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유엔사와 협의 후 "북송 지원 불가"
2019년 11월 탈북 어민 북송 당시 경찰 특공대는 어떤 임무를 하는지에 대한 지시조차 받지 못한 채 판문점에 투입돼 어민들의 강제추방 임무를 수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례없는 민간인 송환에 대해 군이 지원을 거부하자, 전후 사정을 모르는 경찰을 동원해 북송을 강행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019년 11월 7일 오후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북한군에게 인계되지 않기 위해 탈북 어민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모습. 군사분계선 연석 위에 한 발을 디딘 채 몸을 뒤로 빼고 있다. 통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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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가서야 임무 받아"
13일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 TF(태스크포스)' 소속 태영호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확보한 구두 답변에 따르면 경찰청 관계자는 "(2019년 11월 7일) 경찰 특공대는 처음부터 (대원들이) 뭘 해야 한다는 것(지시) 없이 '7일에 호송 차량 두 대와 대원 여덟 명이 필요하다'는 얘기 정도만 듣고 판문점에 갔다"며 "사복 차림으로 장비도 없이 (판문점에) 도착해서야 (추방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 임무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사복 차림에 대해선 "관계 기관의 요청에 의해서"라면서도 해당 '관계 기관'이 어디를 뜻하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전날 통일부가 공개한 북송 당시 사진 10장에는 사복 차림의 경찰 특공대원 8명이 북송에 저항하는 어민의 양 팔을 붙들고 군사분계선으로 끌고가는 장면이 담겨 있다. 어민은 포승줄에 양손이 묶이고 안대를 쓴 모습이었는데, 경찰은 "포승 등과 관련한 관련 지시를 받은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판문점에 오기 전부터 이미 포박 조치가 취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당시 송환에 투입됐던 특공대원 8명은 경찰청 경비국 대테러과 소속이다. 대테러 업무 인력이 북한 주민 송환에 동원된 것자체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통상 판문점을 통한 민간인 송환에는 대한적십자사 관계자가 동행한다.
경찰청은 '왜 적십자사가 아닌 경찰특공대가 호송한 것인지'를 묻는 태 의원의 서면 질의에 "경찰은 호송 관련 결정 과정에 참여한 바 없다"며 "관계 기관으로부터 (임무 관련자들의)'자해 우려가 있다'는 말만 전달받았다"고 답했다. "어민의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다"고 발표했던 관계 당국이 정작 강제추방 과정에서는 자해 등 물리적 저항을 예상하고 병력 투입을 결정한 것 자체가 모순이란 지적이 나온다.
2019년 11월 7일 오전 국회에 출석한 김유근 당시 청와대 안보실 1차장이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으로부터 직보 받은 문자 메시지. 해당 스마트폰 화면이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정부 내에서 비공개로 진행되던 강제 북송 사건이 알려지게 됐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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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유엔사 협의 후 "지원 못해"
한편 태 의원실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서면 답변에 따르면, 국방부는 송환 당일 오전 9시쯤 청와대 국가안보실로부터 군의 송환 지원을 요청받았다. 이후 유엔사와의 협조 결과에 따라 오전 11시 30분쯤 "군 차원에서 민간인 송환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안보실에 전했다. 이는 유엔사의 주축인 미군 측이 "민간인 북송 절차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피력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와 관련, 태 의원은 "군으로부터 송환 지원을 퇴짜 맞자 경찰에게 '자해 우려가 있다'고만 알려 지원을 요청했고, 장비나 복장도 갖추지 않도록 해 어떤 작전인지 짐작할 수도 없게 했다"며 "심각한 절차적 하자가 있는 반인권적, 반헌법적 행위를 강행하다 보니 사실상 아무 것도 모르는 경찰을 데려다 그들의 손으로 북송을 강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북한 주민 송환 과정에서는 북한군 인계 직전 당사자에게 "당신의 의지로 북한에 가는 것이 맞느냐"고 마지막으로 직접 묻는 절차가 필요하지만, 이러한 절차마저 생략됐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 소식통은 "군사분계선 바로 앞에서 본인의 귀향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북한에 돌려보내는 게 관례"라며 "그러나 이번 송환 당시 군사분계선 바로 앞에서 어민들은 안대를 벗기자 고성을 지르고 몸부림치며 거세게 반항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탈북한 북한 어민들, 어떻게 북으로 강제 송환됐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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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내 이견 상당했지만…
이와 관련, 강제 북송 당시 유관 부처가 관련 정보를 제대로 공유 받지 못하고 논의에서 배제되거나, 절차상 문제를 지적해도 사실상 묵살됐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송환 당일 오전 국회에 출석한 김유근 당시 청와대 안보실 1차장이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으로부터 직보 받은 문자 메시지에는 "참고로 이번 송환 관련해 국정원과 통일부간 입장정리가 안 돼 오전 중 추가 협의 예정"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탈북민 관련 주무 부처임에도 합동조사에서 배제된 뒤 국가안보실의 지시에 따라 대북 통지문 발송만을 떠맡았던 통일부가 당시 북송 결정 등을 주도했던 국정원과 송환 직전까지 '교통정리'를 끝내지 못했다는 의미다.
정치권에선 "국정원과 통일부는 ▶당시 북송 결정 자체 ▶북송 절차와 방식 ▶북송 후 사건 공개 여부 등을 놓고 끝까지 이견을 보였고, 결국 국정원이 주도한 청와대 안보실이 통일부를 배제한 채 강제추방 등을 무리하게 추진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은 어민들을 강제추방한 직후인 그해 11월 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통일부와 국정원 간 입장 차이는 없었다"면서도 "최초의 북한 주민 추방 사례임을 감안하여 인계방식과 관련한 실무 차원의 세부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추방한 분들이 묵었던 장소에서 판문점으로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이동과정에서 여러 부분에 대해 부처 간 약간의 논의를 했다"며 이견 절충을 거쳤음을 시인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외교부 장관이던 지난해 4월 관훈토론회에서 무리한 강제추방을 결정한 배경과 관련 "NSC 상임위원 간 충분한 공감이 있었다"면서도 "안보실장 책임 하에 결정됐다고 볼 수 있다"며 일각에서 제기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 책임론'에 강하게 선을 그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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