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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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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부터 민주화까지…교회는 질곡·환희 역사 함께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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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한국에는 6만5000개가 넘는 교회가 있다. 이 중 100년이 넘은 교회도 1000곳이 넘는다. 이쯤 되면 교회는 한국 근현대사의 현장이다.

이근복 목사(69·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는 한국의 아름다운 교회 72곳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최근 그 결과물인 '그림 : 교회, 우리가 사랑한'(태학사)이 출간됐다. "기독교를 구성하는 신학과 신앙이 밖으로 표출된 것이 바로 교회 건물입니다. 교회 그림을 그리면서 한국교회의 가치와 뿌리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민주화를 쟁취하기까지 교회는 질곡과 환희의 시간을 함께한 공간입니다."

이 목사의 책에는 남대문교회, 새문안교회 등 한국 기독교사를 상징하는 대형 교회들을 비롯해 성공회 강화성당, 강경성결교회 등 한옥교회, 신민회의 중심이었던 샘골교회,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된 서울 종로 승동교회까지 전국의 아름다운 교회들이 글과 그림으로 등장한다. 이 목사는 붓펜과 가는 펜으로 먼저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수채물감을 엷게 칠하는 기법을 쓴다. 본인 스스로 이것을 '붓펜담채화'라고 부른다. "시간이 날 때마다 취미로 꽃과 산을 그렸는데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던 2017년 오래된 교회당을 그려보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것이 계기가 돼 인터넷에 연재를 시작하게 됐어요."

이 목사는 그림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중·고등학교 때 미술반을 할 만큼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중·고등학교 때 그림을 잘 그렸습니다. 중학교 때는 제 작품이 학교 복도에 걸리기도 했고, 고등학교 때는 성탄카드를 만들어 팔아 그 돈을 불우이웃 돕기에 쓰기도 했어요. 선생님들에게 미대 진학을 권유받기도 했지요. 하지만 성균관대 행정학과에 진학하고 졸업 후 장로회 신학대학원을 다니면서 그림 공부할 기회를 놓쳤어요."

이 목사의 그림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5월 1일부터 서울 마포 솔틴비전센터에서 열린 전시는 기독교계 인사는 물론 미술 전문가들로부터도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림에 손을 놓고 있다가 40대 중반 무렵 우연히 길을 가다 공공도서관에서 서양화반원을 모집한다는 현수막을 봤어요. 그때 다시 붓을 잡아서 지금까지 놓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를 답사하고 작업에 매달리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크리스찬 아카데미 원장,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등 그가 맡아온 보직들이 목회자와 평신도를 교육하는 일이어서 무척 바빴다. "평일에는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출근해 작업을 했고, 토요일은 온종일, 일요일은 예배 후 모든 시간을 그림에 매달렸어요. 그 과정을 통해 교회 벽돌 한 장 한 장에 밴 교우들의 땀과 기도와 눈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목사는 "돌아다녀보니 역시 한옥 교회가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매일경제

서울 중구 남대문교회.


"충남 논산 강경성결교회, 성공회 강화성당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석조 건물로는 남대문교회, 현대식 건물로는 연세대 루스채플이 멋져요."

대학 시절 영등포 공장에서 노동자로 야학을 했고,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다음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일을 시작한 이 목사는 사회참여적인 길을 걸어온 목회자다. "저는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구절을 좋아해요. 그리스도인은 명예나 돈 권력 그리고 죽음도 뛰어넘은 자유로운 존재가 돼야 합니다."

이왕 시작했으니 그림을 통한 선교도 계속한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12세기 말 피에르 발도부터 18세기 존 웨슬리까지 8명의 교회개혁가들의 삶을 조명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이스라엘, 튀르키예(터키), 그리스 등을 순례하면서 사도 바울의 행적을 글과 그림으로 재현하고 싶습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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