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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사설] 경제 위기 이유로 첫 사면에서 재벌에 면죄부 준 윤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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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자에 포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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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2일 8·15 광복절을 앞두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을 특별사면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첫 사면권 행사다. 이번 사면으로 이 부회장은 경영 전면에 복귀할 수 있게 됐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다 지난해 8월 가석방됐지만 취업제한 조치에 묶여 있는 상태다. 국정농단에 연루돼 유죄가 선고된 신동빈 회장도 복권된다. 원정 도박 등의 혐의로 집행유예 중인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과 분식회계 등의 비리를 저지른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역시 특사 대상에 포함됐다.

윤 대통령은 “이번 사면은 무엇보다 민생과 경제회복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경제가 비상 상황임을 감안해 기업인들이 경제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은전을 베풀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를 이유로 횡령과 배임, 뇌물 공여 등의 중범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들의 사면·복권이 반복되는 것은 문제다. 2008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2009년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2008년 및 2015년 최태원 SK 회장, 2016년 이재현 CJ 회장 등이 사면을 받은 이유도 경제활성화였다. 재벌 총수들을 풀어준다고 경제가 살아난다는 근거는 없다. 오히려 총수들에 대한 단죄가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아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 부회장에 대해서는 사면 찬성 여론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법은 만인에 평등해야 한다. 중대 범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를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풀어주는 것은 법치주의에 어긋난다. 윤 대통령이 그동안 강조한 공정과 정의 원칙과도 배치된다. 특히 윤 대통령은 2016년 국정농단 특별검사팀 수사팀장으로 이 부회장과 신 회장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 장본인이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건과 별도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기소돼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 이날도 피고인 신분으로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했다. 이번 사면이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와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 정치인들을 특사에서 제외한 것은 잘한 일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진 탓이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에 대한 사면은 일반인들의 법 상식과 어긋난다. 특별사면은 국회 동의가 필요없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주권자인 시민이 대통령에게 위임한 권력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최대한 절제되고 엄격하게 행사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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