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3일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위한 마스터플랜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원 장관은 다음달 마스터플랜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5개 신도시별로 전담 마스터플래너를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경기 고양 일산 아파트.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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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첫 부동산 대책인 8·16대책을 발표하면서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마스터플랜 수립 시점을 2024년이라고 밝힌 이후 논란이 커지고 있다. 1기 신도시 주민들은 “대통령의 공약 후퇴”라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이번 논란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정부의 '준비 부족'과 '소통 부재'를 꼽고 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한 한 인사는 "공약을 만드는 과정이나 인수위 등에서 1기 신도시 재정비 문제는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1기 신도시 주민들은 사업성 등을 고려해 리모델링 등을 준비해 왔는데, 정부에서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용적률 상향, 특별법 제정 등 장밋빛 공약을 꺼내 들면서 주민들에게 재건축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을 심어준 것이 문제"라며 "지금이라도 진행 과정, 방향 등을 주민들에게 솔직하게 밝히고,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목동,상계동 등 지은 지 40년이 넘은 단지들도 여러 규제 때문에 재건축이 여의치 않은 상황인데, 준공 30년 이내인 1기 신도시에 온갖 혜택을 줄 경우 형평성 문제까지 불거질 수 있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는 '현 정부가 신도시 재정비 이슈를 2년 후 국회의원 선거에 다시 이용하기 위해 그 시점에 맞춰 마스터플랜을 내놓는 것 아니냐'고 들렸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 "1기 신도시 마스터플랜은 5년 정도 걸리는 사안을 최대한 단축했다. 그런데도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되지 못했다"며 질책했다.
'공약 후퇴' 논란 이후 정부는 줄곧 "5년 이상 걸리는 도시 재창조 수준의 종합 대책을 1년 6개월 안에 수립한다는 건 굉장히 이례적으로 빠른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용산역세권과 3기 신도시는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데 각각 50개월, 36개월이 걸렸는데, 이에 비해서도 빠르다는 것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23일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에서 가진 취임 100일 기념 간담회에서 "이번 대책(8·16대책)이 주거공급 관련 종합과제여서 신도시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가 적었다"면서 "1기 신도시 주민들이 기대하고 궁금해하던 부분들에 약간 부족함이 있었던 것 같다"고 사과했다.
전문가들은 총 30만 가구에 달하는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단시일 내에 완성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일반적인 아파트 단지 한 곳을 재건축이나 리모델링해도 10년이 넘게 걸리는데, 하물며 다섯개의 신도시를 대상으로 재건축을 신속하게 추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며 "현재 30만 가구 규모의 1기 신도시 전체의 용적률을 높여 재건축하면 10만 가구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데 도로, 상하수도, 학교 등 기반시설 용량이라든지 주변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라든지 생각했을 때 마스터플랜을 만드는 데 최소 1년 6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스터플랜이 수립된다 하더라도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 1기 신도시 주민들이 원하는 대로 착공에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무리라는 의견도 많다. 일반적인 재건축 경우 지구단위 계획 수립, 정비구역 지정 등 인허가 절차만 5년 이상 걸린다. 이후 조합 설립, 시공사 선정 등 사업 진행하는 건 주민들의 몫인데, 이 과정에서 주민 간 분쟁으로 사업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이후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계획 등의 과정도 거쳐야 한다. 국토부에 따르면 재건축 사업 초기 단계부터 실제 입주까지 평균 13년이 소요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공공재건축을 통해 제시한 사업 기간도 착공까지 최소 5년이다. 공공재건축의 경우 조합 설립 등을 공공이 맡아서 하기 때문에 이 과정이 3~4년 이상 줄고, 통합 심의로 인허가 기간도 단축된 결과다. 민간 주도로 사업을 진행하면 사업 진행 속도는 더 더딜 수밖에 없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
정부의 한 관계자는 "도시계획을 새로 짜면서 5년 이내에 착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공급 기반을 제대로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원희룡 장관은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기 신도시에는 이미 30만 가구의 주택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재정비하기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 이주대책 등의 계획 수립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면서 "그래서 처음부터 '10만 가구 공급'이 아니라, '10만 가구 공급 기반 구축'이라고 공약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마스터플랜 수립,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1기 신도시 '재정비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윤석열 정부 1기 신도시 공약의 취지였다는 의미다. 실제 8·16대책에서 정부가 밝힌 270만 가구 공급(인허가 기준) 대책에도 1기 신도시 재정비를 통해 공급되는 물량은 포함하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270만 가구가 인허가 기준 물량인데 1기 신도시 재정비가 예정대로 2024년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더라도 2027년까지 주택 건설 인허가를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포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성규 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마스터 플랜 이후 특별법 제정이 중요한데, 여소야대의 정치권 상황에서 주도권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며 "이럴 경우 특별법은 다음 국회에서나 논의될 가능성이 큰 데다 특별법 제정 후 인허가 과정 등 절차를 간소화한다고 하더라도 이주 수요 분산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어 실제 착공까지는 10년가량이 소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정부는 단기간에 쇠뿔을 빼려 해선 안 된다"며 "의견 수렴, 구체 계획 마련과 시행, 초과이익 환수와 폭리 차단, 전세 대책 등을 고려해 순차적인 재정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범 단지를 선정하고, 계획 마련과 사업 진행을 동시에 추진하는 등 '운용의 묘'를 살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정렬 교수는 "같은 1기 신도시라고 해도 지역 여건이 달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며 "마스터플랜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지역별 시범 단지를 만들어 신속하게 사업을 진행한다면 지역 주민들의 막연한 기대감이나 반발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유 교수도 "용적률 등 밀도 계획이나 기반시설 용량을 점검하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먼저 진행하고, 사업성이 있는 역세권이나 노후도가 심한 단지를 우선 선정해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등 절충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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