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재닛 옐런 미국 재무 장관(왼쪽)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28일(현지시간) 워싱턴 의사당 상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출석을 하고 있다. (C) AFP=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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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4년 10월 3일 싱가포르. 이른 아침부터 청키아우(Chung Khiaw) 은행 지점마다 사람이 몰리더니 긴 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은행이 파산 위기에 처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은행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은 루머를 더욱 증폭시켰다. 예금을 떼일지 모른다는 공포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고객들은 패닉에 빠져 은행으로 달려갔다. 앞다퉈 돈을 빼가려는 인파 때문에 은행 앞 거리는 북새통이 됐다. 질서유지를 위해 경찰까지 출동했다.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사태)은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정부가 나서 "이 은행엔 아무 문제도 없다"고 안심시켰지만 소용 없었다. 사태는 나흘째 들어 대다수 고객이 예금을 빼가고 난 뒤에야 수그러들었다.
이 은행이 망할 것이란 얘긴 사실이 아니었다. 정부의 도움으로 은행은 가까스로 파산을 피했지만, 어떻게 거짓 루머 하나가 은행을 도산 직전까지 몰고 갈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2. 때론 사실과 다른 믿음이 사람들의 행동을 바꿔 결국 그 믿음이 현실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심리학에선 '자기 실현적 예언'이라고 한다.
'자기 실현적 예언' 중 좋은 쪽으로 대표적인 게 '피그말리온 효과'다. 칭찬과 격려를 받은 아이가 더 열심히 공부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그런 사례다. 반대로 부정적인 '자기 실현적 예언'으로 들 수 있는 게 '낙인 효과'다. 한 번의 실수로 사회적 낙인이 찍히면서 실제로 행동이 부정적으로 변해가는 걸 말한다.
하지만 간혹 그 낙인을 털어내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극단적인 행태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대한민국 언론이 그렇다. 우리나라 언론엔 일종의 '원죄의식'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미리 충분히 경고하지 못하고 "펀더멘털은 튼튼하다"는 당시 정부의 안이한 주장만 옮겼다는 죄책감이다.
그래서인지 이후 한국의 일부 언론은 경제에 조금이라도 불안한 조짐이 보이면 '위기론'의 나팔수가 된다. 문제는 언론이 앞장서 경제위기론에 불을 지필 경우 멀쩡한 경제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외신들이 한국 언론을 인용해 위기론을 보도하고, 그걸 본 외국자본들이 한국을 떠나거나 더 이상 한국에 달러를 빌려주지 않을 때 위기는 현실이 된다.
#3. 물론 국민들이 위기에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경고하는 건 언론의 가장 중요한 본분 가운데 하나다. 그게 진짜 위기 국면이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상황일까. 원/달러 환율이 뛰고, 주가와 집값이 떨어지니 겉으로만 보면 경제가 불안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환율이 오르는 건 미국의 공격적 금리인상에 따른 전 세계적 '킹달러' 현상 때문이지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처럼 나라에 달러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주가와 집값이 하락하는 건 금리인상와 경기둔화 때문이다. 위기가 아닌 시장 사이클로 봐야 한다.
일각에선 환율 안정을 위해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을 서둘러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을 도외시한 주장이다. 외환시장과 외화자금시장은 서로 다르다. 달러 등 외화를 사고 파는 곳이 외환시장, 외화를 빌리는 곳이 외화자금시장이다. 한미 통화스와프는 외환시장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고 반짝 심리적 효과만 있을 뿐이다. 대신 외화자금시장엔 도움이 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외화를 빌리는 덴 별 문제가 없다.
미국 입장에서도 통화스와프를 해줄 이유가 없다. 미국은 해외에 달러를 풀어야 할 때 통화스와프를 활용한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달러를 거둬들이는 중이다. 환율 덕분에 겨우 물가를 잡기 시작한 미국이 과연 남 좋으라고 통화스와프를 해줄까.
2015년 이후 우리나라는 해외에 빚보다 자산이 더 많다. 과거 위기 때와는 다르다. 한미 통화스와프가 안 돼도 외환위기가 올 가능성은 낮다. 우리 스스로 위기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상배 경제부장 ppark14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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