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백건우가 19일 서울 서초구 스타인웨이갤러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새 앨범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와 리사이틀 투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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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건우(76)가 자신의 오랜 꿈을 담은 음악, ‘고예스카스’로 돌아온다. 백건우는 스페인 작곡가 엔리케 그라나도스(1867~1916)의 피아노 모음곡 ‘고예스카스’를 담은 리사이틀을 오는 23일 울산을 시작으로 전국 6개 도시에서 이어간다. 리사이틀과 함께 새 앨범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도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DG)을 통해 19일 발매했다.
‘고예스카스’는 그라나도스가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7곡으로 구성된 피아노 모음곡이다. 마치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스페인의 색채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그라나도스의 대표작이다.
백건우는 음반 발매에 맞춰 이날 서울 서초구 스타인웨이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고예스카스’ 연주가 그의 오랜 꿈이었다고 밝혔다.
“음악을 공부하다 보면 음악적으로, 예술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순간들이 있죠. 42년 전쯤, 미국 뉴욕에서 공부하던 학생 시절 카네기홀에서 알리시야 데라로차가 연주하는 ‘고예스카스’를 처음 들었어요. 늦가을이었나, 초겨울쯤이었나 추운 날씨였는데도 이 음악을 듣는 순간 카네기홀에 햇빛이 내리쬐는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음악을 통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음악회였어요. 언젠간 내가 이 곡을 꼭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숙제처럼 갖고 있었는데, 몇십 년이 흘렀네요.”
한국 관객들에게 비교적 생소한 작곡가인 그라나도스는 파야, 알베니즈와 함께 스페인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꼽힌다. 스페인의 민족음악을 바탕으로 낭만적이고 색채감 있는 선율을 그려낸 인상주의 작곡가다. 백건우는 “그라나도스가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스페인을 그릴 수 있는 음악을 여럿 썼는데, 그중 하나가 ‘고예스카스’ ”라며 “그라나도스의 음악은 다채롭고 화려하면서 감정 표현에 있어 자유롭다. 더 인간적이고 감성적이며 즉흥적, 열정적”이라고 소개했다. ‘고예스카스’ 역시 이런 스페인의 색채가 담겨 있는 곡이다. 그라나도스는 ‘고예스카스’에 대해 “슬픔과 우아함이 뒤섞여 있다”면서 “리듬, 색채, 그리고 삶. 이 세 가지가 스페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스럽고 열정적인 음이 곧이어 격정적이고 비극적인 음으로 변하는데 이것은 고야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들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발매한 백건우의 새 앨범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 유니버설뮤직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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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는 이번 앨범 발매에 앞서 고야의 작품들이 소장된 마드리드의 산페르난도 왕립미술관에서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그는 “ ‘고예스카스’에 영감을 준 고야의 그림들은 현재 전시되지 않고 미술관이 보관하고 있는데, 이번에 소장 중인 그 그림들도 볼 수 있었다”면서 “고야가 30년 동안 미술을 가르쳤던 곳에서 이 곡을 연주할 수 있어 저로서는 굉장히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 ‘고예스카스’는 감정이 굉장히 두터운 곡”이라며 “거리가 있는 문화권의 음악이기 때문에 얼마나 소화할 수 있을지 주춤하기도 했는데, 결론적으로 내가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것이 옳은 해석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곡은 어떻게 보면 자유를 상징하는 곡입니다. 자유롭게 해석하고 연주했는데, 저에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66년 가까운 세월을 연주자로 살아온 그에게 이번 음반은 각별해보였다. 백건우는 “마음의 자유”를 언급했다. “음악인으로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젊은 시절 뉴욕에서 활동할 때 한국의 위상은 지금과 많이 달랐고, 한 개인이 세계 음악계에서 살아남기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죠. 물론 언제나 작품에 충실하고 최대의 노력으로 훌륭한 해석을 해야겠지만, 이젠 좀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 마음의 자유를 찾은 것 같기도 하고, 그게 필요한 것 같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음악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친해지는 것을 느껴요. 이젠 서로가 서로에게 좀 더 후해지고, 음악이 나를 받아주고…그런 느낌입니다.”
이번 앨범엔 그가 스페인 정경을 찍은 사진들도 수록됐다. 백건우는 “한때 사진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사진은 나에게 오랜 취미”라며 “올해 여러 군데서 사진전을 하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11월 대만 연주회 때 전시회도 같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흔을 넘긴 이후에도 백건우는 매년 다른 작곡가의 음악을 조망하고 탐구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2019년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쇼팽 녹턴 전곡 음반을 발매하며 15개 도시에서 ‘백건우와 쇼팽’ 리사이틀 투어를 열었고, 2020년 슈만 앨범과 함께 ‘백건우와 슈만’ 리사이틀 투어를 한 데 이어 올해는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작품 ‘고예스카스’로 다시 투어에 나선다. 그는 앞으로 어떤 작곡가의 음반을 준비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그건 비밀”이라며 웃었다. “작품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야 이야기할 수 있겠죠. 미리 얘기하기는 어렵습니다.”
리사이틀 ‘백건우와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는 23일 울산 중구문화의전당을 시작으로 24일 부평아트센터, 27일 제주아트센터, 10월1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6일 경기 광주 남한산성아트홀, 8일 서울 예술의전당, 19일 강릉아트센터로 이어진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빈체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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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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