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비대면 명절 익숙'... 이젠 귀성·귀경이 어색
"명절은 개인 휴식 시간" 인식... '뉴노멀' 자리 잡나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8일 서울역에서 귀성객이 큰 가방을 들고 열차를 타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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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시에 사는 이영은(55)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퍼지기 시작한 2020년 이후엔 명절이 와도 시댁과 친정에 가지 않는다. 그는 이번 추석에도 양가 어른들에게 전화로만 안부를 전할 예정이다. 이씨는 "2년 동안 거리두기를 하다 보니 명절이 '나만의 연휴'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며 "주변에서도 명절 귀성길에 오르지 않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추석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전히 사라진 첫 명절이라, 표면적으론 연휴 기간 귀성·귀경객이 작년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8일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추석 특별교통대책기간(9월 8~12일)에 하루 평균 603만 명이 이동할 것으로 예측됐는데 작년 이동량(546만 명)보다 10.4%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모처럼의 '대면 추석'에도 이씨처럼 고향을 찾지 않겠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구인구직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최근 성인 남녀 1,5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 추석 고향 방문 계획이 없다는 응답이 37.0%에 달했다. '직장·아르바이트 등으로 연휴에 쉴 수 없기 때문(30.4%·복수응답)' '취업 준비·시험 공부 등 자기개발에 집중하기 위해(24.1%)'라는 이유가 많았지만, '비대면 명절 문화가 익숙해져서'란 응답도 23.4%에 달했다.
직장인 구모(29)씨도 3년 만에 고향 부산을 찾지만, 집에는 잠시 얼굴만 비친 뒤 곧바로 경주로 여행을 갈 계획이다. 그는 "최소한의 예의로 어른들에게 인사만 드리는 것"이라며 "직장인 입장에서 1년에 몇 번 안 오는 재충전 기회이니 최대한 잘 활용하고 싶다"고 했다.
다시 찾아온 '대면 명절'에 대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학 4학년인 김장훈(27)씨는 "'아직 졸업도 못하고 여자친구도 없냐'라는 잔소리 들을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며 "이젠 코로나 핑계를 댈 수도 없으니 집에서 혼자 평온히 보냈던 작년 명절이 그립다"고 한숨을 쉬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비대면 명절'이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자리 잡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년간의 사회적 거리두기로 '명절은 고향 가는 날'이란 인식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문모(50)씨는 "이젠 아이들에게 고향 가야 하니까 시간 내라고 말하기도 힘들어졌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번 추석에는 가족들과 서울 근교로 나들이 갈 계획"이라며 "앞으로도 명절 때 꼬박꼬박 고향에 갈 것 같진 않다"고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명절에 꼭 모이지 않아도 된다는 문화는 결혼이나 취업 고민이 많은 청년 세대와 고부갈등을 겪던 며느리들 사이에서 더 빠르게 정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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