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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인도 독립기념일에 집단 성폭행범 11명 조기 석방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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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인도 독립기념일에 2002년 구자라트주 무슬림 대학살 당시 일어난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이 조기 석방되며 파문이 일고 있다. 이들의 처벌을 위해 투쟁한 생존자와 시민단체, 야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을 보면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정부는 독립기념일인 15일(현지시각) 2002년 3월 구자라트주에서 임산부와 신생아를 포함한 무슬림 일가족에 대해 집단 성폭행과 살인을 저지른 혐의가 인정돼 2008년 종신형을 선고 받은 11명의 힌두교도 남성을 조기 석방했다. 이들의 범죄는 2002년 구자라트주에서 3달 간 1000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힌두교도의 무슬림 집단 학살 사건의 일부다. 당시 힌두교도들은 순례 중인 힌두교도 60명 가량이 목숨을 잃은 구자라트주 열차 사고를 무슬림이 일으켰다고 주장하며 이슬람교 신자들을 살해했다. 당시 구자라트주 주지사는 현 인도 총리인 나렌드라 모디였다. 이들이 복역하던 교도소가 위치한 지역인 판치마할스의 최고위 관료는 이들의 복역 기간과 복역 중 품행을 고려해 석방이 결정됐다고 <로이터>에 설명했다.

무슬림 대학살을 피해 도망치던 일가족 중 적어도 7명을 죽이고 임신 중이었던 여성을 포함한 여성 여러 명을 집단 성폭행한 극악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이들은 출소 당시 "영웅 대접"을 받았다고 영국 BBC 방송이 보도했다. 방송은 출소 직후 이들이 수감됐던 고드흐라 교도소 앞에서 친지들이 존경의 표시로 이들의 발을 만지고 과자를 건넸다고 전했다.

14년 복역 뒤 품행방정 등을 이유로 조기 석방됐지만 이들 중 일부는 여전히 혐의를 부인한다. 인도 매체 <인디안익스프레스>는 혐의를 부인하고 조기 석방을 청원한 범인 중 한 명인 라드헤시암 샤가 감옥에 있는 동안 공범 한 명이 사망했고 한 명은 다리의 상태가 좋지 않고 아내가 암에 걸리는 등 이들이 그간 겪은 "상실과 고통"에 대해 토로했다고 보도했다.

사건의 생존자이자 경찰과 주정부의 회유와 주변의 위협을 견디며 범인들의 처벌을 위한 법적 투쟁을 벌인 빌키스 바노는 17일 성명을 통해 이들의 석방이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노는 성명에서 이들이 석방된 15일 "20년 전의 트라우마가 밀려들었다. 내 3살 딸과 내 삶, 내 가족을 파괴한 11명의 남성이 자유의 몸이 되다니 할 말을 잃었고 망연자실해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런 크고 부당한 결정을 내리면서 아무도 내 안전과 안위에 대해 묻지 않았다. 나는 구자라트 정부가 이 해악을 취소하기 바란다"며 "어떻게 여성에 대한 정의가 이렇게 끝날 수 있는가"라고 호소했다.

사건 당시 임신 중이었던 바노는 무슬림에 대한 공격을 피해 3살 딸, 어머니, 사촌, 조카 등 일가족 17명과 함께 피난하던 중 칼, 막대기, 낫 등으로 무장한 30~40명의 남성들에게 공격당했다. 성폭행 뒤 실신했던 바노는 죽은 것으로 오인돼 살아남았다. 가족 중 생존자는 바노를 포함해 3명 뿐이었다.

이후 바노는 지난한 법적 투쟁을 시작했다. 피해를 신고하자 경찰과 주정부 관료는 그를 회유하려 했고 의사는 바노가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도 했다. 인도 대법원이 사건을 중앙수사국(CBI)이 조사하도록 한 뒤인 2004년에야 첫 체포가 이뤄졌고 2008년에 이르러 범인들에게 종신형이 선고됐다.

바노의 남편은 "경찰과 주 관료들은 언제나 공격자들의 편이었다. 구자라트에선 우린 여전히 얼굴을 가리고 절대 주소를 알려주지 않는다"며 두려움을 느껴 그간 열 번도 넘게 이사를 다녀야 했다고 BBC에 말했다.

조기 석방에 시민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전인도진보여성연합(AIPWA)은 16일 성명을 내 이번 석방으로 "결국 인도에서 대량 학살범과 강간범에 대한 유죄 판결은 규칙이 아니라 예외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하필 독립기념일에 이뤄진 이 석방 탓에 "인도 여성들에게 독립기념일은 치욕의 날"이 됐다고 비판했다.

인도무슬림여성운동(BMMA) 창립자 자키아 소만은 17일 <인디아익스프레스>에 범인들을 비호하는 이들 및 경찰과 주정부 등 공권력의 위협을 견디며 투쟁한 "바노는 모든 구자라트 폭력 생존자의 희망의 상징"이었다며 석방은 "생존자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다"고 썼다. 그는 "국가가 독립기념일 행사를 벌일 때 말할 수 없이 잔혹한 일을 겪은 한 여성은 가해자들이 석방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국가의 이 같은 조치 탓에 정의를 갈구하고 있는 다른 여성들도 희망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와 야당은 이번 석방에 대해 모디 총리에 직접 책임을 묻고 있다. 모디 총리는 당시 학살을 방조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야당인 인도국민회의(INC)의 라훌 간디 의원은 이번 석방이 "이 나라 여성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겠느냐"며 "온 나라가 총리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걸 목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모디 총리는 수 년 간 독립기념일 연설 등에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고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AIPWA도 성명에서 "모디 총리와 아미트 샤 내무장관은 이번 석방 결정에 대해 답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가 집권당인 인도국민당(BJP) 최고 리더들의 축복 없이 이 결정이 내려졌다고 믿어야 하는가"라고 비난했다.

프레시안

▲18일(현지시각) 인도 뉴델리에서 여성운동가들이 2002년 구자라트 무슬림 대학살 당시 집단 성폭행 및 살인을 저지른 11명의 남성이 조기 석방된 것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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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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