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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카드뉴스] 백성이 보고도 믿지 못한 충격적인 왕의 행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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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봐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참말인가?"

"우리 아낙네들도 빨래하다 모였수"

"떡 사세요"

"아기야, 얼른 온나"

1789년, 정조대왕이 화성 행차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중 8일간 6천여 명의 사람, 788필의 말을 동원해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치르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현륭원에 다녀가던 길이었습니다.

왕의 행차길 주위에서 상인들이 무언가를 팔고 있네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고요.

용안을 보기는커녕 행차길 주위로 사람이 모이기조차 어렵던 조선 시대 아주 보기 드물고 낯선 풍경입니다.

"백성이 입을 다물지 못했던 건 왕이 직접 대화를 건네 왔다는 점입니다. 백성과의 소통은 오래전부터 지도자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더 많이 요구할 것이라 내다봤기 때문이죠."

-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 소장

정조는 백성의 의견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했습니다. 국가 일에 참여하는 백성에게 임금을 지불하고, 부정부패를 찾아내 민원을 해결해 주려고 했죠.

여름에 무더위로 쓰러지면 약을 제조해 보내주는 등 백성의 마음을 사고자 노력했습니다. 파격적인 변화였죠.

행차길을 건설하는 과정도 돋보였습니다.

왕의 행차길이 험하면 백성이 고생하기 일쑤였습니다. 행차할 때마다 민가를 철거하거나 주변을 바꾸고 정비하는 일이 잦았는데요.

이런 불편을 줄이고자 1795년 을묘년부터는 고개가 많았던 남태령길 대신 시흥길을 선택했습니다.

정조는 전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겼는데요.

기록을 통해 폐단을 없애고, 기록과정을 하나의 매뉴얼로 지키게 해 후대의 왕이 이를 배우고 유지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환어행렬도'는 당시 시대상을 복원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을 주는 자료인데요. 기록이 상세해 값진 역사적 사료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자세히 남긴 기록으로도 정조는 우리 후세에게 백성의 입장을 깊이 헤아리는 왕의 모범이 됐습니다.

정조의 을묘년 능행을 보여주는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행사가 지난 10월 8~9일 양일간 열렸습니다.

창덕궁에서 시흥행궁을 지나 화성시 융릉까지 총 59km에 걸친 행렬이 완벽히 재현됐습니다.

"말을 탄 정조대왕과 군사들 모습이 너무 멋있어요. 저도 말을 타보고 싶어요!"

- 아빠의 목말을 타고 행렬을 지켜본 김하민(12) 군

"엄마, 아빠와 함께 말 탄 사람들을 보니 재밌었어요. 실제로 보니 말이 너무 커서 조금 무서웠어요."

- 김이현(8) 양

서울 금천구는 시흥행궁 복원의 노력 끝에 지난 7월 '시흥행궁전시관'을 열었습니다. 정조대왕 능행차 재현의 감동을 느껴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이곳에서 정조의 행행길을 함께 따라 걸어 보세요!

(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유세진 작가

seva@yna.co.kr

ys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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