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두환 트렌드 매니징에디터] 2019년 미국 프로골프(PGA) 존 디어 클래식 우승자인 딜런 프리텔리는 지난 4월 RBC 헤리티지 경기 직후 SNS에 “인생 최고의 파(par)를 기록했음에도 2벌타를 받았다”며 “아마도 (진기명기) 톱10에 들만한 플레이일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사연은 이랬다. 대회 마지막날 그가 6번홀(파4)에서 친 티샷이 숲속으로 날아가 자신의 키보다 높은 나뭇가지에 걸려버렸다. 고민하던 그는 공 바로 뒤에 서서 퍼터로 망치질 하듯 쳐냈다. 위기를 기막히게 넘긴 그는 파 세이브에 성공했지만 결국 스코어카드에는 더블보기를 적어야 했다. ‘플레이 선을 가로지르거나 밟고 선 채 스트로크를 한 경우’ 룰 위반으로 2벌타를 부과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볼은 옆에서 쳐야지 뒤에서 치면 안된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 무대인 PGA에서 10년 넘게 활약하며 우승 경험까지 있는 선수조차 헷갈리는 것이 골프 규칙이다. 정형화된 규격의 경기장 안에서 이뤄지는 대부분 구기 종목과 달리 날씨와 지형에 따라 다양한 상황에 맞닥뜨리다 보니 관록 있는 선수들조차 규칙 위반인지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골프에는 심판이 없다. ‘골프는 대부분 심판원의 감독 없이 플레이된다.’ 는게 골프룰 북 제1장의 규정이다. 선수 스스로 심판이 된다는 의미다. 이같은 특성 때문인지 선수들의 부정행위에 대한 처벌이나 비난의 수위는 다른 어느 종목보다 강하다.
한국 골프계가 주목한 신인 선수가 규정 위반으로 자칫 선수 생명을 중단할 위기에 처했다. ‘오구(誤球) 플레이’의 늑장 신고 파문을 낳은 윤이나 선수다. 스스로 뒤늦게 사과하고 올해 남은 대회 참가 중단 의사를 밝혔지만 후폭풍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모습이다.
그의 행동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실수 자체가 아니라 이를 은폐했기 때문이다. 윤이나 선수가 위반한 규칙은 프로 선수는 물론 웬만한 초보 아마추어도 아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실수'가 아닌 명백한 '고의'다. 논란이 단순한 규칙 위반에 그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의적인 규칙 위반에 따르는 처벌은 가혹하다. 평생 그를 따라다닐 낙인, 바로 골프의 기본 정신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성장해야 할 선수의 미래를 위해 충분한 반성을 전제로 그를 용서하자는 동정론도 있다. 그가 아직 어리고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다. 그가 웬만한 남자 못지 않은 장타자라는 흥행 요소도 작용하는 듯하다. ‘성적 제일주의’의 희생양이라는 논리도 있다.
하지만 뛰어난 재능이 공정의 가치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모든 프로 스포츠 선수는 공정한 경쟁과 이에 따른 성적으로 보상 받는다.
골프계는 냉철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함께 책임질 잘못된 문화 탓”이라는 어설픈 논리로 관용의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제2, 제3의 윤이나 사태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어설픈 선처를 반대하는 이유다.
골프 역사상 유일하게 한해 4개의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 슬램’의 업적을 세운 전설의 골퍼 바비 존스가 '구성(球聖)'으로 추앙받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아무도 보지 못한 자신의 룰 위반을 스스로 신고함으로써 우승을 포기한 그의 스포츠 정신 때문이다. 바비 존스는 자신을 칭찬한 목소리들에 이렇게 답했다. “규칙대로 경기한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은행에서 강도짓을 하지 않았다고 칭찬하는 것과 같다.” 성공을 꿈꾸는 젊은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기 전 마음에 새겨야 할 이야기다.
정두환 트렌드 매니징에디터 dhjung6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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