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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백골 시신에 72년간 그대로인 군화…6·25 전사자 유해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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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탄에 피격돼 쓰러진 자세 그대로 발견

다부동 전투에서 산화한 것으로 추정

세계일보

지난달 28일 경북 칠곡 일대에서 발견된 다부동 전투 전사자의 유해와 군화. 7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군화는 원형 그대로 보존돼있었다. 칠곡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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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에서 6·25 전쟁 도중 전사한 국군 장병의 유해가 발견됐다. 72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가 신었던 군화는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채 남아 있었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6·25 전쟁 중 전사한 국군 장병의 유해 모습이 담긴 사진을 게재하고 추모의 글을 남겼다.

글에서 김 군수는 “지난달 28일 칠곡군 가산면 용수리에서 발굴된 한 국군 장병의 유해입니다”라며 사진을 소개했다.

그는 “사진 속 용사의 육신은 백골로 변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인지 72년이 지난 세월에도 군화는 썩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습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 순간 얼마나 두렵고 고향이 그리웠을까요? 당신의 군화를 기억하겠습니다”라며 전몰장병의 영면을 기원했다.

사진 속 장병은 전쟁 당시 총탄을 맞고 움츠린 자세 그대로 쓰러져 백골로 변했으나, 그가 착용했던 군화는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원형이 보존돼있었다.

이 유해의 장병은 국군이 1950년 당시 남하중이던 북한군을 상대로 칠곡군 가산면 용수리 572고지에서 펼친 ‘다부동 전투’ 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의 유해는 지난달 28일 육군 제50사단 칠곡대대 장병에 의해 발견돼 사후에나마 가족들과 상봉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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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동 전투에서 전사한 전몰 국군의 유해. 칠곡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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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중 국군과 북한군이 가장 처절한 접전을 펼쳤던 것으로 알려진 다부동 전투는 대구 북방 약 22㎞지점에 위치한 다부동 일대에서 1950년 8월3일~같은달 29일까지 전개됐다.

이 전투에는 당시 백선엽(1920~2020) 준장이 이끄는 대한민국 육군 제1사단 및 미국 육군 25사단 예하 23·27연대가 참여해 대구로 침공하고자 하는 북한군의 방어에 총력을 기울였다.

8차례에 걸친 공방전 끝에 국군과 미군은 총 1만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대구 전선을 사수하는데에 성공했다. 전차 없이 전투에 임한 한·미군을 상대로 북한군은 약 1만7500명의 사상자를 내는 한편 전차 30대가 파괴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고 퇴각했다.

이 승리로 북한군은 더이상 남하하지 못했고, 이를 발판 삼아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가 지휘하는 유엔군과 국군이 같은해 9월15일 인천에 기습 상륙할 수 있었다.

실제로 2000년부터 국방부 유해 발굴 사업이 시작된 이래 발굴된 유해 중 약 10%가 칠곡군에서 발견됐을 정도로 다부동 전투는 치열했다.

지난 8월16일~9월30일까지 진행된 칠곡 지역 유해 발굴 과정에서도 8구의 유해와 1000여 점의 탄약, 수류탄 등이 발굴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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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동 전투 중 부상당한 전우를 부축하는 장병들. 다부동전적기념관 제공


정재우 온라인 뉴스 기자 wamp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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