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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어르신들 카톡 환불해보니… 챗봇과 씨름 40분 “상담하다 화병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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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어르신들 카톡서 환불해보니

대화 잠깐 끊겨도 ‘상담 자동종료’… “이해도 어렵고 혼자선 못하겠다”

카톡·유튜브·당근마켓 등 플랫폼 ‘사람 상담원’ 드물어

소비자 불편 “실질적 도움주는 고객센터 돼야”

“화면에 버튼을 누르면 뭐가 바로바로 나오긴 하는데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네….”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강동 50플러스센터. 서울시가 운영하는 중장년층의 인생 설계를 돕는 교육기관인 이곳에서 스마트 기기 활용 교육을 듣고 있는 안병옥(78)씨와 신기표(77)씨가 자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이날 본지 기자와 함께 카카오톡 앱에서 ‘카카오톡 고객센터’를 찾아 구매한 이모티콘을 환불하는 걸 함께 해봤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 작업을 시작한 후 5분이 넘도록 카카오톡 고객센터 버튼도 찾지 못했다.

조선일보

주요 앱의 50대 이상 이용자 수


국내 소비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온라인 플랫폼인 카카오톡, 유튜브, 당근마켓, 페이스북 등의 고객센터에서는 요즘 ‘사람’ 상담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기업들이 AI(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한 ‘챗봇’(대화형 AI)이나 이메일 상담 비중을 크게 늘리고 있어서다. 카카오톡은 2018년부터 챗봇을 통한 문의만 받고 있다. 유튜브, 페이스북, 당근마켓은 전화로는 상담을 받지 않고, 챗봇이나 이메일로만 상담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이날 만난 두 사람처럼 이 서비스를 쓰는 어르신들은 종종 벽에 부딪힌 느낌을 받는다. 실제 이날 두 어르신은 기자의 도움을 받아가며 환불 신청을 마치는 데까지 40분이 걸렸다. 20대 중반의 기자가 혼자 할 때는 10분 걸렸다.

카카오톡 고객센터 버튼을 찾는 데만 5분 이상을 헤맸다. 고객센터 버튼을 찾은 뒤 챗봇과 1대1 상담을 시작하면서도 진땀을 뺐다. 두 사람 모두 시력이 좋지 않아 스마트폰 자판으로 문의 내용을 입력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일정 시간 동안 입력이 없어 상담이 자동으로 종료된다’는 안내 문자가 나와서 다시 처음부터 했던 걸 반복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자판 입력이 불편해 음성 입력기로 챗봇 상담을 했는데, 음성 인식이 제대로 안 돼 같은 말을 여러 번 해야 했다. 신기표씨는 “앞으로도 혼자서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이에 대해 카카오톡 관계자는 “도용이나 사칭처럼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경우엔 전화 상담이 가능하다”고 했다.

고객센터에 접근 자체가 어려우니 피해 구제에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생긴다. 경기도에 사는 60대 남성 최모씨는 작년 3월 구글 계정이 도용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총 50만원이 결제됐다. 최씨는 결제를 한 적이 없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환불을 받으려고 했지만 고객센터 전화번호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최씨는 메일을 보내기로 하고, 컴퓨터를 다루기 어려워 아들에게 부탁해야 했다. 최씨는 “결제 도용처럼 급한 일인데도 당장 전화해서 문의할 곳이 없으니 불편했다”고 했다.

고령층뿐 아니라 젊은 층도 이런 형태의 상담을 불편해하는 경우도 많다. 부산에 사는 20대 대학생 김모씨는 최근 당근마켓에서 사기를 당했는데, 고객센터에 문의를 남겼더니 4일 뒤에야 ‘채팅방에서 확인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도와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씨는 “어떤 식으로 사기를 당한 건지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고 싶은데 고객센터 번호도 없고 답변도 느리니 너무 답답했다”며 “전화 상담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사람 상담원이 아예 없거나 연결이 어려울 경우, 고령층이 온라인 피해를 봤을 때 구제를 받기 어렵게 되고 이런 경험은 이들이 IT 기기 등을 다루거나 온라인 생활을 하는 걸 두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법무법인 혜의 황다연 변호사는 “현행법상 소비자의 의견이나 불만을 즉시 처리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많은 기업들이 고객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의무를 다했다는 식”이라며 “연세가 있는 분들도 실질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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