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7 (수)

이슈 통화·외환시장 이모저모

[단독] "하나은행 2년간 3200억 불법 외환거래"... 금융당국서 중징계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국내 굴지 은행에서 기본적 주의의무 외면"
일부 자금 가상자산 연루된 의혹도 파악
KB국민·신한·우리은행서도 비정상 외환거래
가상자산 매입 등 자금세탁 가능성 배제 못 해
정부 "외환거래법 개정, 가상자산 규제 검토"
한국일보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외환거래를 취급하는 여러 지점에서 외국환거래법과 관련 규정을 위반한 하나은행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지점에서 이뤄진 불법 외환거래 규모가 3,000억 원을 넘고, 특히 가상자산과 관련한 거래 의혹도 포함돼 있다. 최근 주요 시중은행에서 비정상적 규모의 외환거래가 속속 파악되고 있는데, 은행 외환거래를 통해 가상자산을 매입하거나 매도 차익을 해외로 빼돌려 자금을 세탁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2년간 3,200억 불법 거래"...금융당국, 하나銀에 중징계


1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한 하나은행에 과징금 5,000만 원을 부과하고, 서울 북부 A지점에 대해서는 외국환 지급ㆍ수령 신규업무를 4개월간 정지하는 중징계를 의결했다. 국내 시중은행이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업무정지 징계를 받은 첫 사례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5월 하나은행을 대상으로 외국환거래 관련 부문검사 과정에서 해당 위법 사실을 파악하고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하나은행의 불법 외환거래는 장기간 이뤄졌다. 불법 거래는 A지점을 포함한 7개 지점에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2년에 걸쳐 지속됐다. 규모도 무려 2억5,000만 달러(약 3,200억 원)에 달한다. 불법에 동원된 7개 지점은 하나은행이 일부 지역의 원활한 협업을 위해 구성한 소영업(콜라보)그룹으로, A지점이 이 그룹의 대표지점이다.

이들 7개 지점에서 이뤄진 불법 외환거래는 A지점 초우량(VVIP) 고객인 B사(법인)의 수출입거래와 관련됐다. 지점들은 B사가 제출한 증빙서류에 기재된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해외에 송금했다. 또 해외로 송금한 금액이 없었음에도 계약이 취소됐다는 B사의 설명에 해외로부터 고액을 받아줬다. 수출입거래 상대방이 아닌 제3자에게 돈을 송금하기도 했다. 하나은행 제재 관련한 금융위 회의록에는 “장기간에 걸쳐 굉장히 큰 금액인 2억5,000만 달러 이상의 불법거래가 지속됐다는 점, 그리고 국내 굴지의 은행에서 가장 기본적인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서 오랜 기간 이런 불법 외환거래가 지속되도록 조장했다”고 적시했다.

또 하나은행은 자금세탁방지 관련 법규 역시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법률상 금융회사는 거래 상대방이 자금세탁행위를 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 이를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당국은 하나은행이 이러한 의심거래보고제도(STR)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FIU는 STR 위반에 대한 별도 제재를 할 수 있는데, 현재 금감원에서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은행 외환거래, 가상자산 자금세탁 ‘사각지대’?


문제는 이번에 드러난 불법 외환거래 중 일부는 가상자산 구입을 위한 해외송금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가상자산 구입을 통한 자금세탁 혹은 자금은닉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만약 이런 의도라면 시중은행을 통한 외환거래가 자금세탁과 은닉의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작 가상자산 매입ㆍ매도를 위한 외환거래를 규제하는 법적 근거는 전무하다. 외국환거래법 및 관련 규정 위반으로 하나은행이 중징계 처벌을 받았지만 가상자산 구입 창구로 동원된 것으로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법적 한계로 검사 과정에서 가상자산 연루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금융당국이 금융기관에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외국환거래법 절차 위반 여부 정도”라고 설명했다. 시중은행의 가상자산 관련 불법 외환거래를 예방하기 위한 당국의 조치 역시 법적 규정이 아닌 창구지도 수준에 그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이 미비한 상황에서 은행 외환거래 창구가 가상자산 외환거래에 동원된 사례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지난해 KB국민은행은 수입업체의 물품대금 지급 명목으로 604만 달러(약 79억 원)를 송금했지만, 해당 거래는 가상자산의 국내외 가격차를 이용한 차익거래로 밝혀졌다. 최근 1조3,000억 원과 8,000억 원이라는 상식적이지 않은 규모의 외환거래가 각각 확인된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역시 가상자산과의 연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를 인식한 정부도 법 개정에 나설 방침이다. 기존 외국환거래법을 폐기하고 23년 만에 새로운 외환거래법 도입 작업에 착수했다. 정부 관계자는 "개편 작업에 가상자산 등 신종거래수단 대한 내용들도 검토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하나은행은 외국환거래법 위반 처분에 대해 "직원들의 업무 미숙이 있었던 점을 인정한다"며 "동일한 사안이 재발하지 않도록 전 영업점 대상 주의 안내 등 조치를 취했다"고 해명했다. 다만 가상자산 연루 여부에 대해선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