇보다 ‘금제 사리봉영기’는 미륵사 조성 연대를 밝혀주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됐다. 이 유물은 얇은 금판으로 앞뒤에 한자 193자가 새겨졌는데 백제 왕후가 재물을 시주해 사찰을 창건하고, 기해년(639년)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삼국유사에 미륵사 창건 시기가 639년으로 기록돼 있는데 유물 발견으로 실제 증거가 출토됐다는 게 학계 평가다.
다만 문화재청은 금판에 기록된 왕후가 전설 속 선화 공주인지는 알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왕후는 좌평이란 벼슬을 지낸 사택적덕의 딸로만 기록돼 있다. 미륵사 창건 설화에 따르면, 선화 공주가 가난한 집안의 아들인 서동을 만나서 서동이 무왕이 됐고, 두 사람이 미륵삼존을 만난 자리에 미륵사를 세웠다.
문화재청은 사리장엄구 유물들에 대해 “백제 왕실에서 발원해 제작한 것으로 석탑 사리공에서 봉안 당시 모습 그대로 발굴돼 고대 동아시아 사리장엄 연구에 있어 절대적 기준이 된다”면서 “제작기술 면에서도 최고급 금속재료와 백제 금속공예 기술의 역량을 응집해 탁월한 예술품으로 위상이 높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와 함께 ‘손소 적개공신교서’ ‘이봉창 의사 선서문’ 등 고려와 조선 시대 전적(글이나 그림을 묶어놓은 것)과 근대 등록문화재 6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또한 비지정문화재인 ‘봉화 청암정’ ‘영주 부석사 안양루’ ‘영주 부석사 범종각’ 등 3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