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개봉 다큐 ‘K클래식 제너레이션’
벨기에 감독 로로, 2번째 韓클래식 다큐
“유럽서 사라진 신선함, 한국에 있어
클래식의 미래 한국에…K클래식 명명”
다큐 'K클래식 제너레이션'에 출연한 2014년 국제 3대 음악 콩쿠르 중 하나인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소프라노 황수미의 모습이다. [사진 엣나인필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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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정말 뭔가 벌어지고 있어요. 클래식의 미래가 어느 정도 한국에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K팝‧K드라마처럼 ‘K클래식’이라 부른 이유죠.”
한국 클래식 연주자들의 국제무대 활약상을 담은 두 번째 다큐멘터리 ‘K클래식 제너레이션’(31일 개봉)로 한국을 찾은 벨기에 공영방송 RTBF 클래식 음악 프로듀서 티에리 로로(64) 감독. 26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만난 그는 “최하영(첼로‧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은 음표 하나하나가 이야기하듯 연주했다. 임윤찬(피아노‧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우승)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로웠다”면서 최근 국제 주요 콩쿠르에서 한국 연주자들의 잇단 성과에 감탄했다.
그는 K클래식 위력의 원인을 K팝 못지않게 ‘젊은’ 클래식 음악 문화에서 찾았다. “한국에선 젊은 사람들이 클래식을 좋아하고 즐겨 듣고 연주한다. 공연장에선 젊은 관객들이 사인을 받으러 줄을 선다”면서 “유럽에서 사라지고 있는 신선함, 새로움을 한국에서 느낀다”고 했다. “일본이 1980년대 국제무대에서 우승을 휩쓴 적이 있지만 최근에는 한국만 한 나라가 없다”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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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처럼 젊은 문화가 K클래식 띄웠다
그가 K클래식에 주목한 건 10년 전 다큐 ‘한국 클래식의 수수께끼’(Lemystère musical coréen)’부터다. 2010년 벨기에 하모니카 연주자에 관한 다큐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초청된 그는 전국 곳곳을 여행하며 한국 문화에 빠졌단다. 이듬해 세계 3대 음악 경연에 꼽히는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아시아 최초 우승한 한국 소프라노 홍혜란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세계적 음악 콩쿠르에 한국인 진출자가 급부상한 현상을 첫 다큐에서 조명했다. 2019년 두 번째 다큐를 찍기 시작한 건,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10년간 많은 게 변화했죠. 이제 한국인들은 경연에 많이 참가할 뿐 아니라 수상까지 휩쓰니까요. 그런 배경엔 교육 방식의 변화, 클래식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 세대의 문화가 있었습니다.”
‘K클래식 제너레이션’은 2019년까지 20년간 한국 음악가 700명이 국제 음악 콩쿠르 결선에 올라 110명이 우승했다는 설명으로 시작된다. 한국과 독일, 벨기에 등을 오가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2015년, 이하 우승연도)과 소프라노 황수미(2014), 영국 위그모어홀 국제 현악사중주 콩쿠르에서 우승한 에스메 콰르텟(2018) 등에 초점 맞춰 연주자와 가족, 음악 스승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 결과 “부모‧교사‧아이의 ‘삼각형’의 변화”를 포착했다. 부모의 헌신적 지원, 경쟁 위주 교육은 여전하지만, 해외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교사들이 주입식 경직된 교육에서 탈피했다는 것이다. “모차르트를 가르치는 100가지 다른 방식이 있다는 걸 선생님들이 알게 된 거죠. 아이가 자기 안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게 된 게 변화입니다. ‘자기표현’을 하게 되면서 국제 경연에 오는 한국 음악가들의 강렬한 개성을 느낄 수 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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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도이치 "한국인, 시칠리아인처럼 감정 풍부"
다큐 'K클래식 제너레이션'에 출연한 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자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의 모습이다. [사진 엣나인필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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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음악계가 K클래식을 바라보는 시선도 흥미롭다. 오스트리아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는 “유럽에선 한국인을 시칠리아인에 비유한다. (감정을 억제하는 일본에 비해) 훨씬 감정이 풍부하고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배출한 파리 국립고등음악원 미셸 베로프 교수는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의 스타덤을 언급하며 “클래식 음악 발상지 유럽에서 젊은 층의 관심이 멀어져가는 현상과 비교된다. 오늘날엔 유럽보다 동양 출신 음악가들이 어린 나이에 유럽이나 미국에서 교육받고 (동서양) 두 문화가 융합해 최고의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다큐는 K클래식이 각광받는 현실 이면의 그림자도 담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대학교 관악창의예술영재교육원 등 국가 지원 음악 교육 기관에서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실력파 음악가들이 한국에서 1등 제일주의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가 하면 상을 받아 인정받기 위해 유럽 경연을 떠도는 모습도 나온다. 세계 무대에서 조명받는 일부 클래식 음악가들에 비해, 진로가 좁은 한국 전통 음악의 젊은 연주자들 모습을 비춘 대목은, 유럽의 전통 음악 클래식이 젊은 층에 외면받는 현실과 고스란히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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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최정상 유지해야 하는 한국 교육,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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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로 감독은 “한국에선 18세 이전까지 테크닉이란 ‘근육’, 상상력을 위한 뇌, 사회화, 기억력 등 많은 걸 배우지만 유럽에선 18살까지를 ‘내가 누구인가’를 찾는 시간, 실수하고 실패해도 되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의 어머니 말처럼 항상 최정상을 유지해야 하는 한국 교육과 분위기가 다르다”면서도 “한국 교육을 비판적으로 보고 싶지 않다. 어쨌든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했다. “영화에 나오듯 ‘에스메 콰르텟’의 한 연주자는 9~10살 때 친구들과 놀고 싶어 한 자신을 ‘꿈이 있다면 지금부터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며 붙잡아준 엄마가 고맙다더군요. 제가 만난 젊은 음악가들은 불평하지 않았어요. 임지영씨도 하루 9시간 연습하기에 무대에서 100% 자신감을 갖고 임하죠. 모두에게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제가 만난 음악가들에겐 (한국 방식이) 통한 게 아닌가 합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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