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언급 없어 '파기 목적 아냐' 분석도
9·19 합의 아쉬운 건 북한도 마찬가지
서로 상대 먼저 파기하는 게 낫다 판단
이종섭 "직접 도발엔 단호한 초기대응을"
북한이 동해와 서해 완충구역 내에서 대규모 포사격을 감행한 14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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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4일 하루 사이 동해와 서해 해상완충구역에 560발의 포병 사격에 나서면서 9·19 남북군사합의가 기로에 섰다. 2018년 합의 체결 후에도 두 차례 위반 사례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정면으로 합의를 무력화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여권에선 '파기'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정확한 의도 파악이 우선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 북한은 연이은 도발 속에서도 합의 파기 언급은 자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섣부른 합의 무효화가 되레 북한의 '책임 떠넘기기와 고강도 도발'의 구실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하루 새 560발, 유례없는 9·19 합의 위반
9·19 합의 위반의 강도부터 놓고 보면 이번 도발은 이전과 성격이 다르다. 북한은 2019년 11월 창린도 포 사격, 2020년 5월 한국군 감시초소(GP)를 향한 총격 등 과거에도 합의를 위반한 적이 있지만 소규모 도발이거나 우발적 성격이 강했다. 반면 이번엔 작심하고 전방위 도발에 나선 모양새다.
이에 정부 안팎에서도 '합의 재검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합의 위반을 규탄하면서도 유지 의지를 피력했던 과거와 다른 분위기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14일 "합의가 계속 유지될 것이냐 파기될 것이냐는 결국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며 파기 가능성을 열어뒀다. 남북관계발전법상 대통령은 국회 동의하에 남북 합의의 효력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
9·19 합의 언급은 없어… 아쉬운 건 北?
북한 ‘9·19 군사합의 위반’ 다각도 도발. 그래픽=김문중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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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아직 신중한 기조다. 신범철 국방부 차관은 라디오에 출연해 "1차적 방점은 북한이 합의를 지키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측이 먼저 '파기' 카드를 꺼내들면 위협 고조 책임 떠넘기기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는 안전판이라는 점에선 남측에 더 필요한 합의이고, 어차피 북한이 파기를 들고 나올 거라면 우리가 먼저 파기 주장을 하고 나서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지도 않다. 섣부른 합의 파기는 북한의 막무가내 팃포탯(tit for tat·맞받아치기) 대응을 부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도 아직까지는 9·19 군사합의 폐지 카드를 입에 담지 않고 있다. 15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발표문도 재차 이번 도발의 이유로 주한미군의 다연장로켓체계(MLRS) 사격훈련을 지목했을 뿐 9·19 합의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2020년과 지난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합의 파기를 직접 위협한 것과 대조적이다.
침묵을 지키는 북한의 의도에 대해선 여러 갈래 해석이 나오고 있다. 9·19 합의가 아쉬운 것은 북한도 우리와 마찬가지 입장이고, 명시적인 폐기 선언을 남한이 먼저 해주면 추후 도발의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6일 "한미 공군 정찰자산의 운용 등을 제약하는 9·19 합의는 재래식 전력이 열세인 북한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주한미군의 MLRS 사격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 측에 9·19 합의를 위반하거나 파기해선 안 된다고 우회적으로 암시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부는 일단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강조하고 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이날 합동참모본부를 찾아 최근 북한의 9·19 합의 위반 행위에 대해 "의도된 일련의 도발 시나리오의 시작일 수 있다"며 "성동격서식 직접 도발이 발생할 경우 추호의 망설임 없이 자위권 차원의 단호한 초기대응을 시행하는 현장작전 종결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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