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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짜고짜 "싸장님 얼마 줄거야"…불법체류자 '을질'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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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4월 우리나라에 입국한 필리핀 계절근로자 100명이 강원도 양구군에 도착해 농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양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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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근로자 이탈로 출하 늦어 1400만원 손해



전북 고창군에서 감자와 멜론 농사를 짓는 최재화(50)씨는 지난 5월 네팔에서 들어온 외국인 계절근로자 2명이 야반도주하면서 큰 손해를 봤다. 4950㎡(1500평)에 심어 놓은 감자 수확을 앞두고 있었는데 일할 사람이 없어 출하를 하지 못했다.

당시 감자 한 상자(20㎏) 가격은 7만8000원으로 330㎡(100평)당 감자 45상자가 나오는 것을 고려하면 675상자의 출하가 늦어진 셈이다. 일손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사연이 알려지자 고창군청 직원들이 일손돕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감자 가격은 한 상자에 4만8000원~5만8000원으로 떨어진 뒤였다.

이런 상황에서 최씨를 더 화나게 한 건 불법체류 외국인 전화였다.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에선 외국인이 다짜고짜 “싸장님 일 있어? 싸장님 얼마 줄 거야”라고 물었다. 최씨가 “일당 12만원을 주겠다”고 답하자 그는 “안돼~”라고 말했다. 최씨가 다시 “13만원으로 1만원 올리겠다”고 했지만, 그는 이번에도 “안돼”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

급한 마음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봤지만 결국 연결되지 않았다. 최씨는 “출하 시기가 일주일 늦어져 1400만원이나 손해를 봤다”며 “요즘은 불법체류자가 농가를 고르는 이상한 상황이 되면서 일당이 15만원까지 올라 이래저래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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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산후안시에서 온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이 지난달 27일 강원 홍천군 내면의 한 농가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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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자 '임금 올리기'...속 타는 농민들



농민들은 불법체류자들이 일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민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 임금을 올리는 것으로 보고있다. 이들은 오랜 기간 한국에 머물며 수확 시기는 물론 연락처까지 확보하고 있다고 농민들은 전했다. 최근 불법체류자들은 인력사무소에 떼주는 수수료(1만~2만원)를 아끼려고 직접 농가와 접촉하고 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를 도입한 지 7년이 지났다. 이 제도는 2015년 충북 괴산군에서 시범 실시한 이후 전국으로 확산했다. 하지만 인원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일명 ‘브로커’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소개비 명목으로 500만~1000만원을 챙기면서 계절근로자 일부가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계절근로자로 근무하면 한 달에 200만~250만원을 손에 쥐는데 브로커 비를 제외하면 남는 것이 거의 없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해 불법 체류를 택할 수밖에 없다. 장기간 머물며 한국 농업구조를 파악한 브로커들은 농가를 상대로 입금 협상을 시도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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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충남 부여에서 방울토마토 농장을 운영하는 임모씨는 지난 5월 불법체류자 3명을 임시로 고용했다. 그런데 정작 오기로 한날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 내국인은 물론 불법체류자까지 인건비가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오른 시기였다.



약속해놓고 '1만 원' 올려주는 농가로



임씨는 전화를 걸어 울며 겨자 먹기로 “1인당 하루에 1만 원을 더 주겠다”고 사정했다. 납품할 업체와 신뢰 때문이었다. 이후에는 이들이 아예 휴대전화 전원을 꺼놔 달리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결국 임씨는 주변 친척과 자녀들을 급하게 불러 부랴부랴 토마토를 수확했다. 며칠 뒤 임씨는 자신의 농장으로 오려던 불법체류자들이 다른 농장으로 일하러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돈을 더 준다”는 곳이었다. 임씨는 “내국인은 비싼 임금, 외국인은 약속을 지키지 않아 난감할 때가 많다”며 “불법체류 신분인 외국인들이 오히려 갑질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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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에 입국한 필리핀 계절근로자 100명이 강원 양구군에 도착해 농민들과 만난 모습. 사진 양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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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 맞은 농민들 출하 못 하는 사례 속출



불법체류자들이 '횡포'를 부리자 농민들이 평균 임금을 결정하는 곳도 생겨났다. 강원 양구군에선 불법체류자들이 임금을 올리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농가들이 협의, 평균 임금을 11만~12만원으로 정했다.

양구군 해안면에서 시래기 농사를 짓는 변재모(57)씨는 “불법체류자들이 무분별하게 임금을 올리는 것을 막으려면 농민들이 합심하는 게 중요하다”며 “(농가들이) 지속해서 제재해 그나마 유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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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산후안시에서 온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이 지난달 27일 강원 홍천군 내면의 한 농가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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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더 큰 문제는 체류 기간이 3개월(C-4 비자)과 5개월(E-8 비자)인 외국인 계절근로자의 출국 시기가 다가오면서 무단으로 이탈한 뒤 불법체류자가 되는 사례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돌아간 뒤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려면 2~3개월은 더 걸리는 데다 재입국을 장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무단이탈 계절근로자 300명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입국한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5332명이다. 필리핀이 2578명으로 가장 많고 베트남 1162명, 네팔 662명, 캄보디아 514명, 라오스 586명 등이다. 이들 가운데 상반기에만 300명이 무단으로 이탈했다. 전북 고창군이 72명으로 가장 많고 강원 양구 52명, 인제 37명, 전남 해남 32명, 경북 성주 22명, 전남 고흥과 충남 공주가 각각 15명이다. 국가별로는 필리핀 150명, 네팔 102명, 베트남 34명, 라오스 9명, 캄보디아 5명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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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에서 일할 캄보디아 계절근로자들이 도착 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괴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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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가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제도가 되지 않으려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재대 공공인재학부 이혜경 교수는 “무단이탈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자체에 외국인을 데려오는 업무를 모두 맡긴 탓”이라며 “제도 자체는 좋지만, 지자체가 외국과 직접 MOU(양해각서)를 맺는 일이 어렵다 보니 브로커가 개입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산업인력공단이 현재 고용허가제를 담당하는데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 역시 산업인력공단이 전담하거나 다른 조직을 만드는 방안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불법체류자는 매년 증가 추세다. 지난 6월 기준 불법체류자는 역대 최고인 39만4414명을 기록했다. 곧 40만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21년엔 38만8700명, 2020년 39만2196명, 2019년 39만281명, 2018년 35만5126명, 2017년엔 25만1041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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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양구ㆍ부여ㆍ고창ㆍ영주=박진호ㆍ신진호ㆍ김준희ㆍ김정석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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