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근무지 환경 더 나아도 의사에 반한 전보는 불리한 처우"
[연합뉴스TV 제공] |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직원에게 보복 조치를 한 사업주가 대법원에서 처음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병원 구내식당 등을 위탁 운영한 사업주 A씨는 2019년 7월 "상사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직원 B씨의 내용증명을 받았다.
B씨는 상사가 '신고식' 명목으로 회식비를 강요하고, 마음에 안 드는 직원은 수당을 적게 받도록 업무 편성 권한을 남용했으며, 심한 욕설과 폭언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B씨는 해당 상사가 해고를 빌미로 정당한 이유 없이 통화내역서를 제출하라거나 사직서를 쓰라고 해 신체적·정신적 고통도 받았다고 주장했다. 신고 닷새 뒤 B씨는 무단결근을 이유로 해고됐다.
A씨는 한 달 뒤 인사위원회를 열어 B씨를 복직시키면서 근무지를 바꿨다. 새 근무지는 B씨의 집에서 멀어 첫차를 타도 제시간에 출근할 수 없는 곳이었다. B씨는 가족 간병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출·퇴근 문제 때문에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다.
A씨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B씨에게 불리한 처우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9년 7월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이 적용된 사례다.
법정에서 A씨는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을 징계했고, B씨에게 근로기준법이 정한 적정한 조치를 다했다"고 항변했다. B씨의 새 근무지는 기숙사용 아파트가 제공되고 노동강도가 더 낮아 불리한 처우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은 새 근무지의 환경이 객관적으로 낫다고 해도 신고자인 B씨를 부당하게 사전 해고한 조치나 B씨의 의사에 반해 전보한 점 등을 종합하면 '불리한 처우'를 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유죄 판단을 내렸다.
A씨는 불복했지만 2심은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놨고, 대법원은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A씨의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와 공익인권변론센터는 "이 사건 사업장은 피해 근로자가 피해를 호소하기 전부터 이미 많은 근로자가 아무런 구제를 받지 못한 채 사업장을 떠났다"며 "안타깝게도 피해 근로자는 복직 이후에도 계속 해당 사업장에서 일하지 못하고 결국 일을 그만뒀다"고 전했다.
단체들은 "사법 절차를 통해 사업주의 책임이 확인됐음에도 피해자가 안전한 일터로 돌아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까지는 계속되는 사업주의 시정 노력과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이 판결이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고 사업주의 예방과 조치 의무 인식을 확립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xi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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