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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이슈 미술의 세계

"대학 졸업 후 전재산 50달러…외롭게 쓴 소설이 12개국에 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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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 제공 = Nola Logan]


대학 졸업 후 수중에 남은 돈은 '50달러'였다. 직장을 다녀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인종차별을 못 견디고 퇴사하자 통장에 '1500달러'가 남았다. 맨해튼 한 달 방세가 900달러였다.

"책은 작가의 영혼이다"라는 한마디 말을 잘 벼린 비수처럼 품고 독방생활을 견디며 쓰고 또 썼다. 지금 미국이 주목하는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다산책방 펴냄)의 김주혜 작가(35·사진) 얘기다. 28일 한국 기자들과 온라인으로 만난 김 작가는 "오늘 아침 히말라야 부탄에서 독자 편지를 받았다. 이렇게 홀로 외롭게 쓴 글이 온 세계로 퍼져나가는 과정이 감사할 따름"이라며 웃었다.

김주혜 장편 '작은 땅의 야수들'은 작년 미국 출간 뒤 40여 개 매체가 추천도서로 꼽은 소설이다. 현재 12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백범 김구 선생을 도운 독립운동가였던 외조부에 관한 가족들의 기억에서 출발한 소설은 1917년부터 1965년까지 20세기 초를 종횡무진하면서 한국인들의 땀과 눈물, 사랑과 아픔을 동시에 다룬다. 기생 옥희의 시선으로 한국사 전체를 조망했다.

"기생은 부정적으로 이해되지만 이는 차별이다. 기생은 당대 모델이었고 탤런트였으며 여성운동가이자 지도자이기도 했다. 옥희가 독립운동가 정호, 인력거꾼에서 자동차 공장 회장이 된 한철과 삼각관계를 이룬다. '작가에게 눈물이 없다면 독자에게도 눈물이 없다'는 말을 믿는다. 제 가족과 조상에 관한 여러 기억을 쏟아부었다."

하얀 눈밭, 사냥감을 쫓는 경수에게서 첫 장은 열린다. 일본 장교 야마다가 쓰러진 경수를 구하고, 경수는 일본인이 호랑이 공격을 피하도록 돕는다. 기생 견습생 옥희는 조선극장 배우로 스타가 된 뒤 경수의 아들인 정호, 그리고 한철과 만난다. 일본제국주의, 이데올로기, 생존투쟁에 나선 한국인 군상이 엮인다. 어쩐지 이민진의 '파친코'를 생각나게 하는 측면이 있다.

"제 소설이 '파친코'와 비교되는 건 큰 영광이다. '파친코'가 가족을 위한 생존을 다룬 소설이라면, '작은 땅의 야수들'은 나라를 위한 투쟁의 소설이다. 전쟁, 사랑, 평등에 관해 아이러니 없이 순수하게 다룬다는 점이 기존 미국 현대소설과의 차이점인 듯하다. 힘겨운 삶을 진지한 태도로 다루기, 그것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것 같다."

한 줄 한 줄 힘들게 썼지만, 그는 프린스턴대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재원이다. 1987년 태어나 9세까지 인천에서 살다가 미국 오리건주로 이민을 떠났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마음속에는 늘 작가의 꿈이 있었다. 톨스토이를 흠모하던 소녀는 자신이 걸어온 과거, 걸어갈 미래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수년간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었다. 이번 책이 러시아 문학을 떠올리게 한다는 칭찬은 너무 감사하다. 다음 작품은 러시아와 프랑스 배경의 발레리나를 쓰려 한다. 한 예술가와 그의 예술에 관한 러브스토리로 독자와 만나겠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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