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무형문화재 궁시장 기능보유…56년째 전통 화살과 동거동락
영화 소품은 물론 외교무대 선물용 화살도 제작, 아들이 승계 중
화살 제작 시연하는 양태현 궁시장 |
(청주=연합뉴스) 윤우용 기자 =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2011년 개봉돼 74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 '최종병기 활'의 마지막 장면에서 신궁(神弓)으로 불린 '남이'는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영화 속 배경은 병자호란. 청나라로 끌려가던 피붙이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남이'는 화살 한 발을 적장 쥬신타에게 겨눈다.
숨죽이고 지켜보는 순간 부러질 듯이 휘면서 날아오른 화살은 춤을 추듯 바람을 가른 뒤 적장의 목을 명중했고, 생이별 위기에 처한 오누이는 극적 상봉을 하면서 스크린의 불이 커진다.
소품으로 쓴 화살을 만들고, 궁술에 대해 조언해준 화살 명인 양태현(71) 씨다.
2006년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16호 궁시장(弓矢匠)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그는 "영화 제작사에서 줄거리를 들려준 뒤 화살 제작을 의뢰하길래 흔쾌히 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우리나라 전통 활의 우수성을 알릴 기회라고 판단해서다.
인터뷰하는 양태현 궁시장 |
궁시장은 활과 화살을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을 일컫는다. 활 전문가인 '궁장'(弓匠)과 화살을 만드는 '시장'(矢匠)으로 나뉘는데, 그는 엄밀히 말해 '시장'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활과 화살은 칼과 더불어 인류와 역사를 함께 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궁술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우수하다고 평가됐다.
고구려 벽화에서 지금의 국궁과 비슷한 모습이 등장하고 조선시대 과거시험 무과에는 따로 궁술을 볼 정도였다.
선비들도 정신수양과 호연지기를 키우는 수단으로 활을 쏘곤했다.
화살 제작 시연하는 양태현 궁시장 |
화살은 그 쓰임새와 모양에 따라 나무로 만든 '목전'(木箭), 크기가 작은 '편전'(片箭·일명 '애기살'), 굵기가 가는 '세전'(細箭), 버드나무잎 모양의 촉을 가진 '유엽전'(柳葉箭)으로 나뉜다.
지금 국궁 등에 쓰이는 화살이 유엽전인데, 양 씨 역시 유엽전 제작에 일가견이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았다.
당시 활과 화살 만드는 일을 하던 이모부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그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겠다고 제안했고 그는 군소리 없이 그 말을 따랐다.
"그때 이모부는 전남 구례에서 제법 이름난 궁시 제작자였어요. 하루는 저에게 '손은 괜찮지 않느냐'면서 구례로 와서 기술을 배우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그는 열여섯 나던 해 이모부인 조기선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11년간 화살 제작기술을 배웠다. 온갖 잡일을 자처하면서 이모부의 예리한 눈썰미와 손기술을 놓치지 않고 체득했다.
신기전 둘러보는 양태현 궁시장 |
그가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섰다고 판단했는지, 1978년 어느 날 이모부는 그에게 1년 치 화살 만들 재료를 내주면서 "이제는 혼자서 만들어보라"고 했다. 화살은 정직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스승인 이모부한테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 그가 택한 곳은 강원도 원주다. 그곳에서 그는 5년간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한 해 7천 개가 넘는 화살을 만들었다.
그러다 활을 쏘는 지인의 소개로 1982년 청주에 정착해 자신의 이름을 건 화살 제작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인 소개로 제2의 고향이 된 청주로 이주해 공방을 차렸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국궁 인구가 급증했지만, 그는 되레 위기에 봉착했다.
개량 활과 카본 재질의 화살이 대량 생산되면서 상대적으로 값비싼 전통 화살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전통 화살에 대한 애착과 집념을 놓지 않았다. 그러고는 마침내 충북도로부터 '장인' 칭호까지 얻게 됐다
양태현 궁시장 |
그의 화살은 영화 '최종병기 활' 뿐만 아니라 '명량', '한산' 등에도 등장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 해외순방 때는 물론 최근 박진 외교부 장관 몽골 방문 때도 그가 만든 화살이 기념품으로 상대국에 제공됐다.
지금은 아들 창언(42) 씨가 그를 도와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에서 화살 공방이자 전시공간인 '청주 죽시'를 운영 중이다.
13일 기자가 공방을 찾았을 당시 부자는 화살 제작에 여념이 없었다.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화살대가 굽지 않았는지 응시하는 그의 눈초리는 매서웠다.
작업장 곳곳에는 장인의 혼과 열정이 어우러진 명품 화살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다. 하나 같이 대나무로 만든 전통 화살이다.
그가 공방 이름에 '죽시'(竹矢)를 넣은 것도 이 때문이다.
양태현 궁시장 |
그는 화살 재료로 겨우내 세찬 해풍을 견뎌낸 바닷가의 대나무를 고집한다.
이런 대나무는 가벼운 데다 겉은 단단하고 속이 무른 성질 때문에 탄성이 좋아 화살 재료로는 단연 최고다.
화살 만드는 과정은 간단치 않다.
화살대로 쓸 대나무를 곧게 펴는 졸잡기부터 불통 속에 넣고 빼기를 반복하면서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사포질까지, 큰 손만 84차례 거쳐야 한다.
소소한 작업까지 합치면 수백 번의 손길이 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화살이 목표물을 향해 날아갈 때 방향타 역할을 하는 깃도 장끼(수꿩) 털만 사용한다.
명중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그가 만드는 대나무 화살은 궁술 5단 이상의 고수에게 주어지는 칭호인 '명궁'용이다. 이 정도 활을 다뤄야 죽시를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양태현 궁시장의 아들이자 기능이수자인 양창언 씨 |
반세기 넘게 전통 화살을 만들며 숱한 고난을 겪은 그는 요즘 흐뭇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볼 때가 많다.
2014년 충북도 무형문화재 궁시장 기능이수자로 아들이 대를 잇겠다며 열심히 배우는 모습이 대견스러워서다.
양씨는 "힘든 일이라 권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아들이 가업을 잇겠다고 선언했다"며 "어릴 적부터 놀이터처럼 뛰어놀던 곳이 공방이다 보니 나름 애착이 컸던 모양"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편하고 새로운 것만 좇는 요즘 애들 같지 않게 묵묵히 일을 배우는 아들이 있어 든든하다"며 "나보다 훨씬 뛰어난 궁시 장인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아들을 응원했다.
yw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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