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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미지로 존재한 ‘총’이 폭력의 역사가 되는 그 순간들을 꺼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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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청년문학상 ‘장미 총을 쏴라’ 쓴 소설가 김경순

경향신문

‘제8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장미 총을 쏴라>의 김경순 작가가 27일 서울시청 부근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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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고스트건’ 기사 보고 초고
최근 우리 사회, 압축된 폭력 분출
총기·폭력·역사로 ‘현재’를 환기

‘제8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은 김경순의 <장미 총을 쏴라>다. 폐쇄된 놀이공원 대형 컨테이너에서 두 명의 남성을 살해한 혐의로 갇힌 총기 전문 잡지 ‘건(Gun)’ 직원 한옥인의 진술과 한옥인이 왜 그들을 죽였는지 진실을 추적하는 작가 현의 이야기 두 축으로 진행한다. 김경순은 총기의 역사와 총기 합법화 문제에다 일제강점기에 친일과 반일로 갈린 두 집안의 역사도 반영했다.

심사위원단(소설가 김인숙·천운영·이기호, 문학평론가 류보선·김미현)은 “종내에는 그 ‘(살해의) 이유’가 한옥인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특수성’이 아닌, 모두의 ‘보편성’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말하자면 ‘총’으로 상징되는 ‘역사의 폭력’이 언제든 ‘폭력의 역사’로 뒤바뀔 수도 있다는 전언. 아마도 그 전언이 이 작가가 <장미 총을 쏴라>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참 주제일 것”이라고 했다.

소설에서 반복되는 문구 하나는 “총이 아름다운 건 그 자체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살상의 위엄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잡지 건의 등장인물 대사와 총기 인터넷 카페인 ‘트리거(Trigger)’의 화면 대문 등에 이 문구가 나온다. 소설이 ‘총의 아름다움과 살상의 위엄’을 찬양하고, 긍정하는 건 아니다. 소설은 정답이나 신념을 제시하지 않고, 총기의 역사와 이슈와 관련된 여러 생각과 의견을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전달한다.

지난 27일 만난 김경순은 총기와 폭력, 과거 역사와 현재 이슈를 환기하고 싶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상징이라 실감나지 않는, 이미지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총’이 언제든 폭력의 역사로 변할 수 있다는 걸 조금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폭력의 역사가 되는 순간 굉장히 무자비해져 버리는 거잖아요. 총이 상징이나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는 해외 각국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분쟁에 사용되는 무기, 일본 아베 신조 전 총리 사건에 쓰인 사제 총, 한국에서도 곧잘 나오는 ‘고스트건’ 등을 거론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우리 사회를 보면 압축되었던 폭력이 분출되는 느낌”이라고도 했다.

대학(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뒤 잠시 일한 식품 전문 잡지사 경험도 반영했다. 형사사법 절차 관련 내용도 정확히 반영했다. “재판 관련해선 아직 완성 안 한 장편소설이 살인사건이어서 그때 변호사 두 분을 만나 취재를 많이 한 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체포부터 구속, 기소, 선고까지) 사법절차도 공부했고요. (<장미 총을 쏴라> 수상 후) 소설을 보완하면서 좀 더 세밀하게 법적인 문제를 들여다보려고 다시 변호사에게 조언도 받았습니다.”

<장미 총을 쏴라>는 김경순의 네 번째 장편 소설이다. 전작 <21>은 20~30대 여성의 사랑과 연애, <춤추는 코끼리>는 10대 소녀의 성장, <빌바오, 3월의 눈>은 40대 여성의 질투와 권력 이야기였다. 지금은 역사소설, SF소설, 추리소설 세 개를 동시에 쓰고 있다.

서른여덟에 첫 소설…네 번째 작품
장편 하나 쓰는 데 5년 이상 걸려
천재적 재능 없지만 노력으로 승부

“하나를 완성하고 새로 쓰는 스타일이 아니라 쓰다가 막히거나 모티프가 떠오르면 동시에 쓰는 편이에요. 하나의 장편이 완성되기까지 항상 5년 이상 걸립니다.” <장미 총을 쏴라> 초고는 8년 전쯤 쓰기 시작했다. 당시 ‘고스트건’에 대한 신문 기사를 보며 소설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김경순은 늦깎이 소설가다. 잡지사에 6개월 다니다 그만둔 뒤로 계속 전업주부로 살았다. 서른여덟 살 때 원고지 60장짜리 소설을 쓴 게 처음이다. 2004년 <쇼윈도>로 문학수첩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전 소설가를 꿈꿔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활자 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소설을 좋아했을 뿐이다. 초등학교 때 집에 꽂힌 <데미안>이나 <죄와 벌> 같은 세계문학전집을 뜻도 모르면서 무작정 봤다. 대학 다닐 때도 도서관에서 소설만 읽었다.

“평범하게, 실패도 없이 그냥 잘 살다가 어려운 일이 닥친 적이 있어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였는데, ‘내가 내일 죽는다면 뭘 가장 후회할까’ 생각하니 소설이었어요. (그렇게 좋아하는) 소설을 왜 한 번도 써볼 생각을 안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소설 습작을 시작했고 큰 상을 받기까지 20년이 흘렀네요.”

7년 전쯤 다시 고비가 찾아왔다. “삶이 너무 허탈한 거예요.” 제주의 한 게스트하우스에 존 스타인벡의 <통조림 공장 골목> 등 두 권만 딱 들고 갔다. 방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햇반과 통조림 반찬만 먹으며 4박5일을 지냈다. “(여러 고민과 상념 끝에) 소설을 써야 한다고 딱 결심했어요. 그 뒤로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어요.”

김경순은 자신을 노력파로 소개했다. 지금도 SF소설을 위해 작법을 공부하고, 테드 창 같은 작가들 소설도 읽는다. 쓰기와 읽기 공간은 도서관이다. 김경순은 안양예고 문예창작학과에서 소설창작을, 연성대 영상콘텐츠학과에서 시나리오 창작과 영상 스토리텔링 분석을 가르친다. 학교 가는 날 빼곤 매일 도서관에 간다. “그냥 도서관이란 공간 속에 담겨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책을 읽기도 하고, 자료도 찾고, 멍 때리고 있기도 하면서요. 그렇게 해도 하루에 몇 줄 건지는 것 같아요. 글 몇 줄 건지려고 도서관에 가 6~7시간 정도 있는 거죠. 딸이 ‘소설 쓰는 사람 다들 그렇게 열심히 해?’라고 하더라고요. 이상하게 그 말 듣는데 좀 창피했어요. 뭔가 재능이 없다는 것을 들킨 것 같고, 우리가 높게 쳐주는 건 천재적 재능이잖아요.”

노력으로 쌓은 재능이 이번 수상으로 인정받은 건 분명하다. 심사위원단은 “구조적 완결성과 묵직한 주제의식, 살아 있는 캐릭터들의 감각적인 배치 등 모든 심사위원이 흔쾌히 <장미 총을 쏴라>를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모처럼 의미와 재미, 속도와 중량감을 함께 지닌 소설을 만난 기분”이라고 평했다.

황산벌청년문학상은 경향신문사·논산시·은행나무출판사가 공동주관했다. 은행나무는 <장미 총을 쏴라>를 10월 중 출판한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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