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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13조 투자 현대차에 "실망시키지 않겠다"던 바이든, 석달만에 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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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태성 기자] [편집자주] 전기차 보조금을 자국내 조립 자동차로 제한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발효를 계기로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조금, 국가 주도 산업 정책 등을 이유로 중국과 무역 전쟁까지 벌였던 미국이 어느새 중국을 닮아가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감축법에 담긴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를 뜯어보고 대응 방향을 모색한다.

[MT리포트] 중국 닮아가는 미국의 불공정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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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 (현지시간) 여름 휴가 중 워싱턴 백악관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보장 확충, 대기업 증세 등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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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른바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에 서명한 것을 두고 국내 자동차업계에선 섭섭함을 넘어 허탈하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현대차그룹이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 방한에 맞춰 미국에 105억달러(약 13조8558억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는데도 전혀 배려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앞으로 미국 정부로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기존에 약속한 투자 금액보다 더 많은 자금을 신속히 미국에 투입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투자를 강제하는 미국에 대해 일각에서는 '중국과 다를게 없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인해 북미에서 최종 조립되는 전기차만 올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내년부터는 전기차 배터리 원자재 등도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의 원자재를 일정 비율 이상 넣어야 한다는 조건도 추가된다. 현대차그룹의 차종은 현재 세액공제 대상에서 전부 제외됐다.


"현대차 실망시키지 않겠다"더니...불과 3개월만에 '현대차 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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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2일 오전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숙소인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면담 관련 연설을 위해 함께 이동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2022.5.22/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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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한국에 방문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정의선 회장은 미국에 2025년까지 로보틱스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50억달러(약 6조5935억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투자하는 55억달러(약 7조2528억원)와는 별개로, 2025년까지 미국에 총 105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건넨 현대차그룹의 선물과 같은 것이었다. 방한 기간 동안 바이든 대통령과 단독으로 면담하고 투자 발표까지 한 것은 정 회장이 유일하기도 했다. 당시 정 회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우리 미국 사업에 지속적인 지지를 해주기를 정중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정 회장에게 "미국을 선택해준 데 대해 감사하며 미국은 현대차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또 "현대차를 비롯해 미국에 투자하는 어떤 회사든 가장 숙련된 성실한 근로자와 협력하는 데 따른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던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3개월만에 뒤집혔다. 현지시간 16일부터 발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인해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판매에 비상이 걸렸다. 현대차그룹의 아이오닉5나 EV6를 사려는 미국 소비자는 차량 1대당 최대 7500달러(약 989만원)인 세액 공제 형태의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1000만원에 가까운 보조금이 사라지면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다른 전기차들과는 경쟁이 불가능하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제조 원가가 비싸기 때문에 정부 지원금은 전기차 판매 확대에 필수 요건이다.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견고한 테슬라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현대차그룹은 최선을 다해왔는데, 세액공제 혜택이 다시 제공될 때까지 가까스로 차지한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의 위상을 반납해야 할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법안으로 미국 완성차 업체에 대부분의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미국 업체들의 전기차 판매는 가파르게 늘어날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현대차 등의 판매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미국 투자 더 늘려야 할 판...업계 볼멘소리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전기차 혜택을 받으려면 약속한 105억달러보다 더 많은 자금을 미국에 투자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당장 '북미 조립' 요건을 맞추기 위해 조립공장 증설 등을 검토할 경우 수천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현대차는 '싼타페 하이브리드'를 오는 10월부터, 'GV70 전동화 모델'을 연말부터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할 예정이었다. 업계에서는 이 계획을 현대차가 서두르거나 주력 전기차 모델 생산으로 변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당장 주력 전기차 모델인 아이오닉5와 EV6의 가격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법안은 파급력에 비해 업계에서 준비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며 "현대차그룹이 전략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당장은 미 조지아 공장 건설을 앞당기거나 기존 공장을 변경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자동차업계에서는 이번 미국의 조치가 지나치다는 목소리도 큰 상황이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미국이 한국에 반도체 동맹과 배터리 동맹을 요구하면서도 이번 법안에 한국 기업에 대한 배려는 일절 없었다"며 "자유무역주의 수호의 핵심이었던 미국의 이번 조치에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한미 FTA와세계무역기구( WTO) 협정 등 통상 규범 위배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미국에 전달했다. 다만 WTO제소 등으로는 이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WTO에 제소해 결과가 나올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고 승소 여부도 불확실한 만큼 거기까지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정부가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것 외에는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태성 기자 lts32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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