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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장관이 발표했는데, 정부 공식 입장 아니라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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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발표 하루 만에 뒤집힌 '주 52시간제 개편'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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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출근길에 한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전날 고용노동부가 새로운 노동정책을 발표했는데 바로 다음 날, 대통령이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게 아니"라고 말한 겁니다. 장관 발표가 공식 입장이 아니라면 무엇인지 헷갈렸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지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23일부터 24일까지.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나?



① 23일 오전 11시, 정부세종청사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시작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했습니다. 기자회견부터 질의응답까지, 모두 1시간 10분 정도 진행됐습니다. 여기서 이 장관은 현행 주 52시간 근무제를 유연하게 적용하겠다면서, "연장근로 산정을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넓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② 24일 오전 9시, 용산 대통령실 청사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났습니다. '해당 방안에 노동계가 반발한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내가 어제 보고를 받지 못한 게, 오늘 아침 언론에 나와서 제가 아침에 확인해보니까 노동부에서 발표를 한 것이 아니고, 노동시간의 유연성에 대해서 좀 검토해보라고 얘기를 한 상황이고, 아직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것은 아닙니다."


③ 24일 오전 10시, 전화통화
취재진이 정책 발표 과정에 참여한 고용노동부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물었는데, 수화기 너머로 '당황스럽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 1
"다들 어떤 영문인가 하고 있다. 우리도 당황스럽다."

고용노동부 관계자 2
"(전날) 브리핑 자료를 대통령실과 공유했다."


④ 24일 오전 11시, 국회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현안 점검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났습니다. '당과 교감이 있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보고를 받은 적은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과 다른 답을 내놓은 겁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당정 간에 협의를 했습니다. 보고를 받았으니, 협의했다기보다는 보고를 받은 적은 있습니다."


⑤ 24일 오후 2시 40분, 용산 대통령실 청사
대통령 발언을 두고 해석이 분분해지자, 대통령실이 진화에 나섰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어제 고용노동부 발표는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한 게 아니라 방향과 추진 계획을 설명한 것"이라면서 "최종안을 보고받은 건 아니어서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언론 보도가 최종 정부안이 확정된 것처럼 나와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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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각,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취재진과 전화 통화에서 "전날 발표한 건 정책 추진방향, 계획이었다"면서 "노동부는 대통령실과 같은 입장"고 말했습니다. 주 52시간제 관리 단위를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바꾼다는 건 '유력한 예시 중 하나'였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 관계자 해명과 똑같이 언론 보도를 언급했습니다. "최종 정부 방안은 정해지지 않았는데, 기자들이 마치 확정된 것처럼 보도했다"고요.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한 이유



'주 52시간제 유연화'는 고용노동부 발표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의제가 아닙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줄곧 '주 52시간제 유연화'를 주장해왔습니다. 지난해 12월엔 "주 52시간제를 유연화해서, 근로조건을 노사 간의 합의에 의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고용노동부 장관 발표는 대통령 뜻과 그리 다르지 않은 셈입니다. 그럼 왜 대통령은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했을까요?

이에 대해서 대통령실도 명쾌한 해명을 내놓진 않았습니다. 추측해 보건대, '주 92시간까지 일 시킬 수 있다'는 보도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발표 이후, <주 52시간제를 유연화하면 최대 92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뭐, '최대'라는 가정을 붙이긴 했지만 정부 발표대로라면 아예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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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출입 기자들에게 "주 92시간 근로는 불가능하다"고 반박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그것도 밤 10시 30분에, 몇몇 기사를 콕 집어서 말이죠.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직접 전화해서 해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여러모로 날카롭게 반응한 건 맞습니다.

종합해 보면, 정부가 처음으로 노동 개혁 정책을 추진하려는데 말을 꺼내자마자 '주 92시간까지 일한다', '장시간 노동 우려된다'는 공격이 이곳저곳에서 들어왔고, 이걸 맞받아치면서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까지 표현한 걸로 추정됩니다. (이해하려고 여러모로 애써봤습니다.)

물론 대통령이 직접 '주 92시간'을 언급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주 52시간제 유연화' 방향에는 동의한다면서 "(전날 발표가) 정부 공식 입장은 아니"라는 대통령의 발언, 과연 일관성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노동정책, 특히 근무제도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저뿐만 아니라, 일을 하는 사람 모두에게 영향을 주죠. 이렇게나 중요한 정책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혼선이 빚어지는 건, 그리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 겁니다.
조윤하 기자(hah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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