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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박상욱의 기후 1.5]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43%는 돼야" 기업의 외침도 이념으로 치부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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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43)

그래픽으로 보는 새정부 기후·에너지 정책 방향 (하)

국내 수출기업 52% "ESG 미흡으로 계약·수주 파기 가능성"

국내 기업 98% "현재 재생에너지 공급 부족…제도 개선해야"

국내 기업 평균 '2030년 필요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43%

국내 기업 평균 '재생에너지 100%' 목표 시점, 2045년

새정부 에너지 정책과 환경 정책 발표를 통해 살펴보는 향후 5년간 한국의 기후·에너지 정책 방향, 마지막 순서입니다. 지난주, 최근 3년간 에너지 공급 부문에 있어 글로벌 투자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이러한 돈의 흐름은 곧, 무엇이 '신산업'인지, 어디서 '수출시장'을 찾고, '성장동력'을 얻을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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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및 가스의 정제 등 '업스트림' 분야에 대한 투자는 2019년 대비 꽤나 꺾인 모습입니다만, 지난해 3510억달러가 투자됐습니다. 절대량으로 봤을 때엔 여전히 무시하지 못할 수준인 것이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비(非) 러시아발' 가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만큼, 당분간 투자 규모가 크게 줄어들긴 어려워 보입니다. 원전의 경우, '정중동(靜中動)'이라 볼 수 있을 만큼 소폭 늘어나는 데에 그쳤습니다. 증가폭도 폭이지만, 전체적인 투자 규모 자체도 다른 에너지 분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습니다. 이는 곧, 우리나라가 가져갈 수 있는 글로벌 투자금 자체가 다른 에너지 공급 분야 대비 매우 작다는 뜻입니다. 최근 3년간 탄탄한 성장세를 보인 분야, 파이도 크고, 성장세도 이어간 분야는 재생에너지였습니다. 그럼 우리나라가 '이념과 구호'가 아닌, '합리적 판단'으로 향해야 할 시장은 어디일까요.

'미래엔 원전 시장이 재생에너지를 넘어, 더 커질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기에, 향후 에너지 분야의 투자 규모를 예측한 결과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블룸버그NEF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3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 예측을 진행했습니다.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가 2030년까지 어느 분야에 얼마나 투자해야 하는지를 살펴본 겁니다.

먼저 '그린 시나리오'는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에너지전환을 달성하는 경우를 상정한 시나리오입니다. 2050년,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85%, 화석연료와 원자력은 각각 10%, 5%를 차지하는 경우죠. '그레이 시나리오'는 당장 화석연료 비중을 줄이는 데에 있어 충격을 최소화한 시나리오입니다. 2050년에도 화석연료의 비중은 53%에 달하고, 재생에너지가 42%, 원자력이 5%를 담당하는 케이스로, CCS(탄소 포집 및 저장)를 통해 화석연료를 사용해도 탄소 배출을 막을 수 있다는 가정에 따른 시나리오입니다. 끝으로 '레드 시나리오'는 전 세계가 원자력을 주력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는 시나리오입니다. 전력뿐 아니라 수소 생산에 있어서도 원전이 핵심인 케이스로, 2019년 현재 5%인 원자력의 비중을 2050년 66%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앞서 우리 정부는 '새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국제적으로 원전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다”고 했는데, 레드 시나리오를 제외하고는 '원전 역할 재조명'이라고 볼 만한 시나리오는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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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비용의 규모 면에서 비교해볼까요. 현재 에너지전환에 세계 각국은 755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린 시나리오와 그레이 시나리오대로 변화하려면 앞으로 3년간 1조 7천억달러를 투자해야 합니다. 반면 레드 시나리오의 경우, 3년간 2조 7천억달러 가량을 투자해야 합니다. 5%에 불과한 원전의 비중을 2050년까지 66%로 늘리려면 신규 원전의 대규모 건설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이후 2026~2030년, 그린 시나리오는 다른 시나리오보다 많은 4조 8천억달러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린수소의 상용화와 대중화를 위해 추가적인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레이 시나리오의 경우, 상대적으로 적은 3조 3천억달러 가량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레드 시나리오의 경우, 같은 기간 약 4조 5천억달러의 투자를 필요로 합니다.

2022~2030년까지 필요한 총 투자규모로 봤을 때, ① 그레이 시나리오 - ② 그린 시나리오 - ③ 레드 시나리오 순으로 저렴합니다. 레드 시나리오의 경우, 필요로 하는 투자 규모 자체가 다른 두 시나리오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큽니다. 다시 말해, 실현 가능성이 그만큼 낮다고 봐야겠죠. 투자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을, 이는 곧 에너지의 가격이 비싸진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그레이와 그린의 경우, 예상 외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두 시나리오 모두에 있어 투자규모가 가장 큰 분야는 공히 재생에너지와 수송부문 전동화라는 점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전에 없던 발전방식이니까요.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전환에 나서든, 기존 화석연료 중심으로 에너지전환에 나서든, 재생에너지에 대한 대대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풀어서 표현하면, '지금 수준에선 늘려도, 늘려도, 부족하다'는, 말 그대로 '신(新) 산업'이자 '미래 먹거리'라는 뜻입니다.

사실 '새로운 성장동력'은 국가나 정부만 찾는 것이 아닙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기업들은 그 누구보다 '제2의 엔진'을 찾으려 혈안이죠. IEA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각 부문별 감축 시나리오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럼, 산업부문의 여러 업종 중에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매우 높은 3가지 분야(석유화학, 철강, 시멘트)에 대해 IEA가 제시한 해법은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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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A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신기술을 크게 ① CCUS(탄소 포집, 사용 및 저장), ② 수소, ③ 기타 총 3가지로 구분했습니다. CCUS도, 수소도 현 시점에서 대규모 상용화는 쉽지 않은 만큼, 2030년까지도 주된 생산방식은 현존 기술을 그대로 활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2030년, 석유화학은 전체 생산의 12.6%를, 철강은 8%, 시멘트는 9.1%를 신기술을 도입해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 IEA의 진단입니다. 2050년엔 생산제품 거의 대부분이 신기술을 통해 만들어낸 것이어야 하고요. 지난해 6회에 걸쳐 이러한 내용이 담긴 IEA의 〈2050 넷제로 보고서〉를 상세히 풀어드렸을 때, 매번 강조했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IEA는 여타 글로벌 환경단체와 같은 '친환경적인 단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직 환경만을 생각해 기업이나 정부에 지나치게 가혹한 내용을 담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어찌 보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최소 요구 사항'에 가깝습니다.

위의 IEA 보고서 내용이 앞으로 2050년까지 남은 기간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과 같았다면, 과연 시장은, 기업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최근 국내외에선 기업의 상황을 알려줄 수 있는 '바로미터'와 같은 설문조사가 잇따랐습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베인앤드컴퍼니는 최근 〈글로벌 에너지 및 천연자원 리포트 2022〉를 펴냈습니다. 이 보고서엔 세계 각지의 글로벌 에너지 및 자원 기업 경영자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담겼습니다. 그 누구보다 최근의 시장 변화 흐름을 잘 파악하고, 몸소 체험하는 이들에게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에 관한 생각을 물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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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경영자들이 평균적으로 예상하는 탄소중립 달성 시점은 2057년이었습니다. 응답자의 42%는 2050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고, 25%는 2070년에도 탄소중립 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기업인들이 내놓은 답변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탄소중립은 달성해야 할 매우 중요한 목표이며, 그 이행 과정은 기업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우리 기업은 남들보다 더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기업 스스로의 온실가스 감축과 재생에너지의 확대는 목표 달성에 큰 영향을 미칠 중요한 요소로, 이를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 '제2의 엔진'을 찾을 것이다.

기업의 우려 못지않게 나름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던 설문조사 결과였습니다. 96%가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향한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답했고, 88%가 “Scope 1(직접배출)과 Scope 2(간접배출)를 줄이는 것이 기업의 최대 우선순위”라고 했습니다. 또, 61%나 되는 기업이 “우리 기업은 세계 평균보다 더 빠르게 탈탄소에 나설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2030년까지 14.5% 감축”이라는 목표에 산업계를 넘어 정계에서조차 반발이 나온 우리나라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내 산업계에서도 조금씩 변화의 모습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기업 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CoREi)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세계자연기금 한국본부가 지난 2020년 공동 발족해 만들어졌습니다. CoREi는 7월 20일, 〈재생에너지 조달 현황 및 제도에 대한 기업의 인식〉 설문조사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한국 기업과 한국에 사업장을 운영중인 글로벌 협력사 등 61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입니다. 설문조사 참여기업의 59%는 제조업이었고, 전체 75%가 대기업, 20%는 중견기업, 5%는 중소기업이었습니다. '시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겠다'는 새정부인 만큼, 반드시 주목해야 할 내용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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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기업들은 자의든 타의든 재생에너지를 구해야만 하는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응답 기업의 3분의 2 가량이 자체적인 '재생에너지 100%' 달성 시점을 정해둔 상태였습니다. ESG경영에 대응하기 위해서, 탄소국경세와 같은 글로벌 규제나 협력사 또는 고객사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재생에너지를 확보해야 했던 것이죠. 기업의 이 같은 수요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아직도 10%를 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응답 기업의 98%가 “현재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공급이 부족하다”고 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이들 기업이 '재생에너지 100%'를 목표로 하는 시점은 평균 2045년이었습니다.

기업들의 생각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겠습니다. 거의 모든 기업은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을 필요로 하고 있고, 그러한 변화가 기업의 장기 경쟁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지금의 재생에너지 조달 제도에 대해선 거의 모든 기업이 “개선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는데요, 무엇보다 정부의 재정적, 제도적 지원 확대(38%), 재생에너지 가격 현실화(24%),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21%)를 시급한 개선 지점으로 꼽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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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i는 전체 응답기업 중 39개 기업을 대상으로 추가 설문을 진행했는데요, 미래에도 재생에너지 공급이 부족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재생에너지의 대대적인 확대를 천명했던 이전 정부 시절에도 재생에너지의 확산세가 미미했었는데, 이후 “재생에너지 목표 비중 축소, 원전 목표 비중 확대”를 내세운 새정부가 등장하면서 기업의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해외에서처럼 재생에너지 조달이 용이하려면, 2030년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이 얼마나 되어야 할까 묻는 질문에 “40%는 돼야 한다”는 응답과 “50%는 돼야 한다”는 응답이 각각 33%로 가장 많았습니다. 39개 기업 평균으론 43%에 달합니다. 40%든, 43%든, 50%든 이를 충족시키려면 이전 정부에서 만든 2030 NDC(재생에너지 비중 30.2%)로도 한참 부족한 수준입니다. 여기에 새정부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며 하향을 시사한 바 있죠. 과연 기업들이 요구하는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43%'에도 '이념과 구호'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요.

CoREi의 설문조사 발표 이틀 전인 7월 18일, 대한상공회의소도 ESG와 관련한 수출기업의 의견을 공개했습니다. 국내 수출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수출기업의 공급망 ESG 실사 현황과 과제〉 조사에 나선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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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기업들은 이미 ESG 경영에 대한 상당한 압박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절반 넘는 기업이 “ESG 경영 수준 미흡으로 고객사나 원청기업으로부터 계약이나 수주가 파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한 것이죠. 이러한 위기의식과 달리, ESG 컨설팅이나 실사, 진단 및 평가에 나선 기업은 매우 적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ESG 경영과 관련한 글로벌 지표를 분석하는 한편, 그에 발맞춘 한국만의 스탠다드를마련해야 하는 것이죠. 이는 비단 기업만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국가 온실가스 배출을 관리하고, 국제사회에서 관련 어젠다의 리더십을 확보하는 측면에선 정부에도 큰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이미 '2018년 대비 44.4% 감축'이라는 대대적인 감축 목표가 부여된 전환(발전)부문에서 추가로 더 줄여내겠다는 것이 새정부의 방침입니다. “산업계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함”이라는 이유에서 말입니다. 산업부문의 감축목표를 낮추는 것만 산업계의 부담을 완화하는 일이 아닙니다. 당장 대대적인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도 기업의 입장에선 평소와 똑같은 경제활동을 하더라도 Scope 2배출을 줄일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고객사나 원청기업의 RE100 압박에 움츠러들 필요도 없고요.

3주에 걸쳐 관계부처의 발표를 토대로 새정부 기후·에너지 정책 방향을 살펴봤습니다. 굵직한 내용들로는 크게 5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①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인 40%는 그대로 유지한다. ② 전환(발전)부문을 비롯, 타 부문의 감축량을 늘려 산업부문의 감축 부담을 줄이겠다. ③ 발전부문에 있어 원자력발전의 비중은 30% 이상으로 높이고,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은 기존 목표인 30.2%에서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 ④ 화석연료의 수입 의존도를 81.8%에서 2030년 60%대로 낮추겠다. ⑤ 온실가스 배출권의 유상할당 비중을 2026년부터 확대하겠다.

산업계가 실제 감축 부담의 완화를 체감할 수 있을 만큼 다른 부문의 감축을 더 강화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원전의 발전비중을 지금보다 4%p., 기존 2030년 목표보다 6%p. 높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겁니다. 게다가 또 다른 탈탄소, 무탄소 전원인 신재생에너지의 2030년 목표를 하향하는 것은 산업계의 감축 부담을 줄이는 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수송부문의 배출량을 기존 목표보다 더 줄이려면, 이를 통해 산업계가 '덕분에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줄어들었다'고 체감하려면, 보다 공격적인 전기차 전환 정책이 뒤따라야 합니다. 즉, 전력 수요 역시 종전의 계산보다 더 빠르게 늘어난다는 뜻이죠. 발전부문에겐 온실가스는 더 줄이면서 발전량은 더 늘려야 하는 '이중고'가 되는 셈입니다.

설령, 각 부문이 어떻게든 산업부문의 감축 부담을 대신 짊어지는 데에 성공했다고 했을 때, 산업계는 미소지을 수 있을까요. 온실가스 감축의 부담을 줄인 대신, 당장 대(對) EU 무역 과정에서 그에 대한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에서 유상할당의 부담을 2026년으로 늦춘 대신, EU에 지불해야 할 그 비용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EU는 덕분에 역내 온실가스 감축에 투입할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테죠. 우리 스스로도 감축에 쓸 돈이 부족한 마당에 다른 나라의 주머니를 불려주는 셈입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 2일 자료를 통해 기존의 입장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지금의 정책 방향으로 2030년 화석연료 수입의존도 60%대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죠. 탄소중립 이행 차원에서도, 에너지안보 확립 차원에서도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또 “산업부문 감축률 14.5%는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쉽지 않으며, 산업계의 현실적 어려움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14.5%보다 감축 부담을 낮추면서도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따른 불필요한 국부 유출 역시 방지할 수 있는 해법을 기대해봅니다. “사용후 핵연료의 원전 내 저장 문제 역시 한시적일 뿐, 영구처분시설을 적기에 확보할 것”이라고도 밝혔습니다. 특별법에 이러한 '한시성'에 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아 시민사회의 우려를 말끔히 불식시키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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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도 이미 반 이상 지났습니다. 당장 새정부 5년, 기후·에너지 분야에 있어 너무도 중요한 '빅 이벤트'가 즐비합니다. 향후 에너지 정책의 향방을 결정짓는 주요 계획들이 수립되며, 두 차례의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리고, 유럽에선 CBAM이 시범기간을 마치고 전면 도입됩니다. 아직 그 일정이 확정되진 않았으나, 미국과 유럽 모두에서 기업들로 하여금 기후변화를 부추기는 경영활동에 대한 정보를 공시할 것을 의무화하는 조치도 내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내에 미국(혹은 유럽) 증시에 상장되지 않은 기업이 많은 만큼 별 영향 없을 것'이라고 안심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나라 기업은 해외 기업들의 '원청 기업'이기도 하지만, 이들에 부품을 공급하는 '파트너(혹은 하청) 기업'이기도 하니까요. 이는 모두 새정부 임기 내에 벌어질 일입니다. 정부가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더라도, 탄탄하고도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더라도 만족할 만큼의 성과가 나올지 걱정되는 상황인 것이죠. 설령 감시와 비판하는 쪽이 아니더라도,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졸이며 지켜볼 수 밖에 없을 정도로요.

이제 계획만으로 증명할 수 있는 시간은 지났습니다. 정책이 효과를 보이고, 온실가스 배출량, 글로벌 투자기관의 국내 기업에 대한 투자규모, 국내 기업이 해외에 지불하게 될 탄소세 성격의 비용, 한국 기업이 국내외에서 이용하는 에너지믹스의 차이 등등. 이 모든 것은 숫자로 확인될 겁니다. 부디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탄소중립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5년이 되기를 바라보며 새정부 기후·에너지 정책 방향 톺아보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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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박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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