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하나은행 본점 전광판에 16일 원화값 종가와 장중 시세 변동 그래프가 표시돼 있다. 달러당 1400원 선 붕괴 직전까지 밀렸던 원화값은 이날 장 마감 직전 대통령실의 한미 통화스왑 논의 가능성 발언이 전해지면서 전날 대비 5.70원 상승하며 마감했다. [김호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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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당 1300원까지는 '아직은 감내할 수 있을 정도'라는 안정감이 있다. 하지만 1400원이 넘어가면 원화값 방어가 가능할지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이 급증한다."
외환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16일 매일경제와 통화하며 이 같은 고민을 내비쳤다. 이날 오후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대통령실 브리핑을 통해 "한국과 미국 정상 간 포괄적 외환시장 안정화 협력에 대한 추가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의 발언 직후 원화값은 수직 상승해 전일 종가 대비 5.7원 오른 달러당 1388.0원에 마무리했다. 원화값은 전일 1393.7원까지 떨어져 1400원 선 붕괴를 눈앞에 뒀었다.
최 수석은 다음주 뉴욕에서 만나는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간 통화스왑 논의가 있을 것인지 묻는 질문에 "어떤 게 논의될지 정상들 간 만나보셔야 알 수 있는 상황이다. 양국 정상이 지난 5월 정상회담에서 외환시장에 대해 긴밀히 협의하기로 했고, 뉴욕에서 재무장관 회담도 예정된 만큼 이와 관련된 공통 관심사를 자연스럽게 논의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원론적으로 말했다. 일단 외환당국은 통화스왑을 실질적으로 추진해야 할 상황은 아니라는 기류가 강하다. 지금은 주요 통화에 비해 달러 강세가 뚜렷할 뿐 한국의 달러 조달 역량이 위협받고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대표적 국가 신인도 지표인 한국 국채에 대한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은 15일 32bp로 전일 대비 변화가 없었고 아직 코로나19 사태 초기 수준인 50bp를 밑돌고 있다. 한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한미 통화스왑 체결이 외환시장에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현재 외화 유동성 등을 살펴봤을 때 통화스왑 체결이 당장 필요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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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장이 통화스왑 기대감을 키우는 이유는 당국이 그만큼 원화값 1400원 선을 지키기 위해 치열한 시장 개입에 나설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다음주 미국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열리기 전까지 외환당국이 달러당 원화값이 1400원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관리할 것으로 예상한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전문위원은 "외환당국이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달러당 원화값이 1400원 아래로 내려갈 경우 감내하기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 같은 당국의 우려가 시장에 시그널로 작용하며 수출업체의 네고 물량이 풀려 원화값이 반등에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당국은 올 들어 원화값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5차례의 공식 구두 개입을 단행했다. 이 밖에 최 수석의 16일 발언을 제외하면 15차례의 구두 개입성 언급을 통해 시장 안정화에 나섰다. 공식 구두 개입만 5차례(3·4·6·8·9월) 했고, 4~9월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추경호 부총리는 물론 윤 대통령까지 15차례 고위 당국자가 구두 개입성 발언을 내놨다. 그러나 이 같은 구두 개입에도 원화값 하락세는 요지부동이다. 외환당국은 이 밖에 외국환평형기금을 활용해 달러화를 시장에 매도하는 스무딩 오퍼레이션으로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상태다. 15일에도 당국은 한 번에 7억달러어치를 매도하는 '도시락폭탄' 개입을 실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오후 3시 12분께 약 20억달러어치 매도 물량이 나오며 원화값이 반등한 건 정부의 개입 물량 때문이라는 추정이다. 시장 관계자는 "다른 통화들과 원화의 움직임이 큰 차이를 보인 것은 정부의 물량 개입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외환시장은 최근 변동성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특히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8월 초 대비 6% 가까이 하락하며 베트남 동화(-0.8%), 인도 루피화(-0.4%) 등 다른 아시아 신흥국 통화보다도 큰 낙폭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들어 원화값이 더 크게 떨어진 이유는 8월 무역수지가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하는 등 한국의 경제 체질이 약화된 요인도 크다.이달 10일까지 무역적자는 24억달러를 기록하며 25년 만에 6개월 연속 적자 우려도 커지고 있다.
외환시장은 다음주 연준의 FOMC 결과에 따라 방향성이 달라질 전망이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FOMC에서 금리 인상 사이클을 전망하는 점도표 변화에 따라 환율 방향성이 결정될 것"이라며 "여전히 물가 상승 압력이 높고, 반도체 경기도 악화되는 만큼 달러당 원화값이 1450원까지 내려갈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위안화 역시 하락세를 키우며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기는 '포치'(破七·달러당 위안화 환율 7위안 돌파)를 기록했다. 중국 본토 외환시장에서 전날 달러당 6.9775위안으로 거래를 마감하며 6위안대를 가까스로 지켜냈지만 16일 장이 열리자 7위안대로 바로 올라섰다. 역내외 시장에서 달러당 환율이 7위안을 넘어선 것은 2020년 7월 이후 2년2개월여 만이다. 중국 금융당국은 급격한 위안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화 지급준비율 인하까지 단행했지만 '포치'를 막지는 못했다.
일본 엔화도 달러 대비 낙폭을 키우면서 당국이 외환 시장 개입을 시사했다.
[이종혁 기자 / 이희조 기자 / 김유신 기자 / 베이징 = 손일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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