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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일본 떠돌던 조선시대 묘지 2건 귀환…재일동포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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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소재문화재재단·한국국학진흥원, ‘백자청화 김경온 묘지’ ‘백자철화 이성립 묘지’ 공개

“조선 시대사·생활문화상 등 보여주는 중요 사료”

경향신문

일본에서 돌아온 ‘백자청화 김경온 묘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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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떠돌던 조선시대의 묘지(墓誌) 2건 7점이 재일동포의 노력으로 고국에 돌아왔다.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일본에 거주하는 사업가 김강원씨(54)가 ‘백자청화 김경온 묘지’와 ‘백자철화 이성립 묘지’를 각각 의성김씨 문중과 경주이씨 문중에 기증했고, 두 문중은 이들 묘지를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했다고 28일 밝혔다. 묘지들은 이날 오전 경북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열린 기증·기탁식에서 공개됐다.

묘지석·지석으로도 불리는 묘지는 무덤 주인의 생애와 가족관계·행적 등을 다양한 형태의 돌이나 도자기에 쓰거나 새겨 함께 묻은 것을 말한다. 묘지는 명확한 제작 연대 등이 기록돼 있어 해당 인물은 물론 당시 시대사나 생활문화상, 나아가 도자사·서예사 등의 연구에 귀중한 사료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무령왕릉 지석’을 비롯해 조선시대 묘지들 일부도 역사적·학술적 가치 등에 따라 국보나 보물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이날 기증된 두 건의 묘지는 모두 백자로 만든 판(백자 도판)에 각각 청화·철화 안료로 묘지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 묘지가 언제, 어떻게 일본으로 유출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백자청화 김경온 묘지’는 조선 영조 당시 관직에 올랐으나 곧 사직하고 고향 예안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전념한 김경온(1692~1734)의 묘지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측은 “이 묘지는 백자 도판에 청화 안료로 해서체의 묘지문을 기록했으며, 5장 모두 완전하게 남아 있다”며 “특히 묘지를 조선시대 궁중 등에서 사용하는 각종 그릇을 제작하던 분원에서 구워 만들었다는 사실도 기록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도 매우 높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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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300여년 만에 귀환한 ‘백자철화 이성립 묘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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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철화 이성립 묘지’는 조선시대 무관으로 활동한 이성립(1595~1662)의 묘지다. 묘지에 따르면, 이성립은 본관이 경주이지만 장지는 평안도 철산으로 현재의 북한 지역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2장으로 구성된 묘지는 내용이 간략하지만 17세기 후반 조선 변방 지역 무관들의 혼인과 장례 등 생활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음각과 철화 기법이 사용된 데다, 묘지를 포개어 묶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멍이 뚫려 있는 등 희귀한 제작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두 묘지는 일본 도쿄에서 고미술 거래업체인 ‘청고당’을 운영하는 김강원씨가 직접 구입해 두 문중에 기증했다. 김씨는 지난해 일본 내 문화재 유통 시장에서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묘지가 거래되는 것을 발견하고 한국으로 돌려보내고자 사들인 뒤 재단을 통해 두 문중에 기증 의사를 밝혔다. 재단 측은 이날 “김씨는 어떠한 보상이나 조건 없이 기증 의사를 밝히면서 ‘당연히 한국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유물로 생각한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기증받은 두 문중은 국내에서의 묘지 보존과 활용, 김씨의 기증 취지 등을 살려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했다. 귀환한 이들 묘지는 앞으로 기록문화유산 전문 연구기관인 한국국학진흥원에서 관리하며 조선시대사 연구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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