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결혼식 비용, 예비부부들 비명
#“처음에 웨딩플래너와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를 계약할 때만해도 이렇게까지 돈이 많이 들어갈 줄은 몰랐어요. 겪어보니 추가로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시스템입니다. 필수로 내야하는 돈도 포함이 안 돼 있고, 무언가 할 때마다 추가금이 있어요. ‘웨딩’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상품 가격이 몇 배가 되는 건 당연하고요.”
다가오는 11월 결혼식을 앞둔 예비신부 김모(27)씨는 최근 상견례부터 신혼여행까지 결혼 비용을 계산하다 충격에 빠졌다. 호텔 예식도 아닌데 지출 비용과 남은 결제 금액을 합산하니 어느새 5000만원에 육박해 있었기 때문이다. 전셋집에 넣을 가전·가구를 저렴하게 구매해도 도합 6500만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김씨는 “예단·예물은 생략했고, 스튜디오 촬영 때 헤어 변형도 직접 하는 등 아낀다고 아꼈는데도 이 금액”이라며 허탈해했다.
웨딩 성수기 가을을 맞아 예비 신혼부부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가격을 비싸게 받는 관행 탓이다. 부케만 해도 저렴한 게 10만원대, 대부분 20만원을 훌쩍 넘는다. 헤어 메이크업 비용도 만찬가지다. 지난 7월 스튜디오 촬영을 위해 메이크업 숍을 찾은 김씨는 몇가닥 애교머리를 내려다 가격(4만4000원)을 듣곤 취소했다. 김씨는 “머리를 얼마나 자르느냐에 상관없이 가위를 드는 순간 일반 미용실 커트비의 3배 수준”이라고 말했다. 결혼식 당일 드레스를 입고 이동하는 차량 가격은 택시비의 10배를 넘어선다. 지난 4월 결혼식을 올린 최모(29)씨는 “청담동에서 식장까지 택시로 14000원인 거리를 이동하는데 20만원이라고 해 당황스러웠다”며 “결국 신랑이 큰 차량을 렌트해 직접 운전했다”고 전했다.
‘스드메’ 패키지 가격만 고지, 개별가는 몰라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계약금 외 추가금이 많은 점도 문제다. 추가금은 웨딩컨설팅 회사와 스드메 계약을 맺을 때부터 시작된다. 일단 저렴한 업체로 구성해 단가를 낮춰 계약을 유도하고, 업체 변경 시 차액에 대한 추가금을 부과하는 형식이다. 이는 박리다매로 운영되는 컨설팅사에겐 ‘당장의 계약 성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비 신랑·신부에게는 ‘스드메’ 또는 ‘드메’ 등 2개 업체 이상의 패키지 가격만 고지해 업체별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선정한 업체를 방문할 때마다 ‘필수’ 추가금이 부가된다. 드레스 숍을 고르기 위한 일명 ‘드레스 투어’ 시 각 숍마다 피팅비 5만원을 내야 한다. 스튜디오 촬영을 할 때 드레스를 정리해주는 직원(일명 ‘헬퍼’)에게도 25만원을 현금으로 줘야한다. 사진 촬영 원본도 33만원 등 별도 비용을 내고 구매해야 한다. 점심시간대 예식이면 오전 7시쯤 메이크업이 잡히고 ‘얼리스타트’ 비용으로 5만~6만원이 추가된다. 결혼식 당일에도 헬퍼비 25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이 모든 비용이 필수지만 스드메 계약 금액엔 포함이 안 돼 있다. 선택 추가금은 더 복잡하다. 항목을 임박해 고지하거나,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해 여유가 없다. 많은 이들이 ‘한번뿐인 결혼인데’라는 마음으로 “추가할게요”를 외치게 되는 배경이다. “스튜디오 계약금에 포함된 건 셔터 누르는 비용 뿐, 예식장은 숨쉬는 것 빼고는 모두 추가금”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더 문제인 점은 결혼 준비 과정에서 수천만원을 지불하는 예비 신랑·신부가 ‘을’이라는 점이다. 스드메 업체와 웨딩홀의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없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웨딩홀의 경우에도 기본 견적가에서 월·일에 따라 할인가가 다르고, 심지어는 같은 날 오후 12시30분 예식인지 오후 2시 예식인지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진다. 하지만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방문 상담 후 견적서를 받는 방법뿐이다. 신혼 3년차 조정연(31)씨는 “식장을 정하기 위해 매주 주말마다 시간을 비우고 직접 견적을 받아야 해 스트레스가 컸다”며 “식장 가격도 주마다, 시간대마다 달라지니 도대체 대외적으로 밝혀진 비용이 정가가 맞긴 한지 의심스러웠다”고 말했다. 내년도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배모(30)씨도 “비용 구조가 폐쇄적이고 계약하는 고객에게만 주는 혜택이라는 식으로 현장 결제를 유도해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드레스를 기억하기 위한 드레스 스케치. [사진 조정연]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드레스숍에서 사진 촬영도 할 수 없다. 피팅비 5만원을 지불하는데도, 기억에 의존해 마음에 드는 숍을 골라야 한다. 그래서 나온 궁여지책이 드레스 스케치다. 신부가 드레스를 갈아입고 나오면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신랑이나 플래너가 재빠르게 드레스 모양을 그리고, 소재 및 특징을 기입하는 방식이다.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7일 청담동의 한 드레스숍 관계자는 “디자인 유출도 우려되고, 사진으로 보는 느낌과 실제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드레스숍의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본식 드레스숍으로 선택한 이후에는 사진 촬영이 가능하고, 소셜미디어에 모델 착용 컷을 올리는 것을 보면 드레스숍의 도용 우려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게 소비자들의 의견이다.
예복을 맞추는 예비신랑.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코로나19로 2년간 비용을 동결한 웨딩홀 업계가 올해부터 본격 가격 인상에 나서면서 식대와 대관료도 큰 폭으로 올랐다. 서울 강남구의 한 웨딩홀은 대관료를 지난해 790만원에서 960만원으로 21.5% 인상했고, 식대도 6만9000원에서 8만9000원으로 29% 높였다. 서울 송파구의 한 웨딩홀 식대는 16.9% 올라 6만9000원이고, 중구의 한 웨딩홀 식대도 10% 상승해 5만5000원이다. 특히 식대는 보증인원을 최소 250명, 300명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조금만 올라도 영향이 크다. 김씨가 ‘할인가’로 계약한 1940만원의 75%가 식대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 따르면 혼수를 포함한 결혼식 비용은 2020년 4346만원에서 지난해 4719만원으로 8.6% 증가했다. 가격이 동결된 지난해에도 결혼식 비용이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식대와 대관료가 크게 오른 올해 결혼식 비용이 5000만원, 6000만원에 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내년 하반기 또는 2024년도 예식을 준비하는 이들의 비용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글로벌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가격 인상을 고려하고 있는 웨딩홀이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배씨가 간소하게 잡은 내년도 결혼 준비 예산이 6100만원인 이유다. 7년차 김지은 웨딩플래너는 “가격 동결 여파로 올해 웨딩홀 가격도 많이 올랐지만, 물가 상승으로 내년에도 가격을 인상하겠다는 홀이 많다”며 “이제 수도권에서 식대가 5만원 미만인 곳은 손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웨딩홀 관계자는 “올해 가격도 인상됐지만 내년엔 더 오를 예정”이라며 “인건비, 식재료 값 등을 고려하면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달러당 1400원대, 허니문 경비도 부담
환율이 1400원대에 들어서며 신혼여행 경비 부담도 커지고 있다. 신혼여행 패키지는 통상 일부 금액만 계약금으로 먼저 납부하고, 잔금은 출국 한 달 전 환율을 기준으로 결제한다. 지난 8월 하와이 신혼여행 패키지를 예약한 정모(29)씨는 “계약 당시에도 환율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추가금까지 내게 될 줄은 몰랐다”며 “현재로서는 100만원은 더 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밖에도 식사를 대접하며 청첩장을 주는 ‘청첩장 모임’이나 지방 하객을 위한 버스 대절 등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찮다. 결혼준비 중 다투는 원인으로 ‘바쁜 일정으로 인한 스트레스(33.3%)’ 다음으로 ‘품목 및 비용에 대한 의견차(31.3%)’가 지목된 배경이다.
일반적인 결혼식 준비 과정 |
하지만 웨딩홀 외 별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게 현실이다. 하객의 편의를 고려하면 ‘교통’ ‘음식’ ‘주차’가 괜찮은 곳을 골라야 한다. 보증인원이라도 적은 하우스 웨딩이나 스몰 웨딩은 꽃 장식 값이나 식대가 높아 웨딩홀 비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양가 부모님 및 가족들의 의견을 취합하다보면 결국 돌고 돌아 웨딩홀이 제일 낫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내년 상반기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최모(30)씨는 “신랑 신부와 양가 부모님의 사회적 지위가 있어 현실적으로 결혼식을 생략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그동안 예식을 미룬 예비 신혼부부의 수요가 몰리며 그나마 예식장을 잡는 것조차 쉽지 않다. 실제 2023년도 가을 일정은 최근 오픈되자마자 토요일 점심시간을 필두로 빠르게 마감되고 있다. 지난 27일 컨설팅 업체를 통해 일정을 문의한 5개 업체의 2023년 9월, 10월 점심 예식은 이미 다 찼고 저녁 시간만 남아 있었다. 인기 있는 식장은 상담 예약을 잡기 힘들 정도다. 상담 예약 오픈일에 맞춰 수백통의 전화를 돌리는 ‘웃픈’ 상황도 발생한다. 김지은 웨딩플래너는 “웨딩컨설팅 업체 웨딩홀팀 직원들, 개인 전담 플래너, 신랑·신부님까지 동시에 연락을 돌릴 정도로 인기 있는 식장은 상담 예약을 잡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혼식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예산이다. 예산이 없으면 천정부지로 가격이 뛸 수 있는 게 결혼식 비용이다. 김지은 플래너는 “예산을 정해야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부분이 줄어든다”며 “똑같은 스드메 업체 구성으로 컨설팅 업체에 견적을 의뢰하면 어떤 곳의 할인가가 더 높은지도 비교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윤혜인 기자 yun.hyein@joongang.co.kr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