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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단독]"사진 한 장 위해 안전장비 없이 아빠를 캄캄한 사지로 내려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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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우드CC 지하 맨홀서 쓰러진 50대 근로자 8일째 의식불명

경찰·고용부·산업안전공단 “안전조치 미흡, 산소농도 위험수치”

뉴스1

지난달 26일 경기 양주시 만송동 레이크우드CC 내부 맨홀 안에서 근로자 김모씨(53)가 의식을 잃기 직전 촬영한 사진 2장이 그의 휴대전화에 담겨 있었다. 왼쪽 흐린 사진은 오전 8시31분께 맨홀 위에서 확대해 찍은 지하수 사용량. 오른쪽은 선명한 지하수 사용량이 찍혀 있다. 선명한 사진을 맨홀 내부에서 찍은 직후 김씨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두 사진의 촬영시간 간격은 50분으로, 충분히 안전장비 등을 착용하거나 산소수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김씨 가족 제공) © 뉴스1 이상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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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뉴스1) 이상휼 기자,양희문 기자 = “고작 사진 한 장 찍자고 다른 직원들은 한 번도 내려간 적이 없다는 맨홀 내부로 아빠는 송기마스크도 없이 내려갔다. 그 차갑고 어둡고 산소도 없는 곳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쓰러진 아빠는 119구급대원들이 올 때까지 장시간 심정지 상태로 방치됐다.”

레이크우드 컨트리클럽(CC) 내부 맨홀 안으로 들어가 작업하던 중 질식해 쓰러진 근로자 김모씨(53)는 사고 발생 여드레째인 4일 현재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고 있다.

김씨의 딸들과 가족은 이번 사고에 대해 ‘골프장 측과 시설관리업체의 안전관리소홀과 무리한 업무강행으로 부친이 변을 당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6일 오전 김씨는 경기 양주시 만송동 레이크우드CC 측의 지시로 골프장 코스 내 지하수 유량계에 찍힌 사용량을 확인하는 작업에 나섰다가 맨홀 내부에서 의식을 잃었다.

레이크우드CC 측은 코스 내 해저드에 공급되는 지하수 사용량을 1달에 1회씩 검침하는데, 지하 5m가량 깊이 맨홀 하부에 유량계가 위치해 있다.

사람이 직접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플래시를 비추고 카메라 화질을 확대해 유량계 사용량을 확인하는 등의 검침방법을 써왔으며 근래에 사람이 직접 들어간 적은 없었다고 한다.

사고 당일 김씨와 동료들은 오전 8시31분께 평소 하던 방식으로 지상에서 촬영 장비를 이용해 유량계를 촬영했으나 흐려서 사용량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이후 약 50분 뒤 김씨는 혼자 오전 9시21분께 50㎝X50㎝ 크기 맨홀 내부로 들어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유량계를 촬영, 이번에는 선명한 사용량(6만2845㎥)을 확인했다.

맨홀 지하에서 김씨는 레이크우드CC 측에서 원하던 지하수 사용량 수치 확인이라는 임무를 완수했지만, 그 순간 맨홀 내에서 의식을 잃었다.

김씨는 불과 한두 달 전부터 일을 시작한 신입이었는데 그 동안 다른 직원들은 들어가본 적도 없는 곳으로 안전장비도 없이 홀로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김씨가 맨홀 내에서 쓰러진 뒤 동료들은 구조하러 들어가지 못하고 119에 신고했다.

소방구급대원이 출동했을 때 김씨는 맨홀 내부에서 의식 없이 앉아 있었다. 맥박은 뛰지 않았다. 구급대원은 ‘가스 누출은 없었지만 산소 농도가 현저히 낮은 상태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맨홀 위로 끌어올렸을 때 심정지 상태였지만 응급처치를 시행한 구급대원 덕에 심장 박동을 되살릴 수 있었다. 그날 이후 김씨는 현재까지 깨어나지 못했다.

뉴스1

경기 양주시 레이크우드CC 출입로 © 뉴스1 이상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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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딸들은 “아빠가 맨홀에 들어가기 전 본인의 휴대전화 화질이 좋지 않으니 잘 안 찍힌다는 취지로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맨홀에 들어가길 꺼렸다는 뜻인데 그럼에도 아빠가 맨홀로 들어간 점이 의문”이라고 말했다.

딸들은 “아빠의 동료들에 따르면 아빠가 맨홀로 들어가기 전 매캐한 냄새가 났다고 한다”며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말리지 않고 아빠를 내려 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빠는 평소 지병이 없었는데 이번 사고 이후 병원에서 마주친 낯선 이들이 우회적으로 ‘아버지가 평소 지병이 있지 않았느냐’고 집요하게 묻기도 하고, ‘아빠가 평소에 책임감이 강해서 혼자 일을 도맡아했다’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말들을 하며 아빠에게 일부 사고의 원인이 있다는 뜻이 담긴 말들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119에 즉시 신고하지 않아 골든타임을 놓친 것 같다. 아빠는 살아오면서 아픈 적 없이 매우 건강했던 분이다. 레이크우드CC와 시설관리업체 측에서 안전지침을 준수했는지 노동부와 경찰이 정확히 밝혀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레이크우드CC 측 관계자는 “김씨가 자발적으로 ‘내려갔다가 올게’라고 동료 A씨에게 말했다고 한다”면서 “지하로 내려간 김씨가 지하수 유량계 사용량을 사진촬영한 뒤 멈칫하면서 쓰러졌고, A씨가 사무실에 알린 뒤 즉시 119에 신고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통상적으로 지상에서 사용량을 확인하기 때문에 별도로 방독면 등 안전장비를 구비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를 조사 중인 경찰, 산업안전보건공단, 고용노동부 측은 ‘안전장비 미흡, 안전수칙 미준수, 산소농도 위험수치’ 등을 확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산소 측정 및 송기마스크 착용을 안 하는 등 기본적 안전조치가 미흡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한 안전장비들이 있었다면 이 같은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맨홀 산소농도 측정 결과 6~20%가량으로 나왔다. 6%가량이었다면 한 순간에 기절하고, 몇 분 이내 사망이 가능한 산소농도다. 유독가스는 검출되지 않았다. 안전장비 미착용 여부 등 안전수칙 준수 여부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의정부지청 관계자는 “산소농도가 18% 미만으로 떨어지면 생명에 위험하다. 맨홀 지하 1m 지점부터 산소농도 18% 미만인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원청과 하청을 모두 조사 중이며, 중대재해처벌법 대상 기업에 해당한다. 김씨가 사망할 경우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daidaloz@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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