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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통화·외환시장 이모저모

'가학적 통화주의', 경제 살릴 극약 처방이냐 비극의 주문이냐 [뉴스원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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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듯한 인플레이션의 강력한 귀환에 세계 경제가 긴축의 시대에 돌입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 3월 이후 3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5%포인트 인상하며 긴축의 가속페달을 제대로 밟고 있다. 이번 달에도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한국은행도 오는 13일 사상 첫 0.5%포인트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이번 달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현실화하면 11년만의 금리 인상이다. 치솟는 물가에 각국 중앙은행이 경쟁적으로 유동성 흡수에 나서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의 공격적 긴축에 커지는 건 세계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이다. 중앙은행의 돈줄 죄기가 경기 둔화를 부르는 주문이 될 것이란 우려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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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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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상은 고통스러운 정책이다. 대상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정책인 탓에 저항과 마찰도 심하다. 유동성이 마르며 증시 등 자산 시장은 몸살을 앓는다. 섣불리 칼을 빼 들면 충격도 크다. 경기 둔화와 침체의 부메랑이 날아들 수 있다.

이런 우려와 불만 속 중앙은행의 ‘인플레 파이터’ 본능을 잠재우려는 목소리는 이어진다. 두더지 게임처럼 월가는 호시탐탐 ‘페드 풋(Fed put)’에 대한 미련과 기대를 드러낸다. 페드 풋은 Fed가 금리 인하나 양적 완화 등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금리 인상을 미루고 시장 친화적 발표를 통해 증시 등 시장이 위태로울 때 가격 하락을 막아주는 것을 의미한다.

Fed는 이미 페드 풋에 대한 기대에는 쐐기를 박았다. 지난 6일 공개된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따르면 “높아진 물가 상승 압력이 지속하면 더 긴축적인 통화정책 기조가 적절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Fed도 인플레이션과의 박 터지는 전쟁이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한다. 제롬 파월 Fed의장의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의사록에 따르면 “통화 정책 강화가 당분간 경제 성장 속도를 늦출 수 있지만, 물가상승률을 2%로 낮추는 것이 최대 고용 달성에 매우 중요하다”는 게 Fed의 입장이다. 어쨌든 ‘닥치고 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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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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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Fed의 노선이 탐탁지 않은 이는 또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크루그먼은 지난달 뉴욕타임스(NYT)의 칼럼에서 ‘가학적 통화주의’ 주의보를 내렸다. 지나친 금리 인상이 야기할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가학적 통화주의(sado-monetarism)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에 사로잡혀 다른 경제 현실을 외면하고 긴축적 통화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윌리엄 키건 전 옵저버경제 에디터가 1980년대 마거릿 대처의 긴축 정책을 비판하면서 사용했다.

먼지 쌓인 이 용어를 세상으로 끌어낸 사람이 크루그먼이다. 세계금융위기 당시 기준금리를 제로 금리 수준까지 내렸던 스웨덴 중앙은행(릭스방크)가 2010년 고실업ㆍ저물가 통화 긴축에 나섰다가 경제성장률이 급락하자 가학적 통화주의라고 비난한 것이다.

크루그먼은 현재의 물가 상황은 문제이고, Fed가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다만 지금처럼 강공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크루그먼의 문제의식은 우선 금리 인상의 효과에 대한 의문에 있다. 통화 정책으로 현재의 인플레이션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크루그먼만의 주장은 아니다.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국제 유가와 식량 가격 급등과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병목현상에 따른 공급 측면의 물가 상승 성격이 강하다. 돈줄을 죄는 것으로 풀 수 없단 이야기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가 마구 푼 유동성이 물가를 자극한 부분은 인정하지만 이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했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이런 주장을 펼치기 위해 크루그먼은 “한 달의 숫자를 너무 중시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장기 전망이 안정적인데도, 매달의 숫자에 연연해 과도한 정책을 펼치는 우(愚)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인플레는 문제고, Fed는 긴축을 해야 하지만, Fed가 필요 이상으로 경제가 더 깊은 슬럼프에 빠져야 한다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이는 비극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연례보고서에서 “각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하지 않으면 세계가 1970년대식의 인플레이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며 “경제 성장을 상당히 훼손하더라도 정책 금리를 대폭 인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학적 통화주의가 크루그먼이 예상하는 비극이 될지, 경기 둔화 혹은 침체를 수반한 극약 처방일지는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건 그 과정이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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