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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안전한 먹거리 넘어 공동체 살리는 ‘한살림 가치’ 알릴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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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원주 한살림 조성기 이사장

한겨레

조 이사장이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그는 자신이 대표를 겸하는 살림농산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애초 원주 한살림이 소유한 기름 공장이었어요. 그런데 수익이 많이 나자 원주 한살림 조합원들이 일부러 독립시켜 한살림 전체의 회사로 만들었죠. 원주 한살림 조합원들은 땅과 농부를 살리기 위해선 이 공장을 한살림 전체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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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사장이 된 2020년 이후 원주 한살림 조합원이 매년 1천 가구 정도 늘어 지금은 1만2천 가구입니다. 전국 한살림도 조합원이 매년 꾸준히 늘어 85만 가구가 됐죠. 그런데 조합원이 증가한 만큼 매출은 늘지 않아요. 연대와 협동이라는 한살림 정신을 살리면서 사업도 키울 길을 찾느라 지혜를 모으고 있어요.”

지난 2월 연임해 올해로 3년째 원주 한살림을 이끄는 조성기(67) 이사장의 말이다. 올해 설립 37년째인 원주 한살림은 밥상과 농업, 생명 살림을 내세워 도농 직거래 운동을 하는 비영리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의 모태가 된 곳이다. 한살림은 고 박재일 선생이 원주 한살림을 설립한 이듬해인 1986년 서울 동대문에 세운 한살림농산에서 출발했다.

지난 12일 원주시 흥업면 자택에서 조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한살림에 들기름과 참기름을 공급하는 살림농산 대표도 맡고 있다.

조 이사장은 한살림을 만나기 전 주로 경영 컨설팅과 정책 연구를 했다. 한국외대에서 ‘한국 서비스 산업 노동생산성 측정과 결정요인 연구’(1995)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88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생산성본부에서 경영연구실장과 정책사업실장을 지냈다. 그 시절 제품 품질 경쟁력 지표인 국가고객만족지수(NCSI) 도입을 이끌고 노동생산성 지수 편제를 바꾸기도 했다. 1997년에는 심각한 사회 문제였던 대학생 음주 문제 해법을 찾기 위해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를 만들어 지금도 회장으로 이끌고 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과 원주에서 생명운동을 같이한 어르신들이 강력히 권유했어요. 저 같은 경력자가 한살림을 맡아 잘 이끌어주면 좋겠다고요. 여러 차례 고사하다 받아들였죠.”

한국생산성본부를 나와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현 한국중독연구재단) 등에서 주류정책 연구를 하던 그는 2009년 아내가 직장 때문에 먼저 자리 잡은 원주로 옮겨왔다. “건강이 나빠져 조기 은퇴했어요. 처음엔 원주에 와서 혼자 연구만 할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협동조합의 도시 원주는 정책전문가인 그를 홀로 놔두지 않았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에 관심을 갖고 연구한 결과를 원주 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쪽이 마련한 토론회에서 두 번 발표했는데 이를 계기로 원주 한살림과 연결됐어요. 40개 이상 협동조합이 참여한 네트워크에서 한살림은 두번째로 규모가 크죠. 마침 한살림도 전국적인 돌봄사업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전국 23개 지역 한살림의 이사장은 한살림 이사도 겸한다. 지역 이사장 중 그와 같은 경력자는 드물단다. “대부분 한살림 활동을 오래 하신 분들이죠. 남성은 저를 포함해 3명뿐이고요.”

지난 2년 6개월 원주 한살림의 변화를 묻자 그는 “그동안 문제점 파악에 주력했고 지금은 경영개선을 시작한 단계”라고 밝혔다. “먼저 권한 이양을 많이 했어요. 300만원 이하는 사무국장 전결로 바꿨죠. 그 전에는 이사장 책상 위에 결재 서류가 산더미 같았어요. 사무국 스스로 계획하고 책임도 지는 경험을 하게 하려고요. 앞으론 사무국장 직위도 일반 기업처럼 상무로 바꿔 성과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검토하고 있어요.”

한살림 가치를 외부에 알리는 홍보 강화에도 힘을 쏟겠단다. “한살림은 그동안 다른 생협과 견줘 홍보에 소홀한 편이었어요. 이젠 우리가 왜 좋은지도 적극적으로 알려야죠.” 이 말에 바로 “왜 한살림이냐”고 물었다. “한살림 매장 이용은 표면적으로 안전한 먹거리를 사먹는 것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 공동체를 살리는 일입니다. 유기농법은 땅을 살리잖아요. 땅이 살아야 우리도 살죠. 땅이 죽으면 기후위기가 옵니다. 한살림은 또 생산자 생활 보장을 위해 판매 금액의 70%를 생산자에게 돌립니다. 매장을 이용하는 손쉬운 행동으로 이렇게 위대한 일에 동참할 수 있어요.”

한국생산성본부 12년간 정책연구

음주문화연구센터 중독예방 힘써

2009년 원주 옮겨 한살림과 인연

“무위당 생명운동 어르신들 권유”

이사장 3년째 조합원 매년 증가세


전통 무예 수벽치기 ‘원주 전도사’



그는 한살림이 성장기를 거쳐 2019년부터 정체기를 겪고 있다고 봤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하냐고 하자 그는 “한살림의 미래 변화도 생명과 돌봄 가치를 바탕으로 협동하고 연대할 수 있는 조합원의 근본 역량을 키우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답했다. “원주 한살림은 무위당의 뜻을 이어 생명운동을 하는 조합원과, 자본주의 체제에서 합리적 소비를 지향하며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조합원 그리고 사회적 돌봄에 관심이 많은 조합원 이렇게 셋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런데 성장기를 거치면서 합리적 소비를 중시하는 조합원 비중이 커졌어요. 앞으로 이들 대상으로 생명과 돌봄 가치에 대한 교육·홍보를 강화하려고 해요. 여러 연대 활동도 경험하도록 하고요.”

인구 35만 명인 원주는 ‘협동조합의 메카’로 불린다. 지역 협동조합 지도자로서 이런 수식을 실감하는지 물었다. “원주는 어떤 문제가 있으면 ‘생명운동가 장일순 선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가 잣대이더군요. 서울이라면 서구 경제학자 메이너드 케인스나 애덤 스미스가 기준이겠죠. 수도권이 미국화했다면 여기는 자본주의 정체성에서 벗어난 곳 같아요. 못 살더라도 서로 뭉치고 옆에 있는 사람도 돌보자는 생각이 크죠.” 정부에 바라는 게 있는지도 물었다. “정부는 자본주의 경쟁시스템을 보완하는 정도로만 협동조합을 보고 있어요. 인간이 고대로부터 지키며 살아온 협동과 연대의 정신이 바탕이 된 협동조합 시스템을 기존 경쟁시스템의 동지로 대우해줬으면 합니다.”

한겨레

조성기 이사장은 아내와 함께 집에 딸린 밭에서 20여 종이 넘는 작물을 키우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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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산성본부에 있던 1997년 한국의 음주문화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한 것을 계기로 나중에는 직장까지 옮겨 알코올 예방 정책 연구를 했던 조 이사장은 지금도 언론 기고로 주류 정책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의 술 규제는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입니다. 우린 언제 어디서든 술을 먹을 수 있어요. 시간과 장소 규제가 거의 없죠. 예컨대 한국 사람들은 한강 고수부지에서 남들 보는 데서도 술을 먹을 수 있지만 미국이라면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좋은 술을 싸게 많이 먹을 수 있는 게 경제 원론에서 말하는 소비자 효용을 키우는 것이라면 술은 그 반대로 가야죠.” 그는 이어 “주류 당국이 현재 전통술만 가능한 술 통신 판매를 풀 가능성이 커 우려스럽다”며 덧붙였다. “한살림 매장은 술 종류도 다양하지 않지만 가격도 비싼 편입니다. 이 때문에 조합원 접근성이 떨어지죠. 우리 사회도 이처럼 주류 접근성을 낮추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조 이사장의 또 다른 정체성은 전통 무예 수벽치기 전도사이다. 태권도 초단에 합기도 4단인 그는 1987년 수벽치기 전인 육태안 선생으로부터 직접 배웠다. “원주 지인들 요청으로 매주 15분과 3년째 수련하고 있어요. 수벽치기 30개 몸동작을 무보로 옮기는 작업도 수련생들과 함께하고 있죠.”

마지막으로 ‘왜 무술이냐’고 물었다. “무술 수련을 하는 것은 주어진 대로 편하게 살기 위해서죠. 강해지려고 수련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강해질 때 몸과 마음도 편하죠. 무술 수련은 잘 죽을 수 있는 연습이기도 합니다.”

원주/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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