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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로 변한 싱글맘'...멜로니 등장에 EU 통합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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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이탈리아' 내세워 총선 압승
좌파 보루서 태어나 가난한 가정환경서 자라
혐오 기반 정치 성향...무솔리니 파시즘에 기반

한국일보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l)의 대표이자 차기 총리 후보인 조르자 멜로니가 26일(현지시간) 로마의 Fdl 본부에서 연설한 뒤 '고마워요. 이탈리아'(Grazie Italy)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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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독일 시사지 슈테른) “파시즘의 귀환”(미국 시사지 애틀랜틱) “유럽 극우의 새 얼굴”(미국 시사지 타임)

25일(현지시간) 치러진 이탈리아 총선에서 승리, 차기 총리직을 거머쥔 극우 여성 정치인 조르자 멜로니(45) ‘이탈리아형제들(FdI)’ 대표에게 따라붙는 수식이다.

그는 ‘강한 이탈리아’라는 기치를 앞세워 반(反)이민자, 반동성애, 반유럽통합 등을 설파하며 입지를 다져 온 정치인이다. 마리오 드라기 총리의 거국 내각에 대한 반발을 자양분 삼아 지지율을 끌어올렸고, 경제 위기에서 촉발된 불안 심리를 파고들어 마침내 정권을 잡았다. 이탈리아는 파시즘 창시자 베니토 무솔리니(1922∼1943년 집권) 이후 약 79년 만에 극우 지도자를 맞이하게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대란으로 최대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연합(EU)의 앞날에도 먹구름이 드리웠다.

좌파 보루에서 성장한 무솔리니 후계자


멜로니는 이탈리아 로마 남부 가르바텔라에서 성장했다. 노동계급이 주로 거주해 전통적으로 ‘좌파의 보루’로 여겨지는 지역이다. 하지만 출신 지역보다 성장 배경이 멜로니 정치 성향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멜로니는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카나리아제도로 떠나면서 홀어머니 아래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좌파, 어머니는 우파였다고 전해진다. 영국 BBC방송은 “멜로니의 정치적 행보는 부재한 아버지에게 복수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다”고 전했다.

학창 시절에는 뚱뚱하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다. 2019년 출간한 자서전에선 “배구 경기에 참여하려고 하자 친구들이 ‘뚱뚱보(fatso)’라고 놀렸다”며 “다이어트에 성공한 뒤 그 ‘몹쓸 놈들(redneck)’에게 감사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어린 나이에 나는 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말했다. ‘혐오 정서’에 기반을 둔 그의 정치 지향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엿볼 수 있는 일화다.

멜로니는 1992년 열다섯 나이에 무솔리니 추종자들이 창설한 네오파시스트 정당 ‘이탈리아사회운동(MSI)’ 청년 조직에 가입하면서 정치에 첫발을 디뎠다. MSI는 1995년 해체돼 민족동맹(AN)으로 계승됐고, 멜로니는 AN 학생 기구 대표를 맡아 정치 유망주로 떠올랐다. 29세 때인 2006년에는 AN 소속으로 하원의원에 당선돼 마침내 중앙 정치에 입성했다. 2008년에는 당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 내각에서 청년부 장관으로 발탁되며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31세) 장관 기록도 세웠다.

베를루스코니 총리 실각 이후 2012년 멜로니는 MSI에 뿌리를 둔 Fdl을 창당해 자신만의 정치를 시작했다. 멜로니가 “여자 무솔리니”라 불리는 이유다. 2018년 총선에서 득표율 4%에 그쳤던 Fdl은 불과 4년 만에 제1당으로 도약하며 반전 드라마를 썼다.

반이민·반동성애·반유럽 표방, 유럽 통합 흔들


“나는 여자이고, 엄마이고, 이탈리아인이고, 기독교인이다.” 멜로니라는 ‘정치 브랜드’는 2019년 동성 육아 반대 집회 당시 그의 연설 문구로 요약할 수 있다. 무솔리니 시대 슬로건인 ‘신, 조국, 가족’을 연상시킨다.

최근에는 “파시즘은 지나간 역사”라며 선 긋기에 나섰지만, Fdl은 MSI가 사용했던 삼색 불꽃 로고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 보도전문매체 프랑스24는 “멜로니는 파시즘의 잔재를 제거하지 않으면서 Fdl을 이탈리아 주류 보수로 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고 짚었다.

멜로니는 그 자신이 싱글맘이자 워킹맘으로서 여성·어머니라는 정체성을 내세우지만, 정치 행보는 사회적 소수자 포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독려하는 ‘다양성 할당제’에도 반대했다. 지안루카 파사렐리 사피엔차대학 정치학 교수는 “이탈리아 가정의 지배력은 어머니에게서 나온다. 멜로니는 부엌을 통제하는 마초다. 그것이 사회 시스템의 핵심과 통한다는 사실을 영리하게 이용한다”라고 평했다.

멜로니가 주장하는 가족주의, 민족주의, 기독교주의는 반이민, 반동성애로 이어졌다. 멜로니는 난민선을 막아야 한다며 ‘해상 봉쇄’를 요구하고, 아프리카 이주민이 백인 여성을 성폭행하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할 정도로 이민자를 혐오한다. 성소수자(LGBT) 권리 보장, 동성커플의 입양도 반대한다. 임신중지권은 허용하면서도 의료진의 시술거부권을 보장하겠다는 이율배반적 공약도 내놨다.

그래서 소수자 포용과 세계화를 추구하는 EU와 번번이 부딪혔다. 멜로니가 집권하면 EU의 분열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컸다. 다만 멜로니가 당분간 본색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U가 2026년까지 지급하는 2,000억 유로(약 276조 원) 규모 코로나19 회복기금을 받으려면 EU에 협조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거 직전 유로존 탈퇴 주장을 접고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오히려 문제는 우파 연합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 파트너인 마테오 살비니(동맹), 베를루스코니(전진이탈리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절친’이라 대러 제재와 민생 정책을 두고 내분에 휩싸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루이지 스카지에리 유럽개혁센터 선임연구원은 “겨울철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면 대응책을 놓고 차기 정부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며 “정부가 쉽게 붕괴해 다른 연정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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