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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남편 폭력’ 경찰신고 4번도 소용없었다…아내 숨진 뒤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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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현기증 호소해 조사 못 마쳐…구속영장 신청 안 해

접근금지 어겨도 “공동명의라 퇴거 요구 못 해” 황당 해명


한겨레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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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에게 살해당한 40대 여성이 경찰에 네 차례나 신고했지만, 경찰은 피의자 조사를 마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범행 8일 전 피해자는 남편이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찾아왔다고 신고했지만, 경찰은 직권으로 명령할 수 있는 퇴거 조치도 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직접 법원에 남편을 집 밖으로 내보내 달라는 ‘퇴거 신청서’를 낸 뒤 끝내 숨졌다. 지난달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에 이어 반복되는 여성 대상 폭력에 사건에 대해 실효적인 가해자-피해자 간 분리 조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전지법 서산지원 강문희 부장판사는 아내를 살해한 50대 ㄱ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6일 발부했다. 강 부장판사는 “도주 우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ㄱ씨는 지난 4일 오후 3시16분 서산시 동문동 거리에서 아내 ㄴ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잦은 폭행에 시달리던 ㄴ씨가 이혼을 요구하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숨진 ㄴ씨는 지난달 1일부터 26일까지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했다”는 내용으로 모두 4차례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지난달 9일 ㄱ씨를 불러 피의자 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조사를 받던 ㄱ씨가 어지럼증 등을 호소하며 조사를 미뤘고, 경찰은 이후 선임된 변호사와 일정을 조율하던 중이었다. 서산경찰서 관계자는 “보통 피의자를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하는데, 조사하려고 일정을 조율하던 중 사건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구속영장 신청과 별개로 ‘신당역 사건’에서 문제점으로 드러난 가해자-피해자 분리 조치는 이번에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ㄴ씨는 지난달 8일 경찰에서 피해자 조사를 마친 뒤, 직접 법원에 가해자의 100m 이내 접근금지 명령을 신청했고, 11일 뒤 법원이 이를 결정했다. 하지만 일주일 뒤인 지난 26일 ㄱ씨는 피해자의 가게를 또다시 찾아왔다. ㄴ씨는 경찰에 신고한 직후 친정집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ㄱ씨는 이후에도 친정집과 가게 등을 세 차례 찾아왔다.

첫 경찰 신고 닷새 뒤에는 가게에 찾아온 ㄱ씨가 이마가 찢어질 정도로 피해자를 폭행해 특수상해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특히 범행 8일 전에는 가해자가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했는데도, 경찰은 범행 재발 우려 때 직권으로 ㄱ씨에게 퇴거를 명령할 수 있는 ‘긴급임시조치’도 하지 않았다. 결국 사건 당일 ㄴ씨는 집에서 남편을 내보내 달라며 법원에 ‘퇴거 신청서’까지 직접 제출한 뒤,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충분히 매뉴얼을 숙지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도 있다. 가해자 분리와 관련해 서산경찰서 관계자는 “당장 분리가 필요하면 피해자를 쉼터 등으로 안내하는 경우도 있는데, ㄴ씨가 친정에서 지낸다고 해 다른 추가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집이 공동명의라 우리가 퇴거를 요청하긴 힘들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집 명의와 퇴거 조치는 관련이 없다. 매뉴얼상 가해자가 나가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ㄴ씨에게 피해자 보호를 위한 스마트워치를 곧바로 지급했지만, 사건 당시에는 착용하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등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범죄에서 피해자 신변보호를 위해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희 경찰대 교수는 “파트너 살인의 경우 분리된 뒤에도 찾아가 살해하는 형태가 많이 나타나는 만큼, 수사 초기부터 통합 대응 체계를 구축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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