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추가 인하 조치에도 효과는 '찔끔'
정치권 "혼자 배불러선 안 돼...고통 분담해야"
서울 시내 주유소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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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 풀린 기름값이 좀처럼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고유가로 서민 가계 부담이 가중되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정유업계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가 상승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국내 석유회사들의 초과 이익에 세금을 물려 환수하자는 얘기다. 이른바 '횡재세'다.
정유사들은 횡재세 도입 움직임에 난색을 보인다. 유가가 오르내리는 경기 순환 사이클을 고려하지 않았고, 조세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친기업 행보'에 어긋난 행보라는 지적과 함께 법인세에 횡재세까지 물리면 이중과세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정치권 "고유가 고통 분담" vs 정유사 "회계상 이익일 뿐"
정부의 유류세 추가 인하 조치에도 기름값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유류세 인하 폭을 법정 한도인 37%까지 확대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효과는 지지부진하다. 8일 기준 휘발유 가격은 ℓ당 38.87원, 경유 가격은 24.31원 내리는 데 그쳤다. 당초 정부가 예상했던 인하 효과인 ℓ당 휘발유 57원, 경유 38원 하락에 미치지 못한다.
서민들의 고유가 고통이 장기화하면서 정치권에서는 정유사들의 초과이익을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세계적인 에너지 대란 가운데 정유사들이 비정상적인 이익을 낸 만큼 소비자 부담 완화를 위해 초과이익의 일부를 환원하라는 얘기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고유가 상황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정유업계는 역대 최대실적을 달성했다. 1분기 영업이익은 거의 3배 가까이 늘었고 최대 규모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며 "정유업계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 역시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정유 4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을 합하면 무려 4조7668억원에 달한다"며 "서민들은 ℓ당 2000원 기름값을 감당하지 못해 고통받는 사이에 대기업 정유사는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유사의 초과이익을 최소화하거나 기금 출연 등을 통해 환수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정유사의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역시 "정유사들도 고유가 상황에서 혼자만 배 불리려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정유사는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는 올해 1분기 역대 최대 규모의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을 보면 SK이노베이션 1조6491억원, 에쓰오일 1조3320억원, GS칼텍스 1조812억원, 현대오일뱅크 7045억원이다.
국제유가가 갑자기 뛰면서 미리 사둔 원유 가치가 높아졌고, 이에 따라 재고 관련 이익이 늘었다. 또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정제마진이 초강세를 보여서다.
반면 정유사들은 발끈한다. 최근 영업이익이 늘어난 건 맞지만 규모가 다소 과장됐다는 주장이다. 국내 정유 4사가 올해 1분기에 거둬들인 영업이익은 약 4조8000억원인데, 이 중 40% 정도는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 관련 이익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유가가 하락하면 재고 손실로 다시 반납해야 해 회계상의 이익일 뿐이라는 얘기다. 다시 말해 유가가 오르내리는 경기 순환 사이클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법인세 인하하겠다면서 횡재세라니..."앞뒤 안 맞는 말"
일부 전문가들은 일시적 고수익에 매기는 건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초호황'을 누리는 지금과 달리 2020년에는 코로나 사태로 세계적인 석유 수요 급감으로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 당시에는 손실 보전 등 정부 지원도 없었는데 지금 와서 세금을 더 걷겠다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결손이 날 때는 가만히 있고, 이익이 났다고 세금을 더 걷어가면 정유사는 어떻게 하냐"며 "기업은 흑자가 날 때도 있고 적자가 날 때도 있다. 계속 기업의 원칙에 비춰볼 때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미 기업이 법인세를 내고 있는데 횡재세를 더 걷는 건 이중과세 문제에 부딪힐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심지어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법인세 최고세율(25%) 인하 등 대규모 감세를 계획하고 있는데, 여권에서 횡재세를 논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 안 교수는 "법인세를 인하한다면서 다른 세금(횡재세)을 물리겠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또 횡재세가 도입되면, 정유사들이 수익성 악화에 따라 투자와 생산을 줄여 되레 에너지 가격이 오르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고유가 상황에서 서민들의 가중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세금을 걷었다가 되레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영국, 초과이윤세 부과...미국은 연방세 법안 추진 중
유럽을 중심으로는 이미 횡재세를 도입했거나 관련 논의 중이다.
영국은 에너지 요금이 급등하자 지난달 석유와 가스업체에 25%의 초과 이윤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150억 파운드(약 24조원)의 재원을 마련해 가계에 지원하기로 했다. 다만 초과이윤세는 일시적으로 적용되며, 석유와 가스 요금이 정상으로 돌아가면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이윤율이 10%를 넘어서는 석유기업에 추가로 21%의 연방세를 물리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대국민 연설에서 "(미국 정유사) 엑슨모빌이 지난해 하느님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들였다"며 석유회사들이 누리는 고수익을 비판하기도 했다.
스페인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발전소로부터 초과이윤세를 받기도 했다.
아주경제=조아라 기자 abc@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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