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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성추문에 추락한 전 伊총리 컴백…"내 당선, 모두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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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 4월 9일 로마에서 선거유세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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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논쟁적 정치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86) 전 총리가 총선 출마를 통한 정계 본격 복귀 의사를 밝혔다. 그는 3번에 걸쳐 9년간 총리를 지냈으나 인종 차별적 실언 및 성추문을 일으켜 불명예 퇴진했다. 영국 가디언의 10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이탈리아 국영방송 라이(Rai)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내달 25일 조기 총선에서 상원의원에 출마 의사를 밝혔다. 그가 내건 이유는 “(내가 의회에 복귀하면)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는 주장과, “전진이탈리아(FI) 당내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총선 출마) 압력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이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대표인 FI는 이탈리아 최초 여성 총리가 유력한 조르자 멜로니(45)가 이끄는 극우당 ‘이탈리아형제들’(FdI), 동맹(Lega)과 함께 우파연합의 일원이다. 현재 우파연합 지지율은 약 45%로 내달 총선에서 상ㆍ하원 과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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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0일 한자리에 모인 이탈리아 우파 3인방. 왼쪽부터 극우당 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형제들의 조르자 멜로니, 전진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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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루스코니는 지난 7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멜로니 대표에 대해 “결단력과 용기를 갖춘 지도자”라며 “우리는 멜로니를 지켜야 한다”고 킹메이커를 자처하기도 했다. 그는 다만 우파연합이 승리할 경우 차기 총리나 상원의장에 도전할 것이란 일각의 관측에 대해선 “난 이 나라(이탈리아)를 거의 10년간 이끄는 특권을 누렸다”며 “전 세계에서 총리를 3차례 지낸 사람은 내가 유일한데,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라고 선을 그었다.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 재벌로 정계에 진출한 뒤 지난 1994~2011년 3번에 걸쳐 9년간 총리를 지냈다. 그는 경제와 정치, 언론까지 한 손에 틀어쥐며 ‘베를루스코니 현상’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중산층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랐지만, 건설업에서 크게 성공해 재벌이 됐고 70년대 방송사를 차린 뒤 군소 민영방송사 지분을 꾸준히 사들여 90년 생방송 뉴스 프로그램까지 방영하게 되면서 정치적 영향력까지 확보했다.



재벌 출신 정치인…잇단 막말·기행



그가 직접 정계에 뛰어든 건 94년 총선 때 FI를 직접 창당하면서다. 성공한 기업가 이미지를 앞세워 자신이 소유한 언론사의 영향력을 활용한 덕분에 총선에서 승리, 우파 연립정부를 구성해 총리에 취임했다. 그러나 집권 후 동맹이 깨지면서 1년도 안 돼 총리에서 물러났고 96년 총선에서 참패했다. 이후 그가 장악한 언론 덕분에 2001년 총선에서 승리했고, 2006년 총선에서 석패했지만 2008년 총선에서 다시 승리를 거머쥐며 3선 총리에 올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기 집권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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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4일 이탈리아 시민이 실비아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재임 시절 집단 섹스 파티 추문을 비난하는 손팻말을 들고 그의 대선 출마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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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탈리아 경제 위기와 미성년자와의 성 추문 의혹까지 겹치면서 2011년 총리직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당시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그를 “이탈리아 경제를 말아먹은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2013년엔 상원에서 제명되고 탈세, 불법 도청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후 6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이후 2017년 지방선거에서 FI를 승리로 이끌면서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는 평을 들었고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유럽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본격 복귀했다.

사실 그가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을 거라고 전망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집권 기간 내내 기행과 막말로 끊임없이 구설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그를 두고 “젊고 잘생긴 데다 선탠까지 제대로 했다”고 말해 논란을 자초했고, 이듬해 방미해선 미셸 오바마 영부인을 두고 “미셸도 선탠했다”고 말해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성 추문도 끊이지 않았다. 10대 슈퍼모델들과 집단 섹스 파티를 벌이고 관계가 있던 모델 출신을 장관에 임명할 정도였다. 2014년 이혼 후 49살 연하에 이어 손녀뻘 여성과 잇따라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다만 이미 80대 중반에 접어든 그가 상원의원에 당선하더라도 예전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는 지난 1월 대통령 선거에 도전장을 냈지만, 의회 내 지지 부족으로 출마를 중도 포기했다. 당시 로마 시내에선 그의 대선 출마를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로이터는 그의 총선 출마에 대해 “그의 ‘젊어 보이는 사진’이 전국 기차역 대형 스크린을 도배하고 있다”며 “(유권자 지지보다는) 과거 선거에서 그의 승리를 도왔던 전면 광고 캠페인에 다시 한번 의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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