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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유가와 세계경제

사우디 '몽니'에 WTI 4.2% 치솟아…유가 또 물가 불쏘시개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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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 카드를 만지자 상승세가 한풀 꺾였던 유가가 다시 뛰고 있다. 29일(현지시간) WTI는 전거래일 보다 4.2% 오른 97.0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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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 압력을 낮췄던 기름값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유가 하락에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 카드를 만지며 ‘몽니’를 부리고 있어서다. 물가 '피크 아웃(정점 통과)'을 기대하는 시장은 긴장 모드다. 유가가 다시 오르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자극해 각국 중앙은행이 보다 더 센 긴축에 나설 수 있어서다.

29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0월물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97.01달러로 전 거래일(93.06달러)보다 4.2% 뛰었다. 지난달 29일(98.62달러) 이후 한 달 만에 최고다. 이날 런던 국제선물거래소에서 10월물 브렌트유 가격도 이달 중 가장 비싼 배럴당 105.09달러에 거래됐다.

중앙일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기름값이 한 달여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배럴당 130달러 코앞까지 치솟았던 국제 유가 상승세는 지난달 중순 제동이 걸렸다. 세계적인 경기 둔화 우려에 원유 수요가 줄고, 이란의 국제 원유 시장 복귀로 공급이 늘 것이란 전망이 가격을 끌어내렸다. WTI 가격은 지난 16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준인 배럴당 86.03달러까지 밀렸다.

유가가 다시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가능성이다. 불씨는 원유 최대 수출국이자 OPEC의 맹주인 사우디가 꺼내 든 감산 카드다. 유가 하락세에 생산을 줄이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압둘라이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 장관은 지난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시장 변동성과 유동성 축소로 OPEC이 감산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가 기치를 든 감산에 다른 산유국도 동참할 테세다. 당장 다음 달 5일(현지시간) OPEC과 러시아 등 비(非) 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플러스(OPEC+) 회의에서 감산 계획을 논의할 수 있다.

OPEC+ 순회 의장인 브뤼노 장 리샤르이투아 콩고 에너지 장관은 최근 월스트리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사우디의 감산 제안에 “우리의 견해와 목표와 부합한다”고 말했다. OPEC+는 이미 이달 초 회동에서 9월 증산 규모를 7·8월 하루 평균 64만8000배럴에서 10만 배럴로 대폭 줄였다.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리비아의 정치적 혼란으로 원유 생산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도 국제 유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계절적 수요도 늘고 있다. 겨울철을 앞두고 유럽 국가의 에너지원인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자 원유가 대체 수요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원자재 시장 전문가들이 연말까지 국제 유가(WTI 기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 선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OPEC+의 감산 가능성에 리비아의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겹쳐 공급이 줄고, 천연가스 대체재로 원유 수요가 늘면 유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며 “연말 무렵 국제 유가 상단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도 “최근 사우디의 감산 카드 등 유가를 끌어올리는 공급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유가 전망치는 상단기준 배럴당 125달러 선까지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제 유가 오름세가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는 것이다. ‘물가 잡기’에 초점을 맞춘 각국 중앙은행은 국제 유가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세(1년 전 대비 8.5%)가 다소 주춤한 데는 국제 유가가 하락한 영향이 크다. 지난달 미국 에너지 물가는 전달보다 4.6% 하락했고, 휘발유 가격은 7.7% 급락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인터뷰에서 "만약 금리 인상을 멈췄다가 (국제) 유가가 다시 오르면 어떻게 되냐"며 "(유가 상승 등) 외부 충격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정확한 (금리 인상 중단) 시점을 알기 힘들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 속 유가가 들썩이면 물가 정점 통과를 기대해 온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셈이다.

더욱이 최근 잭슨홀 미팅에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인플레 파이터' 본색을 드러내며 강도 높은 매파(통화 긴축) 발언을 한 만큼 '국제 유가 급등→물가 상승→긴축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국제 유가의 나비 효과로 시장이 '오일 쇼크'에 빠질 수 있단 우려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유가가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변수로 작용했다”며 “유가가 오르는 한 각국 중앙은행이 긴축의 고삐를 느슨하게 풀긴 힘들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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