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의견서 제출은 민사소송규칙(제134조의 2)에 근거한 절차다. 해당 법령은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공익과 관련된 사항에 관하여 대법원에 재판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외교부는 현금화 조치가 강제징용 피해자와 일본 기업 간 민사의 영역이지만, 한·일 외교 관계를 통해 발생하는 공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대법원 민사 2·3부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자산(상표권·특허권)을 강제로 매각해 현금화한 뒤 배상금으로 사용해 달라는 강제징용 피해자의 요청에 따라 관련 사건을 심리하고 있다. 이르면 오는 9월 현금화 여부에 대한 최종 결론이 날 예정인데, 대법원이 현금화 명령을 내릴 경우 한·일 관계가 불통 수준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1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현금화 결론이 나기 전 어떤 형태로든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외교부는 그간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 사법부와의 소통을 의도적으로 회피해 왔다. 심지어 강제징용 문제를 둘러싼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건수 등 현황 자료 요청마저 주저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외교부는 법원 요청에 따라 판결이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의견서를 냈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은 2018년 8월 외교부를 압수수색하는 등 강도 높은 ‘사법 거래’ 의혹 수사를 벌였다. 이로 인해 장·차관부터 국장, 심의관 등 당국자들이 줄줄이 검찰이나 법원에 불려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랬던 외교부가 윤석열 정부 들어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한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의견서 제출이 ‘긁어 부스럼’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강제징용 문제 해결에 대한 정부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현금화 조치가 아닌 외교적 해법이 필요하단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