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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G7 정상회담

G7 '유가상한제' 박차…기름값과 러 제재, 두 마리 토끼 잡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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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러시아 중부 한티만시에 있는 러시아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의 정유시설에서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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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등 주요 7개국(G7)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 상한제(유가상한제)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G7 재무장관들이 2일(현지시간) 화상으로 만나 유가상한제 지지를 발표하고, 이행 방식을 확정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이날 워싱턴에서 나딤 자하위 영국 재무장관을 만나고 “유가상한제를 현실화하기 위해 미국을 포함한 G7이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밝혔다.

유가상한제는 G7 국가들끼리 정한 가격 이상으론 러시아산 석유를 사들이지 않는 것이 골자다. G7이 관할하는 석유 운송망을 통해 합의된 가격 이하의 러시아산 석유만 운송하거나, 상한가를 넘은 거래에 대해선 선박 보험을 제공하지 않는 방식 등이 검토되고 있다. 해상보험 없이 선박으로 원유 등 화물을 운송하면 국제 해사법 위반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 싱크탱크 브뤼겔에 따르면 G7은 세계 경제 규모의 30%를 차지하고, 전 세계 해운 물동량의 90%에 보험을 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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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닛 옐런(오른쪽) 미국 재무장관과 나딤 자하위 영국 재무장관은 지난달 31일 미국 워싱턴의 재무부 건물에서 만나 주요7개국(G7)의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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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G7의 중심인 영국과 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는 5월만 해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석유의 해외 수출을 제재하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미국이 제안한 유가상한제에 동의하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인플레이션 공포 때문이다. 제재로 러시아 석유가 시장에 풀리지 않으면 국제유가가 치솟을 수 있다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하기 어려웠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가상한제로 러시아 재정을 악화시키고 국제유가를 진정시키는 두 가지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유가상한제의 실효성에는 의문이 크다. 상한제에 적용할 가격을 정하기부터 어렵다. WSJ에 따르면 러시아산 석유는 이미 배럴당 90달러 수준인 현재 국제유가보다 평균 20달러 싸게 유통되고 있다.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 속에 아시아 국가들에 시가보다 낮게 원유를 팔고 있기 때문이다. WSJ은 “(G7 관리들은) 러시아의 수익을 제한하면서도 러시아가 시장에 석유를 팔 유인을 제공할 적정선을 찾는 걸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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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러시아 동부 나홋카 항구에 중국 화물선 얀둔자오호가 정박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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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 이외의 국가가 동참할지도 문제다. 자하위 재무장관은 “(유가상한제는) 시행에 앞서 가능한 가장 포괄적인 지지를 확보했을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며 “더 많은 나라의 동참을 설득해야 할 일이 남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제 에너지 시장의 큰 손인 중국과 인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오히려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을 하루 평균 100만 배럴 이상으로 대폭 늘렸다.

WSJ은 “에너지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중국과 인도는 미국 주도의 유가상한제에 찬성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이에 유럽 관리들은 터키·이집트·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다른 러시아산 석유 구매국들이라도 유가상한제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유가상한제에 형식적으로 참여하더라도 우회적으로 러시아에 가격을 추가 지불하며 수입을 할 가능성도 여전하다. 당장 러시아는 유가상한제에 동참하는 국가에 대해선 석유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렇다고 G7이 유가상한제에 동참하지 않거나 위반하는 국가까지 제재하는 ‘세컨더리 제재’를 펴기도 어렵다. 석유 거래가 줄어 국제유가가 치솟을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12월 5일부터 EU 내로 러시아산 석유를 들여오는 선박에 대해 보험발급을 중단하는 제재를 시행할 계획이지만, 제3국으로 가는 선박에는 제재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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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 경제포럼에서 압둘 아지즈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 장관(오른쪽)이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를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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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안정의 키를 쥔 산유국의 도움도 여의치 않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OPEC 산유국 모임인 OPEC+는 미국의 지속적인 요청에도 증산에 호의적이지 않다. OPEC을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 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부 장관은 “경기침체 우려로 유가가 하락하는 상황이 우려된다"며 "OPEC+ 차원에서 감산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국제 유가를 안정과 러시아 재정을 악화시키려는 미국의 생각은 ‘미션 임파서블(달성 불가능한 임무)’”라며 “시장 왜곡만 불러일으킬 게 뻔하다”고 지적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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