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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비정상 ‘검찰공화국’ 시대, 시민운동 역할 더 커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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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충북시민재단 오원근 이사장

한겨레

지난달 충북시민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오원근 변호사. 오윤주 기자


“개혁 대상으로 비판받던 검찰이 어떻게 하다 권력을 잡고, 자기들 하고 싶은대로 다하는 이런 세상은 비정상적이지요. 깨어있는 시민들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릴 수 있게 힘을 보탤 생각입니다.”

지난달 말 충북지역 시민단체 (사)충북시민재단 이사장을 맡은 오원근(55) 변호사의 말이다. 지난달 30일 충북 청주시 두꺼비로에 자리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문을 여는 순간 벽에 걸린 ‘무유정법’이란 글이 눈에 들어왔다. 알고 지내던 구두닦이 서예가한테 얻은 글이란다. “<금강경> 말씀인데 ‘정해져 있는 법은 없다’ 정도로 풀 수 있어요. 사람의 마음·인생이 변화하듯, 제가 다루는 법도 상대성 원리처럼 유연하죠. 생활인으로, 법조인으로 늘 새기는 글입니다.”

그는 변호사 활동 틈틈이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청주노동인권센터, 충북시민재단 운영위원 등의 단체에서 시민운동을 해왔다. 하지만 시민단체 대표자가 된 것은 조금 느닷없다. “이사장 제안을 당연히 고사했죠. 많이 부담스럽고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맡기로 했어요. 게다가 ‘검찰공화국’이 된 지금 어느 때보다 시민단체 활동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그는 변호사가 되기 전 10년 5개월 동안 검사였다. 사시(38회) 합격 뒤 서울·대전·전주·인천지검 등에서 검사로 일하다 2009년 옷을 벗었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그는 사직 뒤 낸 책 <검사 그만뒀습니다>(문학동네)에서 ‘바보 노무현, 검사직을 버리게 하다’라고 썼다. “노 대통령이 대검 중수부로 소환되던 날(2009년 4월30일), 바로 옆 서울중앙지검 외사부 검사였다. 다른 직원들은 창문 쪽으로 가 소환 모습을 봤지만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로부터 23일 뒤 노 대통령이 숨졌다. 독재한 것도, 축재한 것도 아닌 사람을 이렇게 보내는 게 너무 분했다. 검사라는 게 부끄러웠고, 더 비겁해지지 않으려고 검사 그만뒀다.”

2011년 설립 청주 소재 시민단체

지역 시민단체 지원이 중심 활동

매년 100만원 이상 기부 50명

“언론·사법 개혁 시민운동도 고려”


검사로 10년 일하다 2009년 사표

“노 전 대통령 검찰수사 부끄러워”


여느 검사들은 사직서 잉크가 채 마르기 전에 변호사 개업해 ‘전관예우’를 누리지만, 그는 전북 부안 변산공동체에서 농사를 짓고, 경북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100일 단기 출가를 한 뒤에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많이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검사 생활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좋은 검사 많이 봤고, 개인적으로 뜻있는 일도 했고, 좋은 경험도 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검찰이 너무 많은 권한을 지니고, 권력 지향적인 것은 문제다. 어느 자리에서든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변호사가 된 그는 수업시간에 북침설 교육을 했다는 누명을 쓴 강성호 교사 변호인으로 강 교사에게 씌워졌던 ‘빨갱이’ 멍에를 32년 만에 벗기기도 했다. “자연스러움이 정의라는 마음으로 변론하고, 생활하려고 한다. 진보·보수로 나누기보다 정의 쪽에 서고 싶다. 언제나 순리와 합리를 따르는 게 답이다.”

그가 이끄는 충북시민재단은 2011년 청주에서 창립된 시민단체다. 자체 시민활동도 하지만 지역 안 시민단체와 시민단체 활동가 등을 돕는 시민단체의 시민단체다. 해마다 100만원 이상 기부하는 ‘1004클럽’ 회원 40~50여명, 정기 후원회원 570여 명한테 모금해 시민단체를 지원한다. 회원 늘리기가 그의 가장 큰 숙제다.

그는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했다. “한때 청주와 충북은 시민운동이 굉장히 활발했던 곳이지만 지금 많이 위축돼 있다. 조금 가벼운 마음과 방법으로 시민단체와 활동가 등의 서포터스가 되려고 한다.” 언론과 사법 개혁 관련 시민운동 지원도 마음에 두고 있다. “대선과 지방선거 결과를 보고 우리 사회 언론 지형이 참으로 왜곡돼 있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할 수 있다면 사법과 언론 개혁을 위한 시민운동도 해보고 싶다.”

그는 검사·변호사 시절을 포함해 지난 20여 년 동안 생태농법으로 주말농사도 짓고 있다. 지금은 보은의 490㎡(150평) 땅에서 고추·마늘·고구마·감자 등을 기르고 있다. “법조인으로 살지만 늘 농부를 꿈꿨다. 지금은 주말 농부지만 앞으로 진정한 농부가 되고 싶다. 변호사 그만두면 천연 비료도 만들어 제대로 농사 지으며 살고 싶다. 자연과 함께하는 게 가장 좋은 공부이고 행복이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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