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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슈 In] '디플레의 나라' 일본 덮친 인플레…100엔숍 소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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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파동·30년 불황 거치며 고속성장하다 엔저에 '직격탄'

인플레 감당 못해 100엔숍→300엔숍 변신 생존 몸부림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디플레의 나라' 일본을 상징하는 소매업태인 '100엔숍'이 위기에 처했다.

연합뉴스

다이소 매장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과거 미국 달러와 함께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통했던 엔화 가치가 올해 들어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수입 물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다이소 등 일본의 100엔숍들은 주요 상품을 제조단가가 싼 해외로부터 아웃소싱에 의존해왔는데 최근 엔저와 공급망 차질 등의 영향으로 수입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100엔 균일가' 판매 전략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 日 불황과 함께 성장한 100엔숍…엔저·물류난에 직격탄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일본 최대 규모 100엔숍 다이소는 불황과 함께 성장한 기업이다.

1972년 10월 야노 히로타케(矢野博丈)가 히로시마(広島)에서 창업한 다이소산업(大創産業)은 이듬해 10월 1차 석유파동이 터지면서 경제위기가 일본을 강타하자 성장의 기회를 잡았다.

석유파동으로 촉발된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1977년 12월 슈퍼마켓 점두판매 방식으로 100엔 균일가 상품을 처음 선보였고, 2차 석유파동 직후인 1980년 도쿄(東京) 영업소를 개설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본격적인 엔고 시대가 도래하자 다이소의 사업모델은 날개를 달았다. 엔화의 구매력이 커지면서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 더욱 싼 가격에 양질의 상품을 들여올 수 있게 된 것이다.

1996년에는 일본 내 300점포를 달성했고, 2001년에는 해외에도 진출했다. 2020년 기준으로 전 세계 27개국에서 600여개 점포를 운영 중이다.

불황으로 주머니가 가벼워진 소비자에게 양질의 상품을 저렴한 고정 가격에 제공한다는 다이소의 사업모델은 일본의 소매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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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100엔숍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 조사업체 '데이코쿠 데이터뱅크'에 따르면 다이소가 대성공을 거두자 유사한 형태의 소매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현재 일본에는 8천400여개의 100엔숍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캔두(Can do), 와츠(Watts), 세리아(Seria) 등이 대표적인 후발 주자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100엔숍 모델은 그러나 올해 들어 큰 위기에 봉착했다. 엔화 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수입 물가가 큰 폭으로 올라서다.

지난 22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36엔대까지 상승했다. 엔화 가치가 2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한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와 달리 일본은행(BOJ)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엔화 약세가 멈추지 않는 모양새다.

일본 소비자물가도 고유가와 엔화 약세 등의 영향으로 2개월 연속 2% 넘게 올랐다.

일본 총무성은 5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작년 동월보다 2.1%(신선식품 제외) 상승했다고 24일 밝혔다.

2015년 3월(2.2%) 이후 7년 1개월 만에 최대였던 지난 4월 상승 폭과 같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코로나19가 초래한 공급망 차질에다 엔저 현상까지 가세하면서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 아웃소싱을 통해 저렴하게 들여온 상품을 균일가에 파는 100엔숍 모델이 위기에 봉착했다고 분석했다.

이지마 다이스케 데이코쿠 데이터뱅크 애널리스트는 FT에 "수익이 감소하면 투자할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100엔 고정가로 매출을 늘리는 사업모델이 장기적으로 성장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일본 내 소싱 확대·300엔숍 출점 등으로 생존 몸부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다이소는 지난 4월 '쇼핑 1번지'로 꼽히는 도쿄 긴자(銀座)에 '슬리피'라는 이름의 300엔숍을 선보였다. 이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약 80%가 300엔이다.

FT는 다이소가 공급망 차질과 엔화 가치 하락으로 100엔숍이 직면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300엔숍을 확대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급격한 엔저 현상으로 해외 아웃소싱을 통해 100엔짜리 상품을 들여오기가 어려워지자 취급하는 상품의 가격을 올리면서 품질도 업그레이드한 매장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다이소는 올해 일본 내 매장의 40%를 '슬리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라고 닛케이는 전했다.

FT에 따르면 다이소는 또 2023년 2월까지 일본과 해외 시장에 520개의 신규 점포를 오픈할 예정인데, 이 중 30% 이상이 300엔숍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다이소가 선보인 '슬리피'뿐 아니라 '스리코인숍' '아소코' 등 다양한 브랜드의 300엔숍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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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가치 하락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일본 엔화 가치가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는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의 엔화. 2022.6.23 pdj6635@yna.co.kr


주요 상품의 기본 가격이 300엔이어서 100엔숍보다는 나름 고가지만 가성비가 좋고 깔끔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생활용품을 많이 취급해 여성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디플레이션과 엔고를 등에 업고 폭발적으로 성장한 100엔숍의 시대가 엔저와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저물어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FT는 "지난 30년간 중국과 동남아 등 해외 시장에서 엔화의 '바잉파워'에 힘입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온 100엔숍이 팬데믹으로 인한 교역 차질과 엔화 가치 하락,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사업모델의 취약성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위기에 처한 100엔숍의 또 다른 생존전략은 해외 아웃소싱 비중을 줄이고 일본 내 공급선을 확대하는 것이다.

현재 다이소의 경우 전체 상품의 65%가량을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다.

야노 세이지 다이소산업 대표는 FT에 "2028년 오픈하는 것을 목표로 서일본 지역에 새로운 생산공장을 짓기 위해 토지 소유주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며 해외 생산비용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해외 아웃소싱 비중을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passi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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